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씨가 5일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첫 출근’했다. 게이츠 씨는 이미 5년 전 경영에서 손을 뗐고, 5일자로 이사회 의장직에서도 물러났다. 하지만 사티아 나델라 신임 CEO가 곁에서 도와달라고 간곡히 요청해 덜컥 기술고문을 맡고 말았다.

아침 출근길에 게이츠 씨는 생각했다. “구관이 명관이지. 평생 데이터나 만진 신참에게 MS를 통째로 맡기는건 좀 그렇잖아? 외견상으론 기술고문이니까 수렴청정한다는 말도 안 나올 테고.” 순간 나델라의 CEO 지명 이후 MS 주가 상승폭이 19센트에 그쳤던 것이 떠올랐다.

출근 전날 언론은 난리였다. ‘Bill Gates’s first day at work’(빌 게이츠의 출근 첫날)이라는 주제의 기사가 쏟아졌다. 자신이 “앞으로는 직원들과 직접 만나 신제품 개발과 신기술에 대해 논의하고 여유시간의 3분의 1 이상을 MS에 할애하겠다”라고 말하자 ‘황제의 귀환’이니 ‘MS 청신호’니 하며 대서특필했던 것이다.

게이츠 씨는 함께 첫 출근하는 CEO보다 기술고문이 더욱 주목받는다고 생각하니 나델라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은근히 자만심도 생겼다.

책상 위 컴퓨터를 켰다. 부팅시간은 여전히 길다. 헐, 아직도 OS가 윈도8이다. 게이츠 씨는 손수 MS의 최신작 윈도8.1로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비서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설치하려니 감회가 새롭다. 1975년 MS를 설립하던 때가 생각났다. 컴퓨터 몇 대 놓고 허름한 창고에서 창업한 지가 벌써 39년이라니..

그런데, ‘띵’ ‘띵’ 컴퓨터 화면에 자꾸 에러메시지가 떴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으니 컴퓨터를 다시 시작하라'. 점심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업그레이드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참다 못해 CEO 사티아 나델라를 불렀다.

기술전문가 출신 나델라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방문을 잠근 채 컴퓨터와 씨름하는 동안 방 바깥에서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게이츠 씨는 평소 매우 조용한 사람이어서 문틈으로 흘러나온 그의 성난 목소리는 기괴했다.

MS 대변인은 이날 소동과 관련 “게이츠 고문의 새 직무 첫날은 ‘경험쌓기’( learning experience)였으며,윈도8을 포기하고 윈도7을 쓰는 것으로 마무리했다”고만 밝혔다.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인 MS 공동창립자 빌 게이츠 씨로서는 참으로 험난한 출발(rocky start)이었다.

물론 이 글은 허구다. 칼럼니스트 앤디 보로위츠가 5일 미국 주간지 뉴요커에 기고한 패러디에 살을 붙였다. 나도 그렇거니와 보로위츠도 OS 윈도 8.1이 못마땅한가 보다. 그래서 모바일과 클라우드에 집중하겠다는 나델라-게이츠 커플에게 “하던 것부터 제대로 하라”고 일침을 가하고 싶었던 것 같다.

보로위츠의 칼럼을 사실로 오인한 영국 에딘버러 내피어 대학 빌 부케넌 교수가 댓글을 달았다. “기업 리더들은 자사 제품들을 항상 챙기고 있어야 한다는 사례다. 스티브 잡스여, 편히 잠드소서.” 옳은 지적이다. 잡스처럼 편집증적으로 품질을 챙겨야 일류상품이 나온다.

하지만 MS에 부족한 것은 제품 관리능력 만은 아니지 않나. 나델라는 경영자 경험도 없고 보수적이다. 게이츠 씨는 어떤가. 윈도 비스타에 집착하다가 애플사에 모바일 시장을 내줬고, 태블릿PC 시장은 아예 무시해버린 장본인이다. 1년 전에는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태블릿 이용자들이 결국 PC로 돌아올 것”이라고 장담할 정도였다.

 

지난해 출시한 MS의 태블릿PC 서피스가 '당연히' 시장에서 참패하는 것을 지켜 보며 다들 생각했었다. "MS가 통찰력 결핍증에 걸린 게 아닐까"라고. 다행히 이 결핍증은 리더가 겸손해지면 자생적이든,외부수혈로든 회복이 가능하다. 한 겨울, MS에 첫 출근한 두 사람의 건승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