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봄바람에 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경북 청도로 달려간다. 봄꽃보다 먼저 찾아온 봄 미나리를 만나러 가는 길은 꽃구경보다 더 설렌다. 지글지글 잘 구워낸 삼겹살에 싱싱한 미나리 돌돌 말아 한 입 맛보면 입 안은 온통 봄, 봄이다. 유쾌하고 즐거운 도시, 눈과 코, 입 그리고 마음을 한꺼번에 기쁘게하는 재주 많은 고장이 바로 이곳, 청도이다.7

요즘의 청도읍 한재마을은 전국에서 몰려든 식도락가들로 북적인다. 주말이면 마을 입구부터 줄지어 늘어선 자동차들의 행렬에 작은 마을이 터져나갈 지경인데 이게 다 봄 미나리 때문이다. 청도의 화악산 자락에 들어앉은 한재마을은 평양 1, 2리와 음지리, 상리 등 4개 마을을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22만여평(75㏊)의 너른 밭에 온통 미나리로 가득하니 그 규모만으로도 입이 딱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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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삭아삭 상큼한 봄맛, 한재미나리

한재미나리는 3월과 4월이 가장 맛나다. 5월이 되면 줄기가 질겨져 맛이 덜하다. 지금이 딱 제철인 봄 미나리의 살진 맛은 쌉싸래하면서도 단맛이 난다. 상큼한 봄맛이다. 신선한 미나리를 그냥 쌈장이나 초고추장에 푹 찍어 먹어도 좋은데 실상 삼겹살과도 최고의 궁합을 이룬다. 지글지글 잘 구워낸 삼겹살에 갓딴 미나리를 돌돌 말아 먹는 게 ‘한재스타일’이다. 아삭거리는 미나리의 산뜻하고 알싸한 맛과 뜨겁고 고소한 삼겹살이 어우러진 이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봄이 혓바닥 위에서 춤을 추며 논다. 미나리 한 입에 봄이 품 안으로 와락 달려든다.미나리가 사람 몸에 좋은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비타민이 풍부한 알칼리성 음식으로 봄철 까칠한 입맛을 돋워 주고 혈액 순환을 도와 몸에 쌓인 독소를 밖으로 내보내는데 도움을 준다. 비타민뿐 아니라 칼슘과 철분, 카로틴 등이 풍부하고 식이섬유 함유량이 높은 기특한 채소 중 하나이다.한재마을에서 미나리를 맛보려면 식당으로 가든지 재배 농가의 비닐하우스를 찾든지 해야 한다. 거리 곳곳 미나리를 파는 식당과 비닐하우스가 즐비하고 맛도 거기서 거기인지라 애써 이름난 맛집을 찾을 필요는 없다. 다만 재배 농가에서 직접 미나리를 구매해 먹으려면 고기와 밑반찬 등을 준비해 가야 한다. 농가에서는 자리와 불판만을 준비해 준다. 식당을 찾으면 이런 번거로움이 줄어들긴 하지만 음식 양에 비해 가격이 좀 높은 편이다. 일행이 많거나 번잡하지 않게 먹고 싶다면 직접 재배 농가를 찾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10한재미나리는 3월과 4월이 가장 맛나다. 5월이 되면 줄기가 질겨서 맛이 덜하다.

