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경제가 붕괴 위기에 처했다. 지난 25일, ‘아르헨티나 디폴트설(設)’이 모락모락 연기를 피운 이후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우크라이나의 신용등급 강등, 터키의 기준금리 인상이 이어졌다.

아르헨티나에서 피어오른 불씨는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등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5대 신흥경제 5개국) 지역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브라질에 투자하는 채권/채권혼합형 펀드의 수익률이 급격히 떨어지며, 자금 유출이 심화되고 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미국 연준(Fed, 연방준비제도)이 지난 29일(현지시간) 100억달러의 추가 양적완화 축소를 결정함으로써 신흥국에서의 자금 유출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브라질 등 신흥국에 투자한 자금, 안전할까.

■ 신흥국 외환위기의 불씨: 아르헨티나 디폴트 위기설

지난 27일, 남미 2위 경제대국인 '아르헨티나 위기설'이 불거지면서 2001년 아르헨티나를 덮친 디폴트 위기가 재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는 지난 한 주 동안 15% 하락했다. 외부적으로는 미국 양적완화 축소 규모 확대 우려와 중국 경제성장 둔화 가능성이, 내부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 원인이 됐다.

2001~2002년 외환위기 당시 아르헨티나는 10년간 시험 도입한 ‘1달러=1페소’의 고정환율제를 포기하면서 950억달러 규모의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졌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지난해 자국의 인플레율이 10.9%였다고 보고 있으나 이코노미스트들은 25~30%로 추산하고 있다.

최근 수개월간 높은 인플레이션율 때문에 페소화 방어 비용이 서서히 확대했다. 중앙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의 외환보유고는 올초 시점에서 290억달러까지 감소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달러화를 팔아 페소화 폭락에 제동을 걸었지만, 지난 23일(현지시간) 페소화 가치는 전날보다 8% 떨어진 7.75페소로 거래를 마쳤다. 1거래일 하락률은 지난 2001년 일어난 외환위기 이후 최대였다.

■ 신흥국의 두 번째 화약고: 우크라이나, S&P 신용등급 강등

28일(현지시간),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정치적인 불안을 이유로 우크라이나의 신용등급을 디폴트(채무불이행) 직전 수준으로 강등했다. 아르헨티나에 이어 두 번째 신흥국 외환위기의 화약고로 지목된 셈이다.

S&P는 이날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불안이 심각해지고 있다”며 신용등급을 ‘B-’에서 ‘CCC+’로 한 단계 내렸다. 이는 정크(투자부적격) 등급 중 최하 수준으로, 투자등급보다 7단계 낮은 것이다. 등급 전망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했다.

경제상황이 추가 악화될 경우 ‘선택적 디폴트(SDㆍselective default)’로 강등할 수 있다는 경고장인 셈이다. 선택적 디폴트는 모든 채무를 갚을 수 없는 디폴트 상태와 구분하기 위한 개념으로, 일부 채무에 대해 정해진 기일에 정상적으로 상환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정치적 상황의 전개 여부에 따라 우크라이나 정부가 부채를 갚을 능력이나 의지가 약화될 수 있다는 게 부정적 전망을 제시한 배경이라고 S&P는 설명했다.

우크라이나는 장기간 이어진 반정부 시위로 외국인 투자자금이 이탈하면서 금융시장에서는 그동안 우크라이나의 디폴트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 외환위기 오작교: 터키, 기준금리 인하로 급한 불 껐을까

이어 터키 중앙은행이 리라화가 급락하자 파격적인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중앙은행은 28일(현지시간) 임시 통화정책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인 1주일 환매조건부채권(REPO) 금리를 4.5%에서 10%로 5.5%p 올렸다.

또 하루짜리 초단기 금융거래인 오버나이트 대출 금리를 7.75%에서 12.0%로 4.25%p 올렸다. 시장의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인상이다.

지금까지 터키 중앙은행은 리라화 가치가 급락하고 물가가 급등하는 와중에도 성장세 둔화를 우려한 정부의 압력으로 금리를 올리지 못했었다. 때문에 터키의 이번 금리인상은 터키 시장 악화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리라화 가치는 27일(현지시간 기준) 장중 달러당 2.39리라로 떨어져 11일 연속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가 중앙은행의 긴급회의 소집 발표가 나오자 2.31리라로 반등했으며 28일에도 2.26리라에 거래돼 이틀 연속 하락했다.

■ 불 똥 브라질로 튀나··· 미래에셋·KDB 브라질 펀드 ‘폭락 중’

지난 29일(현지시간), 연준이 1월 FOMC(미국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100억달러 추가 양적완화 축소를 진행하기로 결정하면서 신흥국에서의 자금 이탈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자금 이탈은 신흥국 경제 붕괴의 촉진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경상수지 적자가 심각하고, 아르헨티나·터키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브라질,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요주의 대상이다.

실제로 지난 26일, 디폴트 위기로 아르헨티나의 페소화가 폭락한 다음날 터키 리라, 러시아 루블, 브라질 헤알,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 등 신흥국의 통화가치는 일제히 추락한 바 있다.

신흥국의 위태로운 상황은 펀드 시장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최근 브릭스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의 수익률은 처참하다.

특히 브라질 채권 펀드의 상황은 심각하다. 최근 일주일 새 큰 폭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고, 1년 전 대비 설정액도 급감했다. KDB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운용하는 브라질 채권형(채권혼합형) 펀드가 마이너스 수익률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KDB자산운용이 운용하는 산은삼바브라질증권자투자신탁[채권]C_1는 29일 기준, 하루 동안 –0.87%, 1주일 –2.59%, 6개월 –5.96%, 1년 동안 –16.66% 수익률이 떨어졌다. 1년 전 대비 설정액은 –171.55% 빠졌다.

또 산은삼바브라질주식30증권자투자신탁[채권혼합]C1은 지난 29일 하루 사이에 수익률이 -0.92% 빠졌고, 일주일 동안 –3.00% 급감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브라질 채권혼합형 펀드도 수익률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미래에셋브라질멀티마켓증권자투자신탁UH(채권혼합-파생형) 시리즈는 29일 하루 사이에 –1.24%, 1주일 –1.87~1.90% 수익률이 떨어졌다. 6개월 동안 –10.56~-11.06% 1년 동안 –16.27~-17.06% 감소했다.

미래에셋증권이 2010년 12월 신흥국 투자 바람이 불 때 야심차게 내놨던 미래에셋브라질멀티마켓증권자투자신탁H(채권혼합-파생형) 시리즈는 29일 기준 1일 –0.95%, 1주일 –2.98% 수익률이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