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소비층으로 급부상…스포츠·음악 등 관련산업 활황


최근 LG경제연구소는 ‘2010년 주목할 7가지 소비 트렌드’라는 보고서를 통해 모빌리티, 패밀리 2.0, 알파 그린, 브라보 시니어 라이프, 몰링, 멀티 컬처와 함께 하비홀릭을 선정했다.

그중 하비홀릭은 가장 대중적이고 광범위한 소비 트렌드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하비홀릭’이란 특정 취미와 관심사에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취미를 뜻하는 ‘Hobby’와 광적이라는 의미의 `Holic’을 합쳐놓은 말이다.

하비홀릭이 뜨는 이유는 꾸준한 개인 소득의 증가세에 반해 취미 생활에 드는 비용은 줄어드는 경우가 많아 생각보다 쉽게 돈을 쓸 수 있게 됐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시간적 여유가 늘어났다는 점도 하비홀릭 인구를 증가시켰다. 주5일 근무제가 대부분의 업종으로 확대됐고, 자영업자들의 휴일도 점차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하비홀릭을 양산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확산된 인터넷·모바일 문화는 취미 관련 동호회 활동을 두드러지게 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끼리 인터넷 상에서 커뮤니티가 조직되고, 이곳에서 얻은 지식과 간접 체험은 곧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현대인들의 주된 행동 습관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같은 주제를 가지고 소통하면서 교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재미와 지속성이 유지된다는 특징도 있다.

취미는 끌려서 하는 취미와 찾아서 하는 취미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청소년이 온라인 게임에 빠지는 것은 끌려서 하는 취미로 볼 수 있다.

반면, 중년층의 취미는 찾아서 하는 취미인 경우가 많다. 스포츠와 레저, 악기 연주, 독서 등이 그렇다.

찾아서 하는 취미는 대부분 경제적 여유가 바탕이 되는 경우가 많기에 더 많은 소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마케팅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못 말리는 야구광들, 거액 지출도 한 방에
하비홀릭은 취미 활동으로 스포츠 참여를 첫 손에 꼽는다. 그중에서 야구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인구는 갈수록 늘고 있다. 1982년 출발한 한국프로야구는 올해 누적 관중 1억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가장 많은 팬을 불러 모은 만큼 팬들을 통해 벌어들인 돈도 국내 프로 스포츠 중 가장 많다. 야구장의 함성이 더 높아질수록 팬들의 지갑은 더더욱 쉽게 열린다. 야구에 중독된 사람들은 돈을 써도 야구장에서 야구를 위해 쓰기 때문이다.

인천 동춘동에 사는 유석진(32)씨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평소 조용한 성격의 유씨지만 그를 열광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야구다. 어릴 적부터 취미를 얘기할 때 당당히 ‘야구 관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야구광이다.

학창시절이나 지금이나 저녁 즈음 그의 발걸음은 여지없이 야구장으로 향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10만~15만 원 가량 사비를 들여가며 광주나 대구로 원정 응원을 가곤 한다.

유씨는 얼마 전부터 자신의 취미를 살려 직접 야구를 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통해 사회인 야구리그를 알게 된 것.

고교 후배가 뛰고 있는 모 팀에 입단한 유씨는 야구를 하기 위해 무려 78만 원을 하루에 다 썼다. 유씨가 쓴 78만 원에는 팀 가입비와 각종 용품 구입비가 모두 포함된 금액이다.

부인 최희선(29)씨는 유씨의 이런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자신보다 야구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 남편이 미웠다는 것이다.

“야구를 하는데 그렇게 돈이 많이 나가는 줄은 몰랐죠.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야구라고 해서 그냥 허락했거든요. 그렇게 돈이 많이 나갈 줄 알았다면 좀 더 알아보고 결정할 걸 그랬죠.”

부인의 걱정과 달리 유씨는 자신의 소비에 너무나 당당했다.
“78만 원이라는 돈이 결코 작은 돈은 아니죠.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야구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출혈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사회인 야구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제 생각과 똑같다고 봅니다.”

서울 신림동에 사는 여대생 이미현(24)씨 역시 자타가 공인하는 야구 팬이다. 남자친구보다 봉중근 선수(LG트윈스 투수)가 더 멋있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잠실야구장에서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늘 관중석을 지킨다.

