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임원 교육에서 거론되는 ‘핫 토픽’이 있다. 지난해에는 기업마다 열정과 몰입이 키워드였다면 올해는 ‘솔선수범’, ‘언행일치’의 실행이 더 주목받는 것 같다. 솔선수범은 참 쉬운 말이지만, 실행하기는 어렵다. 많은 기업이 원대한 비전을 이야기하지만 ‘상사’야말로 살아있는, 움직이는 비전이다. 자신의 3년 후, 5년 후 모습이 후줄근한데 기업의 10년 후, 100년 후 비전이 피부에 와 닿지 않을 것은 당연지사다.

기업에서 상사의 리더십은 ‘존경’이라기보다 ‘냉소’의 대상임을 많이 본다. 조직에서 상사가 존경받고 있는가 아닌가는 ‘리더십’이 보통명사이냐, 고유명사이냐로 갈린다. 리더십을 말할 때 ‘무엇을 해야 하느냐’를 말할 때보다 ‘우리 조직에서 좋은 리더의 표상으로 누구를 떠올릴 수 있느냐’에 대해 사람들이 더 신이 나서 말할 때 ‘조직’은 씽씽 돌아간다. 그 차이는 바로 솔선수범 리더십에서 갈린다.

솔선수범(率先垂範)의 솔(率)은 이끈다는 뜻이다. 선(先)은 먼저이고, 수(垂)는 드리운다, 범(範)은 모범, 기준이다. 즉, 이끄는 데 먼저 기준을 드리우는 것, 세우는 것이다. 행진할 때 향도가 먼저 기준을 정해야 올바른 대오가 편성되듯, 바로 리더의 솔선수범도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공자는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들은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의를 좋아하면 백성들은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으며, 윗사람이 신의를 좋아하면 백성들은 감히 성실하게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하면 사방의 백성들이 그의 자식을 등에 업고서 올 것이다(上好禮則民莫敢不敬 上好義則民莫敢不服 上好信則民莫敢不用情 夫如是則四方之民 -자로-).

공자는 군자가 신뢰를 확보하려면 솔선수범이 우선이라고 보았다. 공자는 제자 자로가 정치에 대해서 물었을 때 솔선수범을 이야기한다. 공자가 “그들보다 앞서 수고로이 행하라”고 하셨다. 자로가 더 말씀해줄 것을 청하자, “(솔선수범 행위를) 싫증 내지 말라”고 말씀하셨다(子路問政.子曰,先之, 勞之. 請益. 曰, 無倦-자로). 발끈 분발해서 한 번 하는 데 그치지 말고 우직하게 계속 하란 이야기다.

누구나 좋은 말을 할 수는 있다. 좋은 시행령을 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패는 리더도 그것을 지키느냐 하는 점이다. 그렇지 못할 때 영은 서지 않고, 리더의 말은 양두구육(羊頭狗肉)이 된다. 양두구육이란 고사성어도 리더의 빈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춘추(春秋)시대 제(齊)나라 영공(靈公)은 궁중의 여인들을 남장을 시켜놓고 즐기는 괴벽이 있었다. 곧 이 습성은 일반 민간에도 퍼져 남장 여인이 나라 안 곳곳에 퍼져나갔다. 이 소문을 듣고 영공은 궁중 밖에서 여자들이 남장하는 것을 왕명으로 금지했는데, 이 영은 잘 시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왕은 왕명이 시행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안자는 “폐하께서 궁중 안에서는 남장 여인을 허용하시면서 궁 밖에서는 금하시는 것은 마치 양의 머리를 문에 걸어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궁중 안에서 여자의 남장을 금하소서”라고 했다. 영공은 안자의 말대로 궁중에서도 여자가 남장하는 것을 금했더니 한 달이 못 되어 온 나라 안에 남장 여인은 없어졌다.

