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롯데백화점 본점을 시작으로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까지 명품 할인 대전에 나섰다. 특히 그동안 ‘노(No) 세일’정책을 펼쳤던 고급 브랜드 발란타인, 휴고보스 등이 이번 할인전에 참여해 이례적인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업계 전문가에 따르면 병행수입과 해외직구를 통해 소비자가 해외 상품을 비교적 싸게 살 수 있게 되면서, 기존 가격정책으로는 더 이상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 시작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날 백화점 할인 대전에서 만난 한 소비자는 “그동안 세일을 하지 않았던 브랜드까지 참여한다는 소식에 백화점을 찾았다”며 “가격 비교를 통해 직구보다 저렴하면 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일을 한다고 무조건 구입하기보다는 또 다른 비교 대상이 생겼다는 게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색할 만한 일이라고. 그러나 백화점이 부랴부랴 세일을 진행하지만 ‘병행수입과 해외직구’로 인한 타격은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병행수입 규모는 2조원 안팎이다. 이 가운데 해외 인터넷쇼핑몰 등에서의 해외 직접구매액은 1조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를 모두 합치면 전체 수입물품 시장의 6%에 해당, 아직은 한 자릿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반면, 마트나 홈쇼핑에서는 병행수입을 성장 기회로 삼을 수 있는 매출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이마트의 경우 2009년 10억원에 불과했던 병행수입 매출이 지난해에는 600억원으로 60배 가까이 뛰었다. 지난 4일 이마트는 병행수입과 해외직소싱을 통해 신학기 가방을 판매, 지난해보다 물량을 40% 늘리고 최대 50% 저렴한 가격에 선보인 바 있다. 올해 병행수입 매출 목표는 800억원으로 알려졌다. 홈쇼핑의 경우 CJ오쇼핑의 지난해 병행수입 제품 매출은 200억원. 제품을 처음 팔기 시작한 2010년 65억원에서 3년 만에 3배 이상 오른 것이다.

서정연 신영증권 연구원에 따르면 해외직구나 병행수입을 통한 수입물품 가격과 국내 유통업체의 판매가격 간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마진 차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백화점, 독점수입업체들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대형마트는 병행수입의 주요 아이템인 패션잡화의 경우 상대적으로 고마진 상품이라는 점과 병행수입이나 해외직구족들의 관심 상품이 아닌 식품이 매출의 70%라는 점 등에서 오히려 사업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관세청이 고가 의류, 화장품 등 수입품 가격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관련 단체와 기관이 참여하는 병행수입상시협의체를 구성하면서 유통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협의체는 통관인증 지원, 병행수입물품의 사후서비스 개선 등 병행수입 활성화를 막고 있는 요인을 제거할 예정이다. 관세청 측은 “병행수입상시협의체의 활성화 등으로 수입제품의 가격인하를 유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병행수입과 해외직구에 대한 우려는 정품 여부에 대한 고객 신뢰도와 A/S 문제다. 이에 대해 한 마트 관계자는 “대형 유통망에서 철저하게 인증기관을 거쳐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며 “대량으로 들여와 더욱 저렴할 것”이라고 우려를 일축했다. A/S와 관련해서는 가전과 달리 대부분 의류 제품이 많고, 만약 문제가 있다면 환불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다양한 물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유통경로가 더욱 늘어났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그동안 독점 수입으로 높은 가격을 책정했던 백화점 기상도는 ‘흐림’, 다양한 유통경로 확보로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마트는 ‘맑음’으로 시작하는 가운데 소비자에게도 착한 가격이 주는 ‘봄날’이 올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