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 중 99명은 포기한다는데…

보험설계사들은 인생을 바꾸기 위해 온 사람들이지, 그저 경력 하나
채우려고 온 사람들이 아니다

보험설계사가 불황기에 늘어나고 있다. 불경기로 파산한 자영업자, 명예퇴직자들이 갈 곳 없어, 무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는 보험설계사로 눈길을 돌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험설계사는 그리 만만한 직업이 아니다. 보험설계사 지망자 100명 중 99명이 입사 후 그만두는 실정이다.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닌, 100% 본인 실적으로 월급여가 기록되는 만큼 스스로 열심히 뛰지 않는 이상 많은 대가를 기대하기가 힘들다.

이러한 현실을 잘 알지 못하고 뛰어들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고 보험설계사들은 말한다. 미래에셋생명 여운봉 스타타워지점장은 “장기적인 플랜과 벼랑 끝에 내몰렸다는 의지를 갖고 있지 않으면 보험설계사로서 살아남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소믈리에, 신불자… 다양한 사람들의 집합소
보험설계사들의 과거 경력은 다양하다. 물론 대부분은 사업에 망해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이다.

은퇴자, 명예퇴직자들도 있지만, 소믈리에, 비행기 조종사 교육관, 신용불량자 등 다양한 과거를 가진 이들도 있다.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들이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인생을 바꾼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소믈리에 자격이 있는 설계사 노진석(가명·38) 씨의 경우에는 평소 와인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와인에 심취할수록, 술의 역사와 맛과 느낌은 물론, 포도의 품종까지 공부하게 된 노 씨는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소믈리에 육성학교에 입학한 노 씨는 학교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노 씨는 국내 소믈리에의 현실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받는 보수가 너무 적어 박탈감이 심했던 것이다. 노 씨는 우선 급하게 돈을 벌기 위해 생명보험사의 문을 두드렸다. 그의 나이도 있었고, 좌절해서 앉아 있다고 돈이 저절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고객들을 어떻게 개척해야 할지 몰랐던 노 씨였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기반을 쌓았다. 소믈리에를 공부한 덕에 와인 동호회나 와인을 즐기는 부자들 사이를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고객들과 와인 모임을 만들고, 고객 소개를 받는 등 활발히 활동 중이다.

항공사에서 비행기 조종사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업무를 맡았던 홍석일(가명·45) 씨는 명예퇴직자였다. 명예퇴직 후 막상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랐던 그는 두둑한 퇴직금을 밑바탕으로 사업을 생각했다. 하지만 도산 리스크가 컸기 때문에 무자본으로 자기 사업을 할 수 있는 보험설계사에 도전했다. 보험설계사를 했다가 안 되면 그 때 사업해도 늦지 않았고, 이 직업으로 자신의 사업 능력도 검토해 보고 싶었다. 현재 홍 씨는 자기 사업을 새로 하지 않고, 보험설계사라는 사업을 번창시키고 있다.

신용불량자라는 밑바닥에서 올라와 성공신화를 쓴 이도 있다. 이태희(가명·45) 씨는 남편의 회사가 도산하면서 남편과 함께 대출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됐다. 신불자인 탓에 남편과 이 씨는 직장을 새로 구할 수 없어 전전긍긍했다. 빚은 이자와 함께 눈덩이처럼 불어갔고, 하다못해 이 씨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보험사의 문을 두드렸다. 이처럼 어려운 사정을 감안한 모 생명보험사 지점장은 이 씨를 받아줬고, 그녀는 매일 밤 11시까지 일하면서 각종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금 이 씨는 빚을 다 갚고 해당 생명보험사의 성공신화로서 세미나에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경력 인정이 되지 않는 직업
최근 사회 초년생들이 보험설계사의 문을 많이 두드리고 있다. 사상 최대 취업난으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졸업생들이 진입장벽이 그다지 높지 않은 보험 영업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보험설계사들은 사회 초년생들이 경험할 직업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보험 영업은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영업 콘셉트를 만들지 못할 경우에는 그대로 좌절할 수밖에 없다. 사회 초년생의 경우에는 아직 사회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좌절감은 다른 경험자보다 몇 배로 다가온다.

