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불황에도 외국선 정부지원으로 선박 인수 열올려, 호황 대비

우리 모두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한국이 반도 국가라는 것이다. 반도 국가라 함은 대륙과 연결되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형을 일컫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남북이 갈라진 상황에서 우리가 인접 국가 중국으로 가는 방법은 비행기나 배를 이용하는 것뿐이다. 무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출로 먹고산다는 한국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운송 수단은 배다. 실제로 우리나라 수출입화물의 99.7%는 선박으로 운송된다. 대표적인 예로 한전 발전회사의 연료탄과 POSCO의 원자재는 100% 선박으로 수송된다. 해운업이 중요한 이유다.

해운은 석유제품과 반도체, 자동차, 조선과 함께 5대 외화가득 산업으로 불린다. 지난 2012년 외화가득 산업 현황을 보면 석유제품이 576억달러, 반도체가 509억달러, 자동차 424억달러, 조선 382억달러, 해운 344억달러순으로 기록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해운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4.6%에 불과해, 점유율을 10%로 늘릴 경우 해운수입은 7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해운업의 직접 및 연관산업 간접 고용 기여도 크다. 해양 및 항만산업에는 40여 개 업체에 50만 명이 종사하고 있고 연간 매출도 145조에 달한다. 해운업의 경제적인 파급 효과는 조선과 철강은 물론이고 금융과 관광산업 등 산업 연계성이 매우 크다. 이뿐만 아니라 국가 비상사태에서 전시물자를 수송하는 등 국가 안보를 담당하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어 2006년부터는 국가필수국제선박제도를 도입, 운영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위기에 빠진 해운업”

이처럼 우리 경제에서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해운업이 위기에 봉착했다. 해운업은 그 자체로 글로벌 경기를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국내 해운업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황에 따른 물동량 감소와 선박 운임 하락으로 시련을 겪고 있다. 물건을 실어 나르는 배는 크게 벌크선(곡물, 광석, 원유 등을 수송)과 컨테이너선으로 나눌 수 있는데 벌크선 운임 수준을 나타내는 BDI(Baltic Dry Index)는 2007년 7071포인트에서 2012년 920포인트로 5년 사이 7분의 1로 폭락했다. 컨테이너선 대여 가격을 지수로 만든 HRCI(Howe Robinson Container Index)도 2005년 1833포인트에서 2009년 366포인트로 곤두박질한 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해운업계를 압박하는 또 다른 위기요인은 국제유가 상승이다. 선박 연료로 쓰이는 벙커C유의 평균가격은 10년 전보다 무려 4배 이상 올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해운기업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지만 대한해운과 삼선로직스, 대우로지스틱스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파산의 길을 걸었다. 국내 3위였던 STX팬오션도 법정관리가 진행 중이다. 국내 랭킹 1위 한진해운(세계 9위), 2위 현대상선(세계 18위)도 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이 두 회사는 2011년과 2012년 1조원 넘는 누적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업계가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대한 영구채 발행 지원이다.

해운업계 운임수입 추이

경쟁국만큼만 지원해준다면”

해운업계는 경쟁국들에 비해 우리 정부의 해운업 지원이 매우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특별 대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다른 국가에서 지원하는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다. 현재는 정부가 2009년 캠코로 선박펀드를 운영하고 있으며 2011년부터 무역보험공사에서 수출기반 보험을 발행해주고 있으나 전체 규모가 1조원대 지원으로 미약한 실정이다. 반면 중국이나 덴마크,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은 해운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대대적으로 지원하고 있어 대비된다.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행이 COSCO에 108억달러 신용을 제공한 데 이어 중국수출입은행도 2012년 COSCO와 China Shipping에 향후 5년간 각각 95억달러씩 지원하기로 했다. 또 중국수출입은행은 2013년 초 5개 민영 중견해운사에 1억6000만달러의 유동성을 지원했다. 유럽에서도 독일은 Hapag-Lloyd에 18억달러의 지급보증을 섰으며, 지방정부인 함부르크시도 2013년 7억5000만유로의 유동성을 지원했다. 덴마크 역시 MAERSK에 62억달러의 금융을 차입하고 수출신용기금을 통해 5억2000만달러를 지원했으며 프랑스도 자국 선사인 CMA-CGM에 채권은행을 통해 5억달러를 지원토록 한 데 이어 국부펀드 1억5000만달러를 지원했다. 2013년에는 금융권을 통해 향후 3년간 2억8000만유로를 더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당면한 위기 타파를 위해 해운업계도 정부 지원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뼈를 깍는 자구 노력으로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업계 1위 한진해운은 컨테이너선 13척을 매각 또는 해체하고 컨테이너 적자노선을 통폐합하거나 철수했으며 적자 사업인 탱커 및 케미컬 영업도 철수 및 축소했다. 또 적용선부분 매각과 터미널부분 지분 매각 등 고강도 재무구조 개선계획을 확정하고 이를 통해 1조9745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하기로 했다. 현대상선도 마찬가지다. 현대는 그룹 차원에서 현대증권을 비롯한 금융 3사를 매각하는 등 3조3000억 이상의 자구안을 추진하기로 했고 보유하고 있는 항만터미널사업의 일부 지분을 매각하는가 하면 벌크 전용선부문의 사업구조를 조정하여 약 1조5000억원을 조달했다. 현대상선이 보유한 국내외 부동산 및 유가증권, 선박 등도 4800억에 매각해 총 3조3000억 이상의 유동성을 확보할 계획이다.

