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경기도 분당에 사는 김성한(36) 씨는 얼마 전 점심시간을 이용해 펀드를 가입하러 증권사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언론에서 자통법이 통과돼 가입 절차가 복잡해졌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점심시간에 짬을 내 가입하기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성향 조사에서부터 성향 분류에 따른 상품 설명, 계좌 개설 등 모든 고지를 받으려면 적어도 1시간30분 정도는 걸린다는 상담원의 이야기에 김 씨는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된 후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정작 달라진 건 없는데 절차만 복잡해진 게 사실이다. 투자자 보호가 목적이라지만 김 씨처럼 가입시간이 길어도 너무 길다고 느끼는 투자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자통법이 시행된 후 왜 이렇게 펀드 가입시간이 길어진 것인지 가상 펀드 가입을 통해 낱낱이 한번 파헤쳐보자.

펀드가입, 그 모든 것을 알려주마
펀드 가입 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자신의 투자성향을 파악하는 일이다. 먼저 본인의 연령과 투자기간, 소득상태, 투자 목적 등에 대한 간단한 질문에 답한 후 항목별 배점표를 통해 점수를 매겨보자. 그 점수를 모두 더한 뒤 총점 64점으로 나누고 다시 100을 곱하면 나의 점수가 나온다. 나의 점수를 고객성향 분류표에 적용시켜보자.

예를 들어 점수 합이 36점일 경우, 36점을 총점인 64점으로 나눈 후 100을 곱한 56.2점이 나의 점수가 되는 것이다. 56.2점일 경우 나의 투자성향은 위험중립형에 해당한다. 이때 상담직원에게 자신의 성향과 그에 알맞는 상품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상품이 마음에 들면 계좌를 개설하고 가입하면 된다.

하지만 상담직원이 안내하는 가입 절차를 따라가다 보면 작성해야 하는 서류가 한두 가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중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의문을 갖는 것은 초과위험확인서다. ‘금융상품 투자와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은 본인이 감수한다’는 데 동의하는 확인서인 것이다.

금융투자협회가 배포한 권고안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용되는 위험중립형이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은 채권, 원금이 부분 보장되는 파생상품 등이 고작이다. 일반적으로 펀드를 생각할 때 떠올릴 수 있는 주식형 펀드, 즉 각 판매사들이 홍보하고 있는 인기 상품들은 원칙상으로는 절대 가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초과위험확인서’를 작성한후 내가 원하는 상품에 가입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확인 절차가 이처럼 복잡한 부분에 대해 최근 투자자들의 펀드소송이 이어지자 증권사들이 면피용으로 만들어놓은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오는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금융투자협회 이창화 규제기획팀장은 “이번 권고안은 법적인 제재가 있는 게 아니고 적합성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증권사 측에서 차후 발생할 문제에 대한 대비책으로 엄격하게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는 증권사에 따라 투자자들의 성향에 대한 해석이나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의 종류가 다른 경우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펀드 가입시간이 일반적으로 1시간30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고객들은 덜 불편한 곳을 찾지 않겠느냐”면서 “증권사들의 성향에 따라 가입할 수 있는 상품들도 달라지기 때문에 앞으로 고객들이 선호하는 증권사들이 양분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희나 기자 hnoh@er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