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뉴질랜드 상속세 폐지…일본·독일 상속제 감면폭 상향

도요타는 가업 승계를 통해 장인 정신을 꾸준히 유지해 왔다. 최근 대규모 리콜 사태로 곤욕을 치루긴 했지만 장인 기업으로 쌓아온 신뢰는 '위기를 또다른 기회'로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


외국에서 장인 기업으로 불리는 곳은 대부분 가업 승계를 통해 만들어졌다. 독일의 ‘밀레’ 덴마크의 ‘포스’ 일본의 ‘도요타’가 대표적이다. 밀레는 명품 가전 생산업체로, 포스는 곡물 성분 분석기 세계 1위 업체로, 도요타는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로 유명하다.

이들 기업은 가업 승계로 인해 만들어지는 가족 경영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경쟁력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장인 정신을 강조하며 장인 기업으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라인하르트 진칸 밀레 회장은 공식석상에 나설 때면 “가족 경영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 원천”이라고 강조한다. 선대로부터 후대로 이어지는 기업 목표를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선 가업 승계를 최고로 꼽는다.

때문에 직계 구조로 이어지는 가업 승계를 가장 효율적인 구조로 보고 있다. 장인 정신이 발휘되기 가장 좋다는 게 그 이유다.

덴마크의 포스를 보자. 이 회사는 우유, 곡물 등 성분 분석기를 만드는 업체로 창립 이후 50년 간 세계 1위로 명성을 떨쳤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각국에 지사를 두고 있지만 직원 수는 1000명을 조금 넘는다.

외형을 키우기 보다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결과다. 포스 창업주의 경영철학인 ‘가장 먼저 개발하고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든다’는 것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가족 경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재까지 경영에 있어 변화의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다. 라하르트 진칸 회장의 말처럼 직계 위주로 이뤄지는 가업 승계가 밑바탕이 돼 있어 가능했다는 평가다.

최근 대규모 리콜 사태로 위기에 봉착한 도요타. 지난 3월 도요타의 도요타 아키오 사장은 유럽사업장을 방문해 “위기는 곧 산뜻한 출발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품의 품질 문제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된 만큼 다시 한 번 품질 경영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키오 사장은 도요타 창업자의 손자로서 장인 정신의 부활을 선언한 것.

회색 공장 점퍼를 입고 나타난 그의 모습은 도요타가 초심으로 돌아간 듯한 인상을 심었다. 그가 도요타 창업주의 손자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직원들은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잊은 채 새로운 미래를 다짐했다.

실제 도요타는 자국 내 생산 거점은 평소대로 가동되고 있고, 임직원은 2010년 매출 향상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처럼 가업 승계는 기업의 경영에 있어 장점으로 적용되는 부분이 크다.

이 같은 효과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에서도 나타난다. 기업의 경영 안정성을 바탕으로 장인 기업으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기업들이 많다. 독일, 일본, 미국 등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은 대체로 가업 승계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기업들이다. 각국 정부도 이 같은 점을 착안해 가업 승계를 위한 지원 활동을 아끼지 않는다.

장수기업의 나라 일본, 독일
일본은 가업 승계가 세계 어느 곳보다 많은 나라 중 하나다.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 문화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정부의 효과적인 지원 정책이 더해져 가능케 했다.

일본은 2008년 가업 승계 기업에 대한 상속세 경감을 80%까지 늘렸다. 과거에는 10%의 경감 혜택을 줬다.

또 중소기업의 경영자 평균 연령이 높아지는 점에 주목해 만들어진 경영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과 가업 승계 전략 마련 지원 서비스의 제공, 세제 감면 정책이 적중했다는 평가다. 이러한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현재 일본에는 가업 승계를 통해 100년 이상 된 장수기업이 5만 개에 달한다.

독일은 2008년 상속세 면제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40%의 감세 혜택과 동시에 중소기업이 가업 승계를 통해 10년 동안 고용을 유지할 경우 상속세를 전부 면제하겠다는 것이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가업 승계 관련 정책적 지원과 함께 자금 융자 및 출자 등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현재 독일은 가업 승계를 통해 장인 기업으로 성장해 세계 시장 60% 이상을 점유하는 중소기업의 수가 어림잡아 5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적극적인 지원책 필요
가업 승계로 인한 효과는 기업뿐 아니라 국가 경제 증가에 큰 도움이 된다. 가장 큰 점은 일자리 창출이다. 탄탄한 기술력과 경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경기 불황에도 흔들림이 없다. 그만큼 기업 수명도 긴 편에 속한다.

구직자들이 중소기업에 취업하지 않는 주된 이유가 짧은 수명(근무기간 단축)인 점을 감안하면 효과는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국가 기업 경쟁력 향상을 이끌어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국가 경제 구조의 대부분을 중소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중소기업이 가업 승계를 통한 장인 기업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국가 기업 경쟁력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 구조 중 중소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95%를 넘는다. 가업 승계를 통한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가 꼭 필요한 이유다.

우리 정부도 선진국처럼 기업 경쟁력 강화 및 경제 안정성을 위해 가업 승계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다.

상속·증여세의 완화와 혁신형 기업 육성 정책 지원 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또 가업 승계를 단순히 부의 대물림이 아닌 전통과 현재를 잇는 중요한 역할, 기술력 계승을 위한 노력이란 이미지를 확신시켜나갈 예정이다.

가업승계지원센터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가업 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보며 무조건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 것보다 대를 잇는 기술력 계승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외의 가업 승계 성공 기업은 철저한 사전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를 이을 후계자의 경영교육, 상속세와 증여세 감면을 위한 계획을 세워 행동한다. 특히 가업 승계 관련 자문기관과 협조를 통해 컨설팅을 받는 등의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

선대에서 후대로 이어지는 안정적인 기술 계승을 통해 장인 기업으로 키워내기 위해 준비를 하는 것이다.

가업 승계의 필수조건 ‘사전 준비’
정부 차원의 감세 정책으로만 중소기업의 가업 승계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사전 준비가 없다면 제아무리 정책적 지원이 뛰어나다고 해도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사례는 있다.

독일의 발터 라우(Walter Rau) 그룹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도 불구, 가업 승계에 실패했다.

3대를 걸쳐 내려오는 동안 후계자에 대한 승계 교육이 미흡했고, 지분을 대를 거듭할수록 늘어난 가족에게 똑같이 배분한 것이 가업 승계의 걸림돌이 됐다. 발터 라우 그룹은 1903년 구 서독에 설립된 유가공 업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마가린, 식용유 등 제품 생산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두며 비약적인 성장세를 거뒀다. 1958년 창업자의 아들이 회사 경영에 참여, 마가린 분야에서 유럽 기업 중 거대 그룹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3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가업 승계가 막을 내렸다. 후계자에 대한 교육 미흡이 주요 원인이 됐다. 또 지분 정리 등 가업 승계에 필요한 작업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도 한몫 거들었다.

이런 점에 비춰봤을 때 국내 정부의 감세 혜택 확대가 성공적인 가업 승계를 이끌어 내기 위해선 중소기업 스스로가 가업 계승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에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중소기업청을 비롯해 가업승계지원센터, 우리은행 등은 성공적인 가업 승계를 위해 필요한 준비 사항 등을 제공하고 있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