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아파트 털어내기 후폭풍


전국적으로 아파트 미분양 대란이다. 부동산 빙하기가 도래했다는 말도 들린다. 수도권 내 부동산 거래는 사실상 중단됐고, 아파트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추세다.

지방으로 갈수록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지난 1월을 기준으로 전국의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는 4만8469채에 육박한다. 수도권에서는 3631채가 미분양 됐다.

임대아파트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민간업체와 정부 차원에서 미분양 떨이에 온 힘을 쏟고 있는 이유다. 실제 미분양 아파트의 임대주택사업을 전담 처리하는 건설사가 생겨났고,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공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 후 임대공급하는 것을 추진 중에 있다.

저마다 부동산 시장 안정화와 서민 주거마련 확대란 명분을 내세운다. 그런데 방향이 묘하다. 궁극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처리하는데 급급한 눈치다.

임대아파트를 임대사업자에게 넘긴 뒤 제대로 된 관리감독도 하지 않고 있다. 혹여 피해가 발생하면 ‘모르쇠’로 일관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사례는 있다.

서민보호제도 악용 업체 증가
청주지검 형사2부(부장 권중영)는 1일 임대아파트 건설업체를 운영하면서 임대보증금 보증보험에 가입한 뒤 고의로 부도를 낸 A건설회사 양모 대표를 구속했다.

양씨는 2008년 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청주지역 4곳에 1270채의 임대아파트를 건립한 뒤 대한주택보증㈜의 임대보증금 보증보험에 가입하고 회사를 부도 내는 수법으로 282억 원 상당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또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직원들을 통해 세탁한 자금 17억 원을 횡령한 것을 비롯해 비어 있는 임대아파트 130여 가구에 대해 지인들을 동원, 허위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혐의도 받고 있다.

양씨는 지난해 10월15일 1억2000만 원의 약속어음을 막지 못해 A건설업체를 부도 처리했다. 그러나 당시 차명계좌 등에서 7억원 이상의 자금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검찰은 밝혔다.

임대아파트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받고도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기 위해 대한주택보증(주)에 보증보험을 가입, 고의로 부도를 낸 것이다.

이로 인해 대한주택보증(주)는 282억 원 가량의 국고가 허공에 사라졌다. 대한주택보증은 금융기관이 51%, 정부가 49%를 출자해 만든 회사로 사고가 발생할 경우 회사의 부실로 이어져 서민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서민을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 서민을 힘들게 만들 수 있는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청주 사건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임대아파트 건설업체의 고의 부도 사고 수사 범위가 확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택건설업체가 아파트를 임대할 경우 임대보증금 보증보험의 가입이 의무화 돼 있다.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할 경우 보증금을 낸 서민의 보증금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보증보험 가입 기준이 단순하다.

미분양 임대아파트 관련 임대사업자거나 건설업체의 경우 심사 과정에서 선별 기준이 불투명하다. 국고를 관리하는 업체임에도 운영 상태는 영세기업보다 못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참주거실천연대 관계자는 “미분양 임대아파트 해결이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만큼 꼼꼼히 기준 조건 등을 따지기 보다는 우선 처리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파격적 혜택이 피해 규모 키워
실제 미분양 털어내기의 움직임이 가속화 된 지난해 말 이후 미분양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뒤 눈물을 흘리는 서민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지역 건설사들이 대거 무너지고, 무더기 미분양 사태가 나면서 정부가 매입 임대사업자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줬기 때문이다. 취·등록세 감면은 기본, 저금리의 국민주택기금도 건설임대업체와 같은 수준으로 받을 수 있게 했다.

임대건설업체의 고의 부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임대아파트를 구입한 뒤 서민들에게 임대하는 매입 임대사업자들의 횡포는 폭력 수준에 가깝다.

파격적인 정부의 미분양 털기 혜택에 힘입어 매입 임대사업자들은 적은 자본으로도 1000여 채에 가까운 아파트를 소유할 수 있게 됐다.

매입 임대사업자는 임대아파트의 분양이 완료 된 시점에서는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의 현금을 확보 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재산을 빼돌린 뒤 고의 부도나 잠적 등을 택할 수 있는 구조다.

매입 임대사업자들은 분양 이후 고의로 부도설을 흘려 분양 전환을 강요하거나, 임대업체 대표가 잠적하기도 한다.

민주노동당 관계자는 “정부는 세입자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경매 시 우선매수청구권이나 임대보증보험 가입 규정을 마련치 않아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분양 아파트 털어내기는 현 정부의 최대 과제다. 또한 미분양 아파트 털어내기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도 최소화해야 한다. 아직까지 미분양 아파트 털이와 임차인의 피해 보상 등에 대한 속 시원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보증보험의 기금은 고의 부도 건설업체로 인해 고갈되고 있고, 매입 임대사업자의 횡포는 서민 경제를 좀먹고 있다. 철저한 관리 감독을 바탕으로 한 정부의 움직임이 필요할 때다.

정백현 기자 jjeom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