이 외에도 군주의 기호가 백성들에게 영향을 미쳐 폐해가 커진 역사적 사례는 많다. 제나라 환공이 자주색 옷을 좋아하자 백성마다 자주색 옷을 모두 찾아 품귀 현상을 빚었다. 그 결과 자주색 옷의 가격이 흰옷보다 5배나 올랐다고 한다. 월나라 왕 구천이 용맹함을 좋아하자 백성들은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많아져 시장에서 싸움이 그치지 않았다. 그만큼 리더의 기호, 의사결정, 취향은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그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명령은 리더의 시범이다. 그래서 사병이 가장 무서워하는 장교는 ‘고함 지르는 장교’가 아니라 사병과 연병장을 같이 뛰는 장교라 하지 않는가. 미국의 해병대 네이비실이 ‘귀신 잡는 미국 해병대’로 유명한 것도 바로 솔선수범 리더십 때문이다. 장교와 사병이 같은 훈련에 참가한다. 지옥 훈련을 함께 헤쳐나가며 공통된 유대감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장교는 부하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조직은 상호 이해와 상호 지원, 상호 보완 관계로 발전한다. 장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병을 이용하지 않으며, 사병은 장교를 경계하거나 욕되게 하지 않는다. 장교는 존경심을 가지고 사병을 대하며 사병에게 최상의 것을 요구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의 바스 반 덴 푸테Bas van den Putte 교수는 ‘이 초콜릿은 아주 맛이 좋아’라고 말로 설득하기보다 초콜릿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나도 저 초콜릿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훨씬 강하게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보여주었다.

L 사장은 “난 내가 먼저 손님에게 즐거움을 전달하려 하지, 종업원에게 무조건 구호를 외치게 하지는 않는다. 직원들이 신 나게 일하게 하는 나 나름의 방법은 그들의 관심사에 먼저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다.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데서 리더십이 나오는 것이지, 결코 내 철학을 먼저 설파하는 데서 실천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모 언론사의 C 국장은 “뭐니뭐니해도 리더가 먼저 모범이 돼 행동을 보이는 솔선수범의 약발이 제일 확실하고 세다”고 말한다. 리더가 하는 일을 중요시하고 열정을 갖고 있다는 모습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구성원들이 리더의 모습을 보고 열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전도가 아니고 생명력 없는 전달이라고 느끼는 순간 ‘조직 에너지는 금방 제로’로 돌아가버린다는 것이다.

일본 메이난 제작소의 창업자 하세가와 가쓰지 회장은 “인간을 신뢰한다는 것은 공기와 같은 것이다. 우리의 생활은 무의식중에도 서로 믿지 않으면 살아나가지 못한다. 신뢰는 때론 사소한 일 때문에 불신으로 바뀐다. 불신을 없애기 위해서는 솔선이 기본이다. 설득과 신뢰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물 한 잔, 콩 한 알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인간은 자기가 모르기 때문에 믿지 못한다. 설득이란 내 이야기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게 아니다. 말로, 생각으로 사람의 마음은 바뀌지 않지만, 증거 앞에서는 수긍한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싶은데 의심스러운 물 한 잔이 보여 마실까 말까 고민된다. 그때 경영자가 먼저 한 모금 마시고 괜찮다며 건네주면 여기서 신뢰가 생긴다. 경영의 승부가 먼저 한 모금 마시는 데서 결정된다”고 말한다.

리더는 큰 것을 약속하기에 앞서 작은 것부터 행동으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 “...하라”로 조직은 변화되기 힘들다. “하자” 하면 조금 움직일까 말까이고, 리더가 “내가 할게”를 해야 비로소 변화의 불씨가 옮겨붙기 시작한다. 지시형 동사어미 ‘하라’보다 힘이 센 게 청유형 동사어미 ‘하자’이고, 이보다 더 힘이 센 게 ‘할게’이다.

솔선수범의 리더십이 제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지(智), 인(仁), 용(勇), 공(公)의 4바퀴 구동체제가 되어야 한다. 지혜든 용기든 감성이든 윤리든 리더가 자신보다 한 치라도, 한 발이라도 앞섰다고 생각하지 않을 때 부하들은 충성의 마음을 거둔다. 智, 부하보다 하나라도 더 알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가. 仁, 구성원과 공감하기 위해 어떤 행위를 하는가. 勇, 오늘날 용이란 인내력, 견디는 힘이다. 부하들보다 조금 더 힘든 것을 버티고 견디는 것이다. 公, 윤리적 면에서 깨끗한가. 솔선은 이념이 아니라 실행이다. 이념 가지고 싸우는 부부 없듯 조직도 마찬가지다. 피터 드러커, 식스시그마를 모른다고 분란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하지 않으면서 부하만 사지에 내몰 때 부하들은 상사에게서 등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