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지의 화려한 부활…온축된 시간이 잉태한 거듭나는 생명력

 

 

Layer-봄 풍경 92×146㎝ paper collage 2009

가늘게 휘어진 산길. 봄바람에 떨어져 융단을 깔아놓은 듯 오솔길을 수놓은 벚꽃 잎이 저기 바위 아래, 흐르는 물결 위 가늘게 출렁인다.

소멸과 탄생 그리고 공존의 순환. 버려지거나 혹 외면 받은 폐책들의 각양각색 종이들을 안아 화면으로 끌어들여 생명을 불어넣는 이승오 작가.

이들을 서로 유기적 통합으로 빚어내는 조형언어가 곧 집적이라는 의미의 ‘Layer’ 이다.

 

 

 

 

 

Layer-검정정물 73×54㎝ paper collage 2009 (맨 위).

Layer-고흐의 아이리스 142×182㎝ paper collage 2009 (위).

대지
자연의 형태 그대로 켜켜이 쌓인 대지는 곧 적(績)의 세계다.
모든 생명들의 근원적 영양소인 땅. 흡사 나뭇결이나 태고의 신비로부터 비롯된 지층의 역사 한 부분을 차용한 화면.

수없이 축적되는 종이작업에 더하여 황토로 나머지 공간들을 메꾸어 흙냄새 물씬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풍경화에는 평면에서 맛볼 수 없는 밀도가 숨 쉬고 있다.

액체에 오랜 기간 담근 후 건조대에 올려 말린 종이는 썰어서 쌓아올리기도 하고 겹겹이 말아서 우리 산하의 미감을 표현한다. 이것을 통해 작가는 오랜 시간 온축(蘊蓄)된 존재를 통해 성찰과 포용을 포착해 내고 있다.

결, 흐름
시냇물이 잔잔히 흐른다. 흔들흔들 서해로 가던 길목 얕은 뭍. 바람에 떨어진 꽃잎, 그곳에 뿌리내린다. 꽃무리는 그렇게 피어났다.

이들이 어우러져 비로서 빚어내는 꽃과 나무와 새들의 꿈틀거리는 화면은 멈추지 않는 시간의 흐름(flow)을 암시한다.

최병식 미술평론가는 “물결 치는 듯한 결을 따라 쌓여지는 시간과 역사, 다시 문명의 체취까지도 포괄하는 의미는 작가의 선택이 갖는 매력”이라고 썼다.

이러하듯 그 출렁이는 물결 아래엔 ‘내 마음’의 심연(深淵)도 있고 봄 햇살에 화사하게 피어오른 향기 그윽한 아이리스 한 다발을 안고 찰랑찰랑 바쁘게 걸어가는 정(情)의 그리움도 넘실대는 것이다.

상상과 발견
이제 재생지는 더 이상 배후가 아니다. 작가의 손길이 미치는 종이는 예술세계에로 거듭 태어난다.

이를 두고 감윤조 한가람미술관 큐레이터는 “생동감, 생명력이 지배하는 회화공간으로 유도되고 있다”고 평했다.

화면의 색채는 종이 고유의 색상 단면이지 오일이나 아크릴 재료가 아니다.
또 근거리와 떨어져 보는 것과의 시각적 차이는 색채와 질감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주는 일종의 착시현상 때문이다.

이러하듯 그의 작업은 종이의 공예적, 부조(浮彫)에서 느낄 수 있는 조각적인 그리고 회화적 요소가 융합된 독창적 표현과 다름 아니다.

작가가 밝혔듯이 이른바 종이의 적과 결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미감에 맞는 회화를 상상하고 발견하는 일”이다.

즐겁게 상상하면 이승오 작가의 ‘종이’처럼 새로운 탄생의 환희를 맛본다.
그래서 관람자들은 작품 앞에 머물고 종이, 그 친숙한 사물의 재발견에 주목하는 것이다.

권동철 문화전문기자 kdc@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