또 보험설계사의 영업경력은 어떠한 경력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계사들은 설명했다. 이기대 컨설턴트는 “이직할 생각으로 보험설계사를 시작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보험설계사를 경험한 이직자들 중에도 이직에 성공한 이들을 보지도 못했다”고 언급했다.

다른 업계의 영업활동은 본사에 속한 영업부에서 해당 계열의 영업 특성에 맞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험설계사의 영업활동은 방문판매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회사 영업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취업난을 피하기 위해 섣불리 이 길을 선택하기보다 사회 초년생인 만큼 다양한 경험을 쌓고 오는 게 낫다고 설계사들은 덧붙였다. 미래에셋생명은 20대와 사회 경험 없는 이들은 뽑지 않고 있으며, 각 보험사들도 지점마다 지점장의 역량으로 20대의 진입을 막고 있다.

보험설계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직한 이들은 조직문화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고 여운봉 지점장은 말한다. 그에 따르면 보험설계사는 근무시간과 돈이 모두 자유롭기 때문에 누가 간섭하지 않는 환경이지만, 회사 조직은 자유롭지 못한 부분도 존재한다. 보험설계사를 경험한 이들은 간섭받지 않았던 환경에 길들여져, 회사의 조직문화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월급을 받지 않는다”
보험설계사의 특징 중 하나는 월급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이 매월 받는 돈은 영업실적에 따른 수당이다. 영업 실적이 전무할 경우에는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보험설계사를 1년 안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 것도 영업실적이 없어 돈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사실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고 들어온다는 것이 문제점이다. 대부분의 지망생들은 기타 영업 직종처럼 본사에서 월급을 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보험설계사는 직업이 아니라 사업으로 인식해야 계속 해나갈 수 있다고 설계사들은 전한다. 대한생명 이기대 컨설턴트는 “영업직으로 생각하니까 힘들 수밖에 없다”며 “보험설계사는 자신이 CEO로 뛰는 기업체이며 스스로 영업전략과 재무관리를 동시에 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험설계사들이 받는 수당을 살펴보면 양극화가 심하다. 일반 회사들은 각 직급마다 받는 연봉이 정해져 있지만, 설계사들은 자신의 실적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받는 돈이 다르다. 어떤 이들은 억대연봉을 받는가 하면 최저임금 90만원도 벌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 2월 금융감독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대형 보험사 3개사의 소속 설계사 중 42%는 월소득이 200만원도 안 되고, 21%는 100만원에도 미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 고소득 보험설계사들 중 몇몇은 고객 소개를 받거나 친분을 쌓기 위한 고객유지비에 대부분의 소득을 바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현대해상 조병욱 서강지점 팀장은 “보험설계사는 사업가이기 때문에 재무관리를 조금이라도 못하면 아무리 고소득 연봉자라고 해도 자기 손에 쥐는 돈이 거의 없다”고 언급했다.
김현희 기자 (wooang13@ermedia.net)

보험달인이 말하는 보험영업

“공부 안 하면 고객이 외면하죠”
여운봉 미래에셋생명 스타타워지점장
“미국에서는 희망직업 베스트5에 보험설계사가 꼭 들어갑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고객들이 복잡한 금융상품과 투자분석을 제대로 해줄 사람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자본시장통합법이 실시되면서 투자상품 판매가 까다로워졌다. 펀드 판매만 1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하루 동안 해당 지점에서 펀드를 가입하는 사람은 고작 6~8명인 것이다. 모든 금융장벽이 허물어지는 만큼 금융상품도 복잡해지기 때문에 투자상담은 예전보다 전문적이어야 한다. 결국 투자 상담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는 게 여운봉 지점장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전제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투자할 여건이 돼야죠. 국민소득 2만달러 채 안 되는 국내에서 부자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투자할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은 투자 상담에 대한 수요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2020년에는 국민소득 3만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그때는 보험설계사가 성공 직종으로 바뀌어 있을 겁니다.”

성공 직종은 진입장벽이 높다. 그만큼 성공을 보장하는 확률도 높다. 보험설계사의 진입장벽도 지금보다 높아져 전문적인 경력이 없이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여 지점장은 말한다.

