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 성은 천혜의 난공불락이었다. 성의 사방을 휘감아 도는 넓고도 깊은 ‘해자(垓字)’는 공성전(攻城戰)을 불허했다. 일당 백의 무용을 자랑하던 적군은 해자에 빠져 죽거나, 천신만고 끝에 성벽에 접근해도 성 위에서 쏟아지는 화살이나 돌에 맞아 사망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구축한 이 성은 당대의 마지노 요새였다. 가치 투자자들은 ‘중세’의 웅장한 성에서 현대의 기업을 떠올렸다. 이 성을 방어하는 해자는 그들에게 현대 기업의 경쟁 우위 요소였다.

이러한 비유는 절묘하다. 코카콜라는 오묘한 맛을 앞세워 후발 주자들의 추적을 불허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이질적 사업을 관리하는 노하우가 발군이었고, 스타벅스는 소비자들의 숨은 욕구를 간파하는 ‘프레이밍(framing)의 고수’였다. 최준철·김민국 브이아이피(VIP)투자자문 대표이사는 가치투자의 정석에 정통한 이 분야의 고수들로, 서울대 재학시절 당시로서는 생소하던 가치 투자 확산에 크게 기여한 주인공들이다.

두 사람은 가치 투자의 정석에 충실하면서도, 매크로 변수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금리, 환율 등 기업의 실적을 좌우하는 변수가 분석 대상이다. 메가트렌드에도 늘 주목한다. 요즘 식자재 부문 기업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식생활 문화도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것이 최 대표의 진단이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이 가치 투자 전문가들을 비추는 등대다. 강력한 ‘해자’를 구축한 기업이 그들의 이상적 투자 대상이다. 종합 엔지니어링 분야의 강자인 미국의 ‘벡텔사’는 무엇보다 거대 프로젝트 관리 역량이 발군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라크의 재건 사업을 주도한 것도 바로 이 업체였다.

재무제표, 현금흐름, 공시 등은 강력한 해자의 존재를 가늠하게 하는 창(窓)이다. 물론 두 사람이 워런 버핏의 투자 노하우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아니다. 버핏 관련 저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코카콜라는 영화산업에 출사표를 던졌다가 체면을 구겼다.

강자들의 신사업 진출 수난사는 꼬리를 문다. 디즈니도 ‘MVNO(가상사설망)’시장에 진출했다가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다. 맥도널드는 수년 전 아동복 시장에 진입했다가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잭 웰치 시절 쾌속 순항을 하던 GE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후폭풍에 한동안 휘청거렸다.

일등상품이나 서비스의 유효기간이 하루가 다르게 짧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강력한 해자를 허무는 신기술은 꼬리를 문다.

두 사람이 주목하는 기업들은 바로 유효기간이 다한 해자를 끊임없이 허물고 새로 짓는 ‘리노베이션의 달인’들이다. 혼다를 비롯한 일본의 경쟁사들, 미국 업체들의 맹추격에 쫓기던 할리데이비슨은 마니아들의 의식을 끊임없이 파고드는 ‘심학(心學)’의 고수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히트작을 줄줄이 내놓는 스티브 잡스의 애플컴퓨터도 그렇다. 두 사람의 이러한 가치투자의 기준에 부합하는 국내 기업이 바로 동서식품이다.


맞춤형 상품으로 정밀하게 소비자 공략
이 회사가 작년 한 해 쏟아 부은 마케팅 비용만 무려 1500억 원. 같은 해 이익도 비슷한 규모였다. 맞춤형 상품으로 소비자들을 공략하는 마케팅 역량이 이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다.

수많은 제품이 쏟아져나오는 커피 음료 시장에서 흔들리지 않는 시장 우위를 점유하는 원동력이다.

두 사람은 이 회사 특유의 부지런함에도 주목한다. 주말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공공장소에 나가보면 이 회사 제품을 홍보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것. 지난 10년 간 주가가 10배 정도 상승한 이 기업의 주식을 지금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특정 분야에서 아직 할 일이 너무 많은 기업들이 투자 대상이에요. 기업들이 본업보다 다른 영역을 기웃거리는 것도 경쟁사들을 따돌릴 주특기가 희미하기 때문이거든요.”

유럽의 피터 드러커로 통하는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은 틈새 분야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기업을 ‘히든 챔피언’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이쑤시개, 가죽신발, 볼펜, 등산용 칼 등 부문별 틈새시장을 거점으로 해외무대로 진출하며 자국 시장의 영세함을 극복한다. 투자 매력이 높은 기업들도 시대에 따라, 프레임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진다.

인도, 중국의 가치투자주에도 눈길
브이아이피 투자자문을 이끄는 최준철·김민국 공동대표는 지난 2001년 서울대 주식동아리에서 만났다. 서울대 경영학과, 경제학과를 각각 나온 두 사람이 가치 투자의 깃발을 치켜들 때만 해도 아직 국내에 워런 버핏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대학생 시절 가치 투자 펀드를 출범한 것은 두 사람이 유일하다. 이들의 도전을 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하는 백면서생들의 치기 정도로 폄하하는 이들이 많았다. 주식 투자가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며 점잖은 충고를 하는 지인들도 적지 않았다.

지난 2005년 브이아이피 투자자문을 창업한 두 사람이 현재 운용하는 자금 규모만 3000억 원. 최소 투자 금액은 2억 원이다. 두 사람은 가치 투자의 정석에 충실하면서도, 매크로 변수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금리, 환율 등 기업의 실적을 좌우하는 변수들이 분석 대상이다.

메가트렌드에도 늘 주목한다. 요즘 식자재 부문 기업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식생활 문화도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것이 두 사람의 진단이다. 아침에 간단한 식사를 배달시켜 끼니를 해결하는 가구가 늘어나는 추세다.

아직도 영세 업체들이 시장을 주도하는 식자재 분야에도 대기업들이 진출해 게임의 규칙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두 사람의 분석이다. 유통 대기업들이 동네 상권에 진출한 것과 비슷한 이치다.

두 사람은 CJ푸드, 롯데삼강 등을 이 분야의 유망기업으로 꼽는다. 두 사람의 투자 무대는 지금까지는 국내시장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5년 안에 투자 대상을 인도,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신흥 시장, 그리고 미국, 유럽 등 선진국으로도 확대해 나가고 싶다는 것이 이들의 바람이다.
대한민국의 고객들에게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 흩어져 있는 가치 투자주를 콕 짚어 제공하고 싶다는 것. 지금도 틈만 나면 리서치 역량 강화에 시간을 쏟아 붓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