국내 메이저 선사인 이 두 기업은 벌크부분을 매각하고 컨테이너선 부분에만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양사 모두 컨테이너 운영선대 규모에서 세계 8위와 17위의 글로벌 선사다.

국가별 선박 보유량 및 외국 해운산업 지원 사례

무한경쟁 돌입한 글로벌 해운업계”

글로벌 해운사들의 합종연횡도 변수로 작용한다. 세계 1위인 덴마크 머스크를 중심으로 세계 해운업계 빅3가 P3네트워크를 결정하고 오는 5월부터 노선 공유에 돌입한다. 이에 맞서서 현대상선 등이 소속된 G6얼라이언스와 한진해운이 참여하는 CKYH(COSCO, K-Line, 양밍, 한진) 등도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이제는 개별 해운사 간의 경쟁이 아닌 해운동맹 간 싸움으로 확대된 것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3400만DWT로 30%를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두 선사가 자금 유동성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글로벌캐리어의 지위도 사라지고 회생한다 하더라도 지역선사로 전락하게 된다.

세계 1위 머스크사는 한국의 수출입은행 자금으로 1만8000TEU급 초대형 선박 20억을 대우조선해양에 발주해 본격적인 규모 경쟁으로 우리 국적선사를 압박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 국적선사는 유동성 위기로 선박 발주는커녕 핵심자산을 매각하며 자구책을 마련 중이다. 해운업의 영업적자가 지속되면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각각 775.3%, 850.7%까지 뛴 상황이다.

해운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금융 지원 시급”

당면한 해운업 위기 해결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정책금융 지원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해운선사들이 현재 추진 중인 영구채 발행 시 금융권의 지급보증으로 신용을 보강해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선사들이 영구채를 발행하고 자본을 확충해 높아진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해운업의 위기 극복과 유동성 확보를 위해 해운보증기금을 약속한 바 있으나 이행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선박금융공사 설립을 공약한 바 있지만 당선 후 WTO 보조금 규정 위반 등의 이유로 2조원 규모의 해운보증기금 설립 쪽으로 전환하고 있다.

해운산업은 조선과 철강산업과 공생관계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해운 경기가 살아야 선박 발주가 늘어나고 조선산업이 살아야 배에 쓰이는 철강산업도 동반 성장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해운업의 불황이 장기화됨에 따라 조선산업도 동반 침체를 겪고 있다. 특히 국내 중소 조선소 및 기자재 업체의 경영난이 대형 조선소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정부의 해운산업 지원이 우선되어야 한다. 해운업이 살아야 국내 선박투자가 활성화되고 중소 조선소에 일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해운물류학회장인 한종길 성결대 교수도 “2013년 무역흑자 430억달러 가운데 해운업이 벌어들인 314억8000달러가 없으면 매우 허약한 수치”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무역을 통한 경제부흥을 이루고 2020년까지 무역 2조달러 세계 무역 5강을 목표로 제시했는데 경기 사이클의 변동에 대처할 수 있는 강한 체력의 국적선사 없이는 결코 달성할 수 없는 만큼 정부의 더욱 강력한 국적선사 지원책을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