달콤 쌉싸래한 청도 감와인

한재마을에서 봄 미나리로 산뜻하게 속을 채웠다면 와인터널로 간다. 화양읍 송금리의 와인터널은 본래 1905년 개통된 경부선 열차가 지나던 터널이었다. 1937년 선로가 이설된 뒤 최근까지 방치되다가 2006년부터 와인 숙성고로 쓰이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고 숙성되는 와인은 청도반시라 불리는 감으로 만들어진 감와인이다. 생김새가 둥글납작해 ‘반시’라 이름 붙은 청도 감은 씨가 없고 육질이 연하며 당도가 높고 수분이 많아 홍시로는 전국 제일의 맛으로 알려진 청도의 자랑거리다.1,000여 미터가 조금 넘는 길이의 와인터널은 연중 15℃의 온도와 60~70%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돼 와인 숙성에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고 한다. 안으로 걸음을 옮기면 청도반시와 감와인에 관련된 자료가 벽에 붙어 있고 다양한 종류의 감와인을 판매하는 숍과 테이스팅을 할 수 있는 와인 바가 차례로 나타난다. 몇 가지 치즈와 청도반시로 만든 양갱이나 초콜릿 등을 안주 삼아 이곳에서 빚는 와인을 종류별로 한 잔씩 맛보았다.청도와인은 크게 레귤러 와인과 스페셜 와인, 그리고 아이스 와인으로 나뉜다. 초겨울 서리 맞은 감으로 만든 아이스 와인은 그 달콤함이 극에 달한다.스페셜 와인은 화이트 와인이면서도 타닌의 맛을 풍부하게 표현하며 레귤러 와인은 좀 더 농밀한 달콤함을 살려냈다. 포도로 만든 일반 와인과는 확연히 다른 맛과 향인데 가볍게 즐기기에 좋을 듯하다.와인 제조 과정이 궁금하다면 하루에 3회 열리는 감와인 제조 체험에 참여할 수 있다. 개인의 취향에 맞는 와인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재미난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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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3 141, 2 선암서원은 박하담과 삼족당 김대유 선생을 모신 서원으로 1577년 지어졌다.3 화양읍 송금리의 와인터널은 1937년 선로가 이설된 뒤 최근까지 방치되다가 2006년부터 와인 숙성고로 쓰이고 있다.4 성곡리의 코미디철가방극장. 전유성이 만든 코미디 전용극장이다.

청도에서 낭만의 봄 밤

2년 뒤 찾으러 가기로 하고 와인 한 병을 구입해 보관 서비스를 신청하고는 청도에서의 고택체험을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금천면 신지리에는 조선시대 이름난 학자인 소요당 박하담(1479~1560) 선생과 그의 후손들이 거주했던 고택들이 모여 있다. 대표적인 곳이 운강고택과 만화당이다. 운강고택은 박하담이 벼슬을 사양하고 은거해 서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던 옛터에 그의 후손인 박정주가 1809년에 건립한 가옥이다.이 집은 당시 상류층의 살림집 형태와 규모를 엿볼 수 있는 ‘ㅁ’자 형태의 크고 아름다운 주택이다. 인근 천변에 자리한 아름다운 정자인 만화정은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하다. 신지리에는 명중고택과 운남고택 등도 있는데 개인 주택인지라 마음껏 둘러보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고택체험은 선암서원에서 할 수 있다. 운강고택 인근의 이서원은 박하담과 삼족당 김대유 선생을 모신 서원으로 1577년 지어졌다. 교육기관과 살림집이 붙어있는 독특한 형태로 한동안 비어 있던 것을 후손인 박향숙 씨가 살뜰하게 가꾸고 손질해 여행자들을 위한 고택체험 숙박 시설로 개방했다.하하하, 하고 크게 웃는 것으로 봄을 맞고 싶다면 성곡리의 코미디철가방극장으로 간다. 코미디언 전유성이 ‘TV를 통해서만 개그를 볼 수 있는 농촌의 사람들을 찾아가 눈앞에서 직접 웃겨주고 싶어서’ 만들었다는 코미디 전용극장이다. 평범하고 한가로운 농촌의 풍경 속 철가방극장은 웃음을 찾아 온 사람들로 연일 만원사례다. 관객들의 코앞에서 쉴 새 없이 웃음 폭탄을 터뜨리는 능청맞은 개그맨들은 전유성이 후배 양성을 위해 청도에 설립한 ‘코미디시장’ 출신. 열다섯 명 남짓의 개그맨들이 돌아가며 코너별로 출연해 기발하고 재치있는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몇몇은 지금 바로 ‘개그콘서트’에 출연해도 될 만큼 뛰어난 재능과 감각이 돋보인다. 80여 분의 공연은 빨리도 끝난다. 하도 웃어서 얼얼해진 볼을 감싸 쥐고 다시 청도의 봄속으로 나선다. 묵은 먼지 털어내듯 속 시원하게 웃고 나니 이 봄이 더 반갑다.

본 기사는 건강보험 제 2013.4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