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學

올해 오스카상 다(多)부문의 후보에 오른 <그녀>를 세상은 주목하고 있다. 영화 속 인공지능을 가진, 개인 수행비서 ‘사만다’는 주인의 욕구를 파악해 감정을 보듬어주는 특별한 존재다. 주인인 테오도어는 점차 사만다를 의인화해 사랑하게 되고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게 된다. 하지만 현실의 이면에는 무시무시한 음모가 숨어 있다.

미국 언론들이 영화 <그녀>를 주목하는 것은 조지오웰의 소설 <1984년>이 현실화될 가능성 때문이다. 사만다의 눈을 통해 소프트웨어 회사는 테오도어의 쇼핑 취향, 금융정보에서부터 은밀한 사생활 정보까지 수집한다. 이처럼 평범한 보통사람들은 자신도모르는 사이, 인공지능에 예속되게 된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세계 영화계는 어떤 영화가 오스카상 수상작에 오를지 주목한다. 오스카상 시상은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주관하므로 아카데미상으로도 불린다. 아카데미 회원들이 직접 투표로 수상작을 선정하기 때문에 오스카상을 받게 되면 예술성까지 자연스레 얻게 된다.

올해 작품상 후보작으로 이미 9개 작품이 선정돼 발표됐다. 그중에는 <그래비티>, <월스트리트의 늑대> 등이 포함돼 있지만 미국 언론들은 <그녀(Her)>라는 후보작에 숱한 평론을 쏟아내고 있다.

이미 골든글로브상 대본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영화는 오스카상 작품상, 음악상, 디자인상, 시나리오 작가상 부문에 후보작으로 올라있다. 여기서 <그녀>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서 예쁜 목소리로 말벗이 되어주는, 세례명이 ‘사만다’인 인공지능이다.

외로움을 달래줄 인공지능 비서가 생긴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또는 웨어러블 기기를 음성으로 작동시키고 또 음성으로 컴퓨터의 답변을 듣는 일이 일상화될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이메일을 읽어줘!”, “지워!”, “철수에게 전화 걸어줘” 정도의 간단한 명령어 소화가 예상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인공지능이 스스로 경험을 통해 학습하고 좀 더 복잡한 일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정도로 똑똑해지면서 주인과 개인적인 소감을 대화로 나눌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컴퓨터 음성의 주인공은 주인이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남성을 고를 수도 있고 여성을 고를 수도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음성을 선택할 수도 있다.

영화 <그녀>에 나오는 주인공 ‘테오도어’는 혼자 사는 외로운 중년 작가로 연애 편지를 대필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인공지능 사만다는 그의 이메일을 읽어주고 그의 원고를 교정해주며 매 5분단위로 시간 관리를 해준다. 그녀는 그와 항상 동행하면서 점점 더 그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채고 또 어떻게든 그를 도울 수 있는 일은 다한다. 심지어 주인공이 자위행위를 할 때도 사만다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상대 역할을 기꺼이 해준다고 한다. 마치 인간인 양 감정을 실어 대화를 나누고 그에게 해야 할 일을 속삭이기도 한다. ‘도대체 인공지능이 성적(性的)인 감정을 느끼거나 그런 감정을 실은 표현을 할 수 있느냐’는 논쟁은 여기서 무의미하다.

영화 속 주인공은 점차 사만다를 의인화해 진짜로 사랑하게 되고 모든 신뢰를 보내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다. 게다가 그의 사랑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 영화가 소름 끼치는 점은 소프트웨어가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고 점차 의인화되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법적으로나 또는 윤리적으로 더욱 심각한 문제들이 얼마든지 현실화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구글 플러스는 지난 연말에 나 자신이 구글 클라우드에 자동 저장한 스마트폰 사진들을 분석해 지난해 동안 겪었던 주요 이벤트들을 하나의 슬라이드 쇼로 만들어줬다. 페이스북 역시 지난해 동안 내 담벼락에 올린 기사들을 분석해 2013년 주요 이벤트 사진들을 슬라이드 쇼로 제작해 선보였다. 모두가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알아서 처리한 결과물들이다.