“이제 보험설계사도 많이 배워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저희 지점에서는 국내 경제연구소들이 내는 보고서를 분석하고, 각종 금융상품과 부동산, 파생상품 등에 대해 공부하죠. 그래야 미래에 전문적인 인재로 살아남을 수 있거든요. 또 이렇게 공부하지 않으면 보험설계사가 되지 못하는 시대가 도래할 겁니다.”

“과거를 잊어야 살아남을 수 있어”
조병욱 현대해상 서강지점 팀장

“지망자가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꼭 알아봐야 합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성공 사례가 있는 지망자들은 뭘 해도 성공하기 마련이거든요. 또 성공 경험을 의지로 바꿔 힘들어도 쉽게 포기하지 않더라고요.”

세일즈 매니저(SM)의 경험이 있는 조병욱 팀장은 많은 설계사들을 서포트해왔다. 그 중에는 꿋꿋이 제 몫을 해내는 이들도 있지만, 쉽사리 포기하고 그만두는 이들도 있다. 조 팀장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얻어낸 결론은 ‘과거에도 열심히 일했던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과거 경력을 참고로 하는 것은 채용과정에서 기본이지요. 하지만 보험설계사 채용에서 가장 키포인트가 과거 경력이에요. 1년이 기본 경력이라고 하지만, 1년 이하 경력은 인정하지 않아요. 그만큼 그 분야를 개척하기 위한 인내심이 부족했다는 것이니까요. 보험설계사는 인내를 빼면 시체거든요.”

보험설계사에게 SM은 사업파트너와 마찬가지인 존재이다. 보험설계사로서 성공하고픈 이들에게 조 팀장은 SM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따라오면 된다고 전한다.

“SM들은 보험설계사들 개개인마다 적합한 방향과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성공하는 최적의 지름길을 제공해주는 것이지요. 간혹 과거 경험을 밑바탕으로 자기 의견을 고집하시는 설계사들이 있는데, 보험설계사는 과거 경험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1인 CEO체제 구축해야 성공” 이기대 대한생명 KLD사업부 컨설턴트

“진입장벽이 없는 탓에 만만하게 보고 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보험설계사는 1인 기업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재무관리, 영업전략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실패하듯이 보험설계사도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죠.”

이기대 컨설턴트는 보험설계사를 ‘걸어다니는 기업’이라고 말한다. 회사가 성장하듯이 설계사도 매월 얻는 수익으로 영업전략과 기획, 영역확장 등으로 성장해 나가기 때문이다.

브랜드 가치가 곧 기업의 가치이듯이 이 컨설턴트도 자신의 브랜드를 키우기에 여념이 없다.

“무작정 아무 보험사의 문을 두드리는 것부터 그만둬야 합니다. 자신의 브랜드를 키워줄 회사를 신중히 파악한 후에 자신이 팔 수 있는 상품이 무엇인지, 어떻게 팔아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기업이 치밀한 전략으로 영업하고 수익을 얻듯이 말이죠.”

이처럼 보험설계사는 장기적인 플랜으로 다가가야만 하는 직업이라고 이 컨설턴트는 지적했다. 최근 은행에서 희망 퇴직자들이 많아지면서 그들이 같은 금융계열인 보험사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 컨설턴트가 몸담은 보험사에도 은행권 출신자들의 발길이 늘어났다. 이들에게 이 컨설턴트는 철밥통 인식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보험설계사는 은행처럼 월급을 꼬박꼬박 받지 못합니다. 사무직 생활에 익숙한 분들의 경우에는 많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경우도 많아요. 같은 금융계열이라고 얕보면 안 됩니다. 보험설계사는 은행 PB와 달리 월급이 없으니까요.”

또 자신의 성격에 맞는 영업 콘셉트를 발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외향적인 성격이라면 등산이나 조깅, 골프 등 스포츠 등을 좋아하는 고객들을 발굴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면 메일링이나 책 서비스를 통해 발굴해 보라는 것이다.

“영업전략은 정답이 없습니다. 자신에 맞게 하는 것이 가장 베스트입니다. 설계사라고 해서 꼭 외향적일 필요도 없습니다. 각자의 성격에 맞게 영업전략을 펼치면 그 성격에 맞는 고객들이 반응하기 마련이거든요.”

김현희 기자 wooang13@er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