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거리. (사진=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요우커’가 국내 관광시장의 ‘으뜸 고객’으로 떠오른 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불과 1년 반 전까지만 해도 일본인 관광객이 더 많았다. 관광 업계의 시선이 중화권에 머문 지 수개월째, 외면받고 있는 인바운드 시장과 신시장 개척 가능성을 점검해봤다.

언제부턴가 서울 주요 도심은 중국을 방불케 한다. 한국말보다 중국말이 더 많이 들린다.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 때문이다. 얼마 전, 일본인 관광객 모시기에 여념이 없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 수는 430만 명. 방한 외국인 관광객 중 압도적인 1위다. 씀씀이도 크다. 2012년 기준, 중국인의 인당 지출액은 약 2150달러(228만원)로 방한 외국인 중 가장 높았다. 430만 명이 228만원을 썼다고 하면 약 9조8000억원이다. ‘왕서방’, 귀한 손님 모시듯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국인의 마음, 中心이 움직이다

그런데 묘하다. 지난 2월 1일, 명동 거리. 한 프랜차이즈 로드숍에서 화장품을 구입하고 있던 쉬라이 씨(徐來·26세)를 만났다. 그는 특가상품을 이용해 한국을 찾았다고 했다. 쉬 씨는 “3일간 휴가가 생겼는데 딱히 멀리 가기엔 애매해서 한국을 찾았다”면서 “쇼핑을 하며 일정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다시 한국을 찾을 거냐고 물으니 웃으며 “그럴 이유가 없을 것 같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능숙하게 중국말을 하던 점원 A 씨는 “아직까지 중국인 관광객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작년에 비해서는 다소 준 듯하다”고 했다.

2012년 7월 한 달, 방한 중국인 수 32만2917명. 사상 처음으로 방한 일본인 수를 뛰어넘었다. 같은 시기 일본인 관광객은 29만9477명. 이후부터 일본인 관광객 증감률은 꾸준히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한편 중국인은 그야말로 물밀 듯 들어와 지난 한 해 평균 성장률 52.5%를 기록했다.

한데 최근 수치만 봤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2013년 1월~8월 사이 방한 증감률은 57.3%인데 반해, 최근 4개월(2013년 9월~2014년 1월) 증감률은 43.2%로 약 14.1%p 준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이들의 일본행은 급격히 늘었다. 2013년 1월~8월 사이 –25.7%였던 일본 방문율은 9월~2014년 1월, 37.9%를 찍었다. 일본관광청 관계자는 “엔저 현상과 아베 총리의 관광산업 육성책이 더해진 결과”라면서 “센카쿠 문제로 인한 중일 관계 악화 영향이 회복 추세에 있다는 것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한국 관광에 대한 ‘부정적 인식’ 또한 일본행 발걸음을 재촉하는 요인이 됐다. 앞서 쉬라이 씨가 언급한 “다시 오지 않겠다”는 건 비단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외래관광객 실태조사(2012)’에 따르면 중국인들의 한국 재방문율은 단 29.7%. 이는 주요 방한객 중 가장 낮은 수치다. 주요 원인으로는 중국 관광객이 선호하는 관광호텔의 부족, 무자격 가이드의 질 낮은 서비스, 질 낮은 음식, 쇼핑 강요 등이 꼽혔다.

 

조용히 빠져나간 제3국, 신시장은?

사실 빠져나간 관광객은 중국인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대만인은 54만5000여 명으로 2012년보다 0.7% 감소했다. 한편 일본으로 향한 대만인은 50% 이상 폭증해 221만 명에 달했다. 태국인 역시 한국행은 3.8% 준 반면, 일본행은 74%나 증가했다. 홍콩·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 비슷한 수치다. ‘중심(中心)을 못 잡은 중국인 관광객 모시기’에 가려졌던 제3국 관광객의 소리 없는 이동인 셈이다. 일각에서 “중국인들의 마음 잡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면서도 “신시장 개척 또한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빠져나간 제3국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그 수치를 늘리고 있는 곳도 있다. 바로 러시아다. 2013년 방한 러시아 관광객은 약 18만 명. 전년 대비 5.2% 신장한 수치다. 중국 방한객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치지만 잠재성은 그에 못지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러시아는 2012년 세계에서 5번째로 큰 아웃바운드 시장으로 꼽힌다. 해외 체류기간은 전 세계 평균의 2배 이상이다. 해외 평균 지출 비용도 1인당 1932달러(약 205만원)으로 전 세계 1위다. 오래 머물며, 돈도 많이 쓰니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특히 올해부터 한-러 비자면제협정이 발효되면서 그 잠재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올해부터 러시아인은 비자 없이도 한국에 60일까지 체류할 수 있다.

