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열 전 대우그룹 사장
1965∼1975 한국산업은행 대리
1975∼1995 대우그룹 사장
1996∼2002 (주)퍼시스 대표이사 사장

권동열(70) 전 대우그룹 사장은 1970∼90년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던 대우를 대표하던 최고경영인(CEO) 중 한명이다.

외형 확장을 위한 인수 합병이 주 업무였고, 인수한 회사의 경영 상태를 안정화시키는 일을 했다. 그는 현재 전경련 중소기업자문봉사단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권 위원장은 “대우가 없어지기 전인 1995년 은퇴를 했다”고 말했다.

“가장 전성기였을 때 은퇴를 택한 것이 어쩌면 다행인 셈이지요. 조금만 더 있었으면 20년 이상 모든 걸 바쳤던 회사가 없어지는 것을 직접 경험하는 아픔을 겪었겠지요”라며 아쉬움도 내비쳤다.

그런 그에게 은퇴는 어떤 의미였을까. “삶에 은퇴는 없어요. 조직생활을 하던 사람이 개인으로 돌아갔을 뿐입니다.

입사 당시 수출 보국의 목표 아래 앞만 보고 성장만을 위해 달렸다고 느낄 때 쯤 은퇴가 눈앞에 와 있더군요. 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할 일이 없더군요.”

권 전 사장은 은퇴를 앞두고 깊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는 것.

그렇다고 은퇴 후 무작정 집에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1995년 대우그룹 은퇴 후 지인의 소개로 사무용 가구업체인 퍼시스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 6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6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업무와 함께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 됐다. CEO나 회사의 고문으로 지내는 것은 후배들의 앞길을 막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002년 퍼시스 대표이사 사장 직함을 뗀 이후 가정으로 돌아갔다. 초기 1년 동안은 바깥 활동을 줄이고 집에서만 생활했다. 마음껏 여유를 즐기는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만족감은 줄어들었다.

“그 동안 못했던 일을 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30년 넘게 조직생활에 익숙해져 버린 생활은 개인생활에서 즐거움을 찾기 힘들더군요.

여행, 취미 생활도 처음에만 좋았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허전해지더라고요. 그렇다고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랬을 거예요.”

그렇게 어색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무렵,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지인의 소개로 전경련 중소기업자문봉사단에 참여하게 된 것.

권 전 회장은 자신의 CEO 경험을 토대로 경영 노하우를 후배 CEO에게 전수하는 역할을 통해 인생의 전환기를 마련했다.

변화된 경영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다시 경영서적을 들었고, 과거 경험과 접목해 새로운 경영전략을 만들며 생활에 활기를 불러왔다.

“중소기업자문봉사단이 있는 줄 몰랐어요.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예요. 내가 아직도 할 일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더 많이 느꼈다면 얼마나 행복이겠어요. 게다가 한국 경제의 뿌리인 중소기업을 위한 일이라니 흥분되는 일이 아닌가요.”

현재 그는 중소기업자문봉사단의 위원장에 올라 있다. 적극적인 활동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평이다.

전경련 중소기업경영자문봉사단은 퇴직 CEO의 경험과 노하우를 중소기업에 전수하기 위해 2004년 7월 발족한 순수 자문 집단이다. 현재 103명의 자문위원이 무보수로 활동하고 있다.

권 전 사장은 주로 조직 관리의 경영 노하우를 전하는데 주력한다. 중소기업의 문제가 생기는 원인을 사람에서 찾고, 해법을 제시해 주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그의 폭 넓은 경영 지식이 중소기업 성장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또 중소기업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목표와 비전을 제시하고, 경영 전략 수립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자문 활동을 통해 느끼는 보람은 현직에 있었을 때 느끼는 보람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그는 자문 활동을 통해 느끼는 아쉬움도 많다. 후배 CEO들이 선배 CEO들에게 물고기를 잡는 것을 배워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험과 식견을 바탕으로 사람을 위한 경영을 해야만 지속 경영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의 증가가 선진국 진입의 초석을 닦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만큼 그는 후배 CEO를 경쟁력을 갖춘 장수 CEO로 성장시켜내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그래서일까. 권 전 사장은 끊임없이 책을 읽는다.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갖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론을 접목, 전수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국내 경제 구조를 보면 중소기업이 90% 이상입니다. 고용 인력 분포도 중소기업에 80%가 집중돼 있습니다. 지속 경쟁력을 갖는 중소기업의 성장이 필요합니다.

선배 CEO의 경험과 변화하는 경영 환경의 조화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명을 연장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후배 CEO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권 전 사장. 그의 열정은 골드 시니어가 지니고 있는 공통점 중 하나일 것이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