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으로 한국 경기가 ‘회복’을 향해 항해하고 있다는 데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신흥국 금융위기, 미국의 이상 한파,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 등 파도가 높다. 그래서인지 최근 안전자산의 대명사인 채권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강세장은 계속 될까.

금통위에서 9개월째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2.5%로 동결됐다. 2월 금통위에서의 금리동결은 만장일치였다. 하지만 시장의 관심은 금리 동결이 아니라, 최근 경기 흐름에 대한 한국은행의 판단에 쏠렸다.

한국은행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신흥국의 회복세가 지속됐다’는 문구가 삭제되는 등 전월보다 경제 회복에 대해 자신감이 희석된 모습을 보였다. 전반적으로 경제 성장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유지한 가운데, 한 발짝 물러나는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신흥국 경기 불안에 대해 경계에 대한 시각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한은, 낙관 경제 전망 ‘주춤’··· 금리인하 기대심리 증폭

시장의 경제 전망도 이와 비슷하다. 지난 해 하반기까지 세계 경제가 상당히 빠른 회복을 보였기 때문에 앞으로도 빠른 회복세가 이어질 것으로 시장 참여자들은 생각했었다. 하지만 올 들어 국내·외에서 경기 회복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자 경기 성장 저조→채권 강세장 지속 시나리오가 힘을 얻고 있다.

■신흥국 위기+미국 이상 한파: 올해 초부터 중국을 중심으로 신흥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고, 미국에서의 이상 한파 영향도 겹치면서 지표의 흐름이 부진하게 나왔다. 그러다 결국 지난달 말 신흥국 금융위기가 표면화됐다.

지난달 27일 아르헨티나는 디폴트 위기에 처했고, 다음 날인 28일 터키 중앙은행은 환율 방어를 위해 기준금리를 4.5%에서 10%로 5.5%p 대폭 인상한 바 있다.

경기의 상승 모멘텀이 약할수록 채권의 강세장이 열린다. 안전자산 심리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주식보다는 안전자산인 채권을 찾게 된다.

■수출 부진에 정부 내수 부양기조 강화: 국내에서도 경기 회복을 방해하는 시그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광공업 생산이 전월 대비 3.4% 증가해 시장 예상치 0.8%를 크게 상회했지만, 1월 수출 증가율이 둔화됐다. 신흥국 위기 우려로 수출 부진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정부의 내수부양 기조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블루빛 전망이 힘을 얻자, 시장에서는 ‘기준금리가 하락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시장에서 보면 한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경기에 대한 낙관 전망이 잘 와 닿지 않고, 경기 회복 속도와 강도가 생각보다 빠르지 않기 때문에 채권시장 강세 근저에 깔려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코스피지수는 최근, 추가적인 상승 모멘텀을 받지 못하고 있다. 2월 들어 코스피지수는 1900p 초중반 박스권(최하점: 1886.85/2월 4일)을 유지하고 있다.

■기준금리가 하락 기대심리 증폭: 채권은 1) 이자율이 정해져 있어 안전한 수익이 보장돼 있고 2) 채권 가격과 금리가 반비례하며 3) 채권도 시중금리에 따라 가격이 변하기 때문에 시세차익이 가능하고 4) 만기가 길어서 장기적으로 금리(이자율) 하락 추세에 유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A씨는 액면가 100만원에 이자율 5%인 채권을 가지고 있다. 이자율 5%는 변하지 않지만 대신 액면가 100만원은 시장 상황에 따라 100만원보다 비싸거나 싸게 살 수 있다. 만기금액 105만원은 정해져 있으니 액면가 100만원보다 어떻게든 채권을 싸게 사면 채권자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

100만원 액면가의 채권을 100만원에 사면 이자가 5만원이므로 수익률 5%, 100만원짜리 채권을 95만원에 사면 만기 금액과 10만원 차이이므로 수익률 10%를 얻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앙은행이 발표한 기준금리가 2.5%에서 2%로 내려간다면 어떻게 될까. 이자율은 기존 5%-2.5%=2.5%에서 5%-2%=3%로 0.5% 늘어나게 된다. 이자율 즉, 금리가 하향추세에 있을 때 채권 가격은 올라가므로 채권을 팔고 싶은 판매자에게 유리하다.

이정범 한국투자증권 채권전략 연구원은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서 안정보다는 성장을 지원하는 역할이 커질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2분기에 정책금리가 한 차례 인하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외국인 매수세 대거 유입으로 채권시장 ‘탄력’

■외국인 매수세 유입: 채권 시장 강세론을 타고 수급 상황도 양호하다. 2월, 외국인 매수세가 대거 유입되는 모습이다. 2월 초, 채권금리는 하락해 출발했다. 미국에서 비농업, 공업 부진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하락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면서 관망심리가 잠시 높아졌지만, 외국인의 현·선물 매수세에 힘입어 금리는 곧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외국인이 국채 5년물 입찰에 직접 참여해 대규모 물량을 가져간 것도 금리 하락 재료로 작용했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13-1과 13-5 등 국채 5년물을 중심으로 대규모 외국인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채권금리는 계속 하락 압력을 받았다. 환율이 신흥국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 포지션을 비운 증권이 다시 국채선물 매수에 나선 것도 긍정적인 요소다.

■국채 발행 규모 큰 변화 없어: 국채 발행 규모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지난해 85조원, 올해 97조원 규모의 국채 발행이 이루어져 지난해보다 약 10조원가량 국채 발행이 늘었다. 따라서 국채 발행의 증가가 시장의 공급률을 높이면서 가격을 하락시켜 금리는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올해 정부의 화두가 공기업의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산을 매각해 부채를 줄이려고 하고 있어 최근에는 공사채 발행이 급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 채권시장에서도 국채만 보면 늘어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공사채 부분이 축소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면 발행 물량이 예상보다 저조하다고 느껴지고 있는 것이 현재 수급 상황이다. 따라서 시장에서는 채권 투자에 대해 ‘쉽게 꺾일 강세흐름이 아니다’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채권 강세론’ 우위 점하다

나정오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채권시장은 1분기 강세흐름을 이어갈 전망이다. 공공기관의 채무 증가 억제가 진행되는 가운데, 신흥국 위기로 경기 회복 기대감이 후퇴하고 있어 금리 하락 모멘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절대금리 부담으로 금리가 상승할 때마다 분할 매수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문홍철 동부증권 연구원은 “미국 지표의 일시적 부진과 중국 경기에 대한 의심이 여전하다”며 “미국은 봄이 되면 경기지표가 재차 개선될 것으로 보이며 1분기 후반까지 금리 하방 압력이 우세하다”고 밝혔다.

박종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연말부터 공사채 발행 물량이 현격하게 줄면서 오히려 공급부족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3월 이후 공사채 발행 물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공기업 부채 관리가 강하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지난해 대비 순발행 물량은 크게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추가 강세는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공동락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채권 랠리는 수급 우위를 바탕으로 이뤄진 일시적인 강세장의 개연성이 크다. 금리의 반등 폭은 제한적인 수준에서 그칠 전망이다. 차익 실현을 제안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