실제로 제주도에서는 일찍이 러시아 관광객을 차기 인바운드 시장으로 삼고 마케팅을 펼쳐왔다. 서영호 제주관광공사 해외마케팅 파트장은 “러시아는 제주관광의 질적 성장과 고부가가치 관광을 위한 핵심 전략시장”이라면서 “지난해 40명의 관광객을 대상으로 팸투어를 진행해본 결과, 만족도가 높아 그 잠재가치 또한 확인했다”고 전했다. 서 파트장에 따르면 러시아는 기후가 춥고, 내륙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라 ‘온화한 기후의 해변’이라는 제주의 콘텐츠를 매력적으로 느낀다.

조용성 롯데호텔제주 제주판촉팀장 또한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게 된 만큼 앞으로 더 많은 러시아 관광객이 제주도를 방문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러시아 고객 유치를 위해 올레 체험, 한라산 트레킹과 같은 특화 관광 테마와 연계해 더 많은 패키지 상품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주도뿐만이 아니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비자면제 협정으로 올해는 러시아 관광객이 수십만 명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는 러시아 관광객들을 도심에 까지 끌어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데 신시장 잡기는 아직까지 시기상조인 듯 보인다. 한 특급호텔 관계자는 “아직까지 물량이 큰 중국, 일본인 관광객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면서 “투숙객 비율도 중국, 일본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타’로 잡히고 있다”고 했다. 여행업협회 관계자 또한 “중국 물량이 빠질 경우를 대비해 구미주 등 제3시장 개척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구체적인 논의는 오가지 않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제3국 관광객의 방한 목적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할 때라는 지적도 있다. 윤병국 경희사이버대 관광레저경영학과 교수는 “미얀마, 라오스, 러시아 등 제3국 관광객의 경우 단순 쇼핑 관광이 아니라 교육, 의료 등 특수 목적으로 방한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지속가능한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국내 SIT(Special Interest Tourism·특수 목적 관광) 시장을 좀 더 개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수목적 방문이라 할지라도 여가에는 일반 관광을 하기 때문에 이와 연계한 프로그램이 구축돼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다. 실제로 지난 2월 5일 경기개발연구원은 ‘번역된 관광정보의 부족’, ‘연계 패키지 여행상품 미흡’을 의료관광객 유치를 위해 개선돼야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왕서방’, 언제까지나 ‘큰손’일까

“여행 중 모든 비용을 최저로 잡기에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계륵’, 모자라면 투입되는 예비군 같은 개념, 소위 ‘땜빵’이 가능하기에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관광객, 단체성이 짙어 감가상각비 등 손실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대상, 단돈 5000원만 싸도 입국 당일 숙소를 바꾸는 집단….”

불과 5년 전,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업계의 시선이었다. ‘귀한 손님’ 대접 받는 지금과는 한참 다른 모습이다. 당시에는 일본인 관광객이 ‘왕대접’을 받았다. 일본인 관광객 러시는 2009년께부터 2012년 중순까지 지속됐다. 그러던 2012년 6월, 중국인에게 자리를 내주고 같은 해 9월부터 꾸준히 감소 추세다.

믿었던 일본인 관광객이 급격히 빠져나가자 관광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대일본 인바운드 여행사는 폐업이 속출했고, 항공사는 급기야 일본행 항공편을 감편했다. 평소 일본인들이 자주 찾던 명동, 동대문 상가 사정은 말할 것도 없다. 한 달 매출이 많게는 50%까지 감소하기도 했다. 명동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가게들이 종전의 권리금에 비해 낮은 가격에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의 재편까지 초래했다는 의미다.

‘곤니찌와’ 외치다, 직격탄 맞고 ‘니하오’ 하기 바쁜 지금, 잠시 주변을 둘러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관광객을 ‘위하는 것’과 ‘휘둘리는’ 건 다르기 때문이다.

윤병국 경희사이버대 관광레저경영학과 교수는 “제각기 다른 국가에서 온 관광객의 입맛대로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다”면서 “한국 관광만의 국제적인 표준을 마련해 관광객에게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