‘쓸 사람은 다 쓴다’는데, “팔았다”고 자랑하는 사람도, “잘 썼다”고 입소문 내는 사람도 없는 물건. 낮에는 필요치 않기에 낯부끄러운 것. ‘성인용품’ 얘기다. 그렇다고 실제 구매가 저조한 것도 아니다. 현재 내수시장만 약 1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는 ‘안랩(ahnlab)’으로 대표되는 국내 컴퓨터 백신 시장과 비슷한 수치다. 20대 초반부터 60대 후반까지 사용자의 영역도 다양하다. 지난 2012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3명 가운데 2명 이상이 성생활을 영위하고 있는데, 이 중 55.3%가 콘돔을 사용한다. 또 50.8%는 발기부전 제품을 구입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여성에게 성인용품은 화장품과 같은 필수품.” 일본의 유명작가 ‘사쿠라이 히데노리’ 씨의 말이다. 실제로 일본에선 치약을 사듯 ‘딜도’를 산다. 성인용품매장이 편의점처럼 활성화됐다.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돼 일본 여성의 65% 정도가 ‘바이브레이터’ 등의 성인용품을 지녔다. 중국은 더 뜨겁다. 수출 1위에 빛나는 이 분야 선도국으로, 자국에서 열리는 대형 성인용품 박람회에는 매년 수만 명이 모인다.

미주․유럽에선 아예 유망산업으로 분류해 투자와 연구개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최근 미국의 사모펀드 ‘브룩스톤 파트너스(Brookstone Partners)’가 첨단 성인용품 개발업체인 ‘서스데이 다이아몬드(Thursday Diamond)’에 전격 투자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2월 23일 미국의 경제전문 채널 CNBC는 “최근 미국 내 신생 벤처들이 성인용 애플리케이션 등 성 관련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전 세계가 대놓고 키우는 ‘전도유망’한 사업이지만, 국내에서만큼은 여전히 요망하기 그지없다. 간판만으로도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민망함에 시장 형성이 여의치 않았고,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모호해 부정적인 인식만 더해왔다. 30대 직장인 윤 모씨는 “젤이나 오일 타입 제품의 사용 후기를 보고 큰 관심이 생겨서 매장을 찾아갔는데, 음침한 외관 분위기에 눌려 정작 가게엔 들어가보지도 못했다”면서 “결국 해외사이트에서 2주나 걸려 필요한 제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찾아볼 땐 ‘와글와글’, 살 땐 ‘오글오글’

국내를 대표하는 온라인 쇼핑몰 ‘G마켓’의 성인용품 페이지. 3만5000개의 다양한 상품이 즐비하게 진열돼 있다. 제품의 호응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인기도’ 표시는 대부분 5칸을 꽉 채운다. ‘요물 같은 딜도’라는 이름이 붙은 상품을 클릭하고 들어가니, 상품평만 460여 개(화장품 코너에 ‘5종 특별구성’된 제품의 상품평은 250개 정도였다). “정말 만족스럽다”, “여자 친구가 좋아한다”, “다른 제품도 구매하고 싶다”는 등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성인용품에 대한 관심만 따지면, 우리도 앞서 언급한 선진국 못지않다. 부부사이 개선, 안전한 성생활 권장 등 성인용품의 순기능이 하나둘 드러나며 ‘다음 미즈넷’ 등 여성 사이트에선 성인용품 추천과 후기 글도 줄을 잇는다.

성인용품 선진국에서나 볼 수 있던 고급제품을 찾는 수요도 차츰 늘고 있다. 성인용품 전문몰 ‘에이치플레이(www.Hplay.co.kr)’의 한 관계자는 “폐경 이후 수년간 성생활을 기피해 욕구불만이 쌓인 부부가 함께 매장을 방문하기도 하고, 이혼이나 사별을 겪은 중년 여성이나 남편의 자위기구를 직접 챙기려는 만삭의 여성이 찾기도 한다”며 “최근에는 단순한 것을 넘어, 좀 더 사실적인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의 수요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매 과정은 녹록지 않다. 대부분 구매자들이 ‘쉬쉬’ 하며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다. 두세 달에 한 번 남편의 성기능 개선 제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한다는 양 모 씨는 “혹시 아이들이나 주변사람들이 볼까 봐 (배송)포장에도 주의를 주고, 보관에도 각별히 신경을 쓴다”고 했다.

실제로 성인용품 사이트에서는 제품의 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고객들을 위해 갖가지 방법으로 이를 보호해주는 ‘쇼핑정보 보호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다. 2중, 3중으로 겹겹이 포장하거나 포장박스 자체를 건강식품 등 다른 상품인 것처럼 보내주는 식이다. 온라인 성인용품몰의 한 관계자는 “아직은 외부에 드러내는 것을 걱정하는 고객들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 업체가 고객정보 보호서비스를 진행한다”며 “제품 특성상 반복구매가 많이 일어나는데, 믿고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재구매나 신규고객 유치의 가능성도 커진다”고 설명했다. 2년째 꾸준히 발기부전제품을 구매했다는 차 모 씨는 “살 때는 조금 부끄럽지만 쓸 때는 당당해질 수 있어 약간의 창피함이나 번거로움은 감수할 수 있다”고 했다.

 

만혼(晩婚)문화·온라인 쇼핑 활성화, 성인용품 시장의 봄 오나

만물이 언 몸을 녹이고 활기를 찾는 계절 ‘봄’. 성인용품 시장에 활기가 찾아오는 것도 이때다. 지난 2012년 ‘에이치플레이’ 조사에 따르면, 성인용품은 봄철 주문 건수가 일 년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는 가을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우리 조상들은 ‘봄바람’이나 ‘회춘(回春)’ 같은 표현들로 봄날의 성적 욕망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체 성인용품 시장에도 ‘봄날’이 찾아올 기미가 보인다. 늦은 결혼으로 연인 사이의 개방적인 성문화가 자리 잡아가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20대 중에도 성인용품을 사용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며 “치료나 대안적인 목적이 아닌, 하나의 ‘즐길 거리’로 성인용품을 택하는 젊은 층이 늘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구매절차의 부담을 최소화해주는 온라인 쇼핑의 활성화도 봄날을 앞당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성인용품 업계의 관계자는 “국내의 오프라인 매장은 전국 약 3000개 정도인데, 온라인 쪽은 대략 500개 업체가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정확한 시장 규모를 파악하긴 힘들지만 몇 년 전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큰 시장이 형성되고 있으며,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