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아산, 수천 억대 손실 입어…개성공단 입주 업체들도 불안

남북경협 사업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곳은 역시 현대그룹이다. 그 중 대북 관광 사업과 건설 사업을 진행했던 현대아산은 남북경협의 ‘몸통’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경협 초기부터 정부를 대신해 북한 고위층과의 교류에 앞장섰던 만큼 남북경협에 있어 현대가 미친 영향력은 매우 크다.

관광 사업 12년째, 창립 11년째를 맞은 현대아산의 오늘은 결코 밝지 않다. 특히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2008년부터 비상 긴축 경영에 들어간 상태다.

이미 일부 직원들의 급여가 삭감 또는 지급 유보됐을 정도로 현금 유동성 사정이 좋지 않다. 올해 2월에는 금강산과 개성에 소유하고 있었던 차량과 중장비 등의 자산을 매각했다. 700명에 가까운 내국인 직원과 조선족 직원이 감축되는 아픔도 겪었다.

여기에 최근 북한이 금강산 일대 부동산을 동결·몰수하고, 남한과의 관광 사업에 부정적인 메시지를 던지면서 최악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현대아산 측은 “북한이 불편한 감정을 풀고 다시 협력의 장으로 돌아오기만을 바랄 뿐”이라며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현대아산이 그동안 금강산에 투자한 금액은 토지와 시설 투자비용을 모두 포함해 약 7600억 원. 한국관광공사와 훼미리마트 등 외부 기업들의 투자 금액까지 합하면 금강산에 투자된 남측 자본은 9000억 원에 가까울 정도다.

현대아산의 시름은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지고 있다. 2008년 7월 관광객 피격 사고 이후 현대아산이 기록한 매출 손실액은 무려 2300억여 원이다. 현지 협력업체의 손실액까지 포함하면 3400억여 원에 이른다.


금강산 관광 사업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렸던 강원도 일대의 경제에도 타격이 커지고 있다. 물론 현대아산이 금강산 관광을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이미 3만여 명에 이르는 예약을 받아놓은 상황이다. 현대아산 측은 관광이 재개되는 즉시 예약자부터 금강산에 보내겠다는 방침이다.

현대아산은 대북사업 중단으로 인한 손실을 국내 관광 사업으로 메우고 있다. ‘PLZ(Peace & Life Zone) 관광’으로 명명된 국내 관광 사업은 비무장지대와 연천, 양구, 화천 등 인근 민간인 통제지역을 이른바 ‘평화 지향 생명지대’로 명명하고 주말을 이용해 이 일대를 여행하는 코스다.

북한의 산업단지를 개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사회기반시설(SOC)과 산업단지 건설에도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공사 규모가 작고 수주의 숫자도 많은 편이 아니다.
현대아산은 경협 길이 다시 열릴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하루 빨리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낸다면 힘겹게 이어가고 있는 현대아산의 경영 사정도 나아질 것이라는 것이 현대아산 측의 판단이다.

언제 무슨 일 터질지 몰라 불안
현재 100여 개 업체가 입주하고 있는 개성공업지구는 연일 파국을 맞고 있는 금강산과 달리 조용한 편이다. 개성공단 관계자들의 남북 출입 절차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오히려 인원의 이동 절차는 5월부터 더 간소화됐다. 물류의 이동 역시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북한도 금강산에 비해 개성공단에 대해서는 신중함을 기하는 눈치다.
2009년 북한이 개성공단 입주 기업에 대한 특혜를 없애겠다고 강경책을 펴면서 4~5개 업체가 철수했지만 그 이후에는 별 탈 없이 공단이 운영되고 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의 모임인 개성공단기업협회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북측으로부터 공단 운영과 관련해 전달받은 말은 없다”면서 “외부의 걱정과는 달리 공단이 원만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공단 내 분위기다. 북한의 금강산 부동산 몰수 사태의 불똥이 개성으로도 튀지 않을까 개성공단 관계자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북한이 연일 강경 일변도의 정책을 고수하다 보니 ‘제2의 12.1 조치’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개성공단 업체는 남한 정부의 대북 조치에 매 순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표적인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신원은 “공단 운영이 파행으로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향후 상황에 대해 긍정적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여러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원 개성공장은 개성공단에서 가동되고 있는 공장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의류봉제업이 중심인 이 업체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북한 체류 마지막 일정으로 들렀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신원 측 관계자는 “개성공장이 산업은행 손실보장보험에 가입됐기 때문에 투자비용 보전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면서 “북한이 개성공단의 운영을 방해한다면 개성공장의 생산량을 중국이나 국내에서 대체 하겠다”는 대안을 세워놓고 있다.

신원이 개성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물량은 전체의 7~8%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는 제품의 원재료를 개성공장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생산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개성공단에서 손목시계를 제조하고 있는 로만손 역시 근심이 크다. 로만손의 관계자는 “우리에게 예지력이 있다면 공단 운영이 더욱 순조로워 질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남북 관계의 미래 예측이 워낙 어렵다보니 대안을 세우는 것에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물 흐르듯 부드럽게 진행되고 있지만, 내일이라도 얼어붙을 수 있는 것이 대북사업”이라며 “북한이 공단 운영에 제재를 걸면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이 만약 개성공단을 축소·폐쇄하면 대외신인도가 떨어져 외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한 푼의 외화가 아쉬운 북한에게 구세주 역할을 해온 개성공단. 살얼음판 위를 걷는 개성공단이 과연 금강산처럼 파국을 맞을 것인지, 아니면 정반대로 원활한 흐름을 이어갈 것인지 앞으로의 움직임이 더욱 주목된다.

정백현 기자 jjeom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