한 시즌 동안 그녀가 야구장에 쏟아 붓는 돈은 입장권 금액만 70만 원 정도.
지난해 그녀는 남자친구와 커플 티셔츠로 봉중근 선수의 유니폼 두 벌을 구입했다.

여기에 지난해 3월 봉 선수가 출전했던 WBC 유니폼까지 겨우 수소문해서 장만했다. 유니폼 세 벌을 사는데 약 20여만 원이 들었다.

여기에 춘추용 점퍼 등 각종 구단 용품 등의 구입비와 야구장에서 먹는 맥주값, 간식비까지 합산하자면 대략 140만 원 가량 된다.

6개월 동안 지출한 돈이 140만 원 정도니 한 달 평균 23만 원 가량을 야구장에서 쓴다는 계산이 나온다.

어디서 이런 돈이 나올까. 이씨는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이라고 말했다. 1년 내내 여러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을 벌고 있다는 이씨는 “겨울방학 때 모은 돈의 대부분을 야구장에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준중형급 신차와 맞바꾼 바이올린
회사원 박용진(37)씨의 보물 1호는 바이올린이다. 그가 6개월 전 구입한 바이올린의 가격은 440만 원. 14만 원을 주고 산 연습용 바이올린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제대로 된 고급형 바이올린을 구입한 것이다.

그는 현재 서울에서 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 클래식 연주회 공짜표를 얻어서 가면 졸기 일쑤였다. 심지어 학창시절 제일 싫어하던 과목이 음악이었을 정도였다. 음악과는 철저하게 담을 쌓고 살던 박씨가 바이올린 활을 잡게 된 것은 TV 드라마 때문이었다.

“재작년에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가 꽤 인기 있었잖아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삶의 재미를 느끼는 내용이 참 감명 깊었습니다.

드라마에 빠지다보니 클래식 음악도 색다른 매력이 많다는 것을 느꼈죠.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어렵다는 느낌도 줄어들었고…”

드라마 전편을 모두 시청한 다음 날, 박씨는 서울 종로의 낙원악기상가로 바로 달려가 연습용 바이올린을 구입했다.

매달 20만 원까지 내면서 개인 교습도 받았다. 교습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박씨는 인터넷을 통해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입단했다. 그러나 연습용 바이올린으로는 실력이 쉽게 늘지 않는다는 전문가의 말을 듣고 그는 중대한 결단을 하게 된다.

“얼마 전부터 차를 바꾸고 싶어서 돈을 모으고 있었죠. 준중형급 신차 한 대를 점찍어뒀습니다. 그런데 바이올린을 배우다보니 차보다 바이올린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가족끼리 상의한 결과 바이올린을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새 차를 타면 몸이 편해지겠지만, 좋은 바이올린을 사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통했거든요.”

부인과 어린 자녀들의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박씨는 그럴 듯한 아이디어로 가족들의 반대를 누그러뜨렸다.

멋진 드라이브를 나가는 대신 집에서 가족들을 위해 ‘미니 콘서트’를 열기로 한 것. 매달 연습한 바이올린 연주곡을 틈틈이 들려주고, 가족 파티를 해주기로 결심했다.

매달 나가는 자동차 유지비보다 바이올린 가격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생각도 일리가 있었다.

고가의 바이올린을 과감하게 구입한 박씨는 그날 이후 매일같이 연습실을 찾아가 바이올린을 연습했고, 높은 가격만큼이나 실력도 쑥쑥 늘었다. ‘비싼 악기를 쓰는 만큼 잘 해야 된다’는 생각이 그를 바이올린 중독에 이르게 했다.

박씨는 지난 3월에 열렸던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온 가족을 초청했다. 꼭꼭 감춰뒀던 440만 원짜리 바이올린의 위용이 드디어 가족들과 관객들 앞에 첫 선을 보이던 순간이었다.

집에서 연주하던 연습용 바이올린보다 훨씬 청아한 소리가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가족들은 훌륭한 연주를 보여준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줬다.

그의 취미에서 기인한 과감한 소비 덕분에 박씨는 로맨틱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높은 점수를 따냈다.

정백현 기자 jjeom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