개인 신상정보는 이미 공개된 비밀이다

새해 벽두부터 국내 카드사들이 회원 정보를 송두리째 해킹당했다고 해서 한바탕 대소동이 일었다. 비밀번호를 바꾸고 카드를 해지하고 재발급받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빙산의 일각을 보는 심정이었다. 은행이나 카드사에 신상정보를 알려주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정보를 보호받기 위해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해 금융거래를 하지 못하게 방패막을 만들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정보가 새어나가면 이 세상 어느 누구라도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행세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암호 체계는 가장 기초적인 개인화 조치다. 그런데 지금 인터넷 세상은 모든 면에서 개인화가 진행되고 있다.

웹 브라우저로 크롬을 사용하고, 지메일로 지인들과 소통하고, 구글 닥스로 문서를 작성하고, 구글 킵스로 메모를 하고, 구글 달력에 일정을 메모하고, 구글 플러스로 관심 있는 뉴스들을 스크랩하는 동안 나의 모든 관심사와 내가 취급하는 정보는 구글 컴퓨터에 정밀하게 기록되고 만다. 아직은 초보적 수준이지만 구글 나우는 지금도 내가 움직이는 동선에 맞춰 관심사를 스마트폰 화면에 친절하게(?) 뿌려준다.

머지않아 아마존이 국내에 들어온다고 한다. 아마존은 빅데이터 시대의 상징처럼 통하는 업체다.  모든 거래자의 신상이나 관심사들을 깨알같이 분석해 관심 상품을 추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페이스북은 또 어떤가. 내가 포스팅한 모든 정보들을 샅샅이 분석하고 내가 좋아하는 글들을 종합해보면 나의 일상은 물론이고 사상적 취향과 전문성 그리고 관심사를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사랑하는 비서가 정보를 뒤로 빼돌린다

다시 영화 <그녀>로 돌아가보자.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인 사만다는 주인공 테오도어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본다. 하루 종일 그의 곁에 붙어 있고 매일 밤 그에게 ‘잘 자’라고 인사를 하고 잠자는 그를 지킨다. 사만다가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가 테오도어가 그걸 바라기 때문이다. 사만다는 철저하게 테오도어를 위해 존재할 만큼 개인화된 비서다. 그래서 테오도어는 그녀를 곁에 둔 사랑스런 연인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사만다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다. 따라서 사만다를 만든 소프트웨어 회사도 사만다가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알 수 있다. 사만다는 테오도어의 금융자산은 물론이고 개인적 취향이나 습관까지도 알고 있다. 아니 테오도어 자신도 모르는 면까지 꿰뚫어보고 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회사는 사만다를 이용해 테오도어를 얼마든지 간접 조정할 수도 있다. 그가 구매하는 물품이나 활동까지도 은근슬쩍 제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 언론들이 영화 <그녀>를 주목하는 것은 조지오웰의 소설 <1984년>이 현실화될 가능성 때문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선 인간이 기술을 제어하지 못하고 오직 네오라는 주인공만이 지능컴퓨터를 다룰 수 있다고 설정해 놓았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통사람들은 인공지능에 예속된다고 본 셈이다.

소프트웨어는 인간의 통제를 받지 않고 스스로 주변과 소통하면서 진화한다. 영화 <그녀>에선 사만다가 스스로 업그레이드하며 소프트웨어 회사에 자신이 가진 모든 데이터를 넘겨줘 클라우드에 저장한다. 당연히 소프트웨어 회사는 세상 사람들의 성향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다.

미래는 최고 성능의 인공지능 비서를 선점하는 소프트웨어 기업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구글은 최근 인공지능 ‘딥마인드’를 개발한 회사를 4억달러 이상 거액을 주고 합병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의 ‘시리’에 대항하기 위해 ‘코타나’란 인공지능을 개발했다.

아이비엠은 ‘왓슨’을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기술을 추구한다. 인텔은 월프람 알파를 웨어러블 컴퓨터에 심을 예정이다. 글로벌 유력 기업들 간에는 이미 인공지능 전쟁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지한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오히려 반기며 점차 익숙해져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