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이후 37년간 꾸준한 성장…품질로 승부한 ‘베지밀의 저력’


회사 이름보다 브랜드가 더 유명한 곳이 있다. 정·식품이다. 정·식품은 베지밀을 생산하는 업체로 설립 이후 37년간 두유시장 최강자의 자리를 단 한 번도 내어 준 적이 없다. 매출도 꾸준히 늘었다.

브랜드 하나로 37년간 성장을 이어온 힘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경영진의 특별한 경영 방침이 이를 가능케 만들었다. 창업주인 정재원 명예회장에 이어 김성수 사장의 ‘열린 경영’은 직원과의 융화에 초점을 맞추어 운영되고 있다.

김 사장은 직원과의 대화를 최우선으로 여긴다. 김 사장이 1998년 청주공장장으로 발령을 받았을 때의 일이다. 김 사장의 주머니는 항상 볼록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인 줄 알면서도 매일 같이 100원짜리 동전 200개를 들고 공장을 누볐다. 직원의 커피 심부름을 자처하기 위해서였다. 직원의 말 하나는 경영에 있어 새로운 아이디어로 활용되고, 조언으로 작용한다는 게 이유다.

그 과정에서 그는 하나의 원칙을 세웠다. 직원들과의 대화를 철저히 경영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함께 고민하기 위해 하루에 20∼30잔의 음료를 먹어야 했다. 직원들이 권하는 음료수는 절대 거절할 수 없었다. 덕분에 김 사장은 음료수를 많이 마시는 CEO로 통한다.

그러나 그는 “음료수를 많이 먹어 밤잠을 설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김 사장이 음료수를 많이 마시는 이유는 ‘음료수가 좋아서’가 아니다. 직원들과 대화를 위해서다.

“직원이 건네주는 음료수를 마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성스레 건네주는 마음을 받는다는 생각에 오히려 뿌듯한 것이 아닌가요.”

김 사장은 이후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뒤에도 직원과의 대화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공장 직원, 영업사원을 만나도 항상 아래 직원을 먼저 만난다.

중간 관리자의 입장에선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직원들 역시 형식적으로 하는 일로 여기기 일쑤였다. 그러나 꾸준히 반복되는 김 사장의 행동이 직원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아랫사람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고 활용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루 200잔 커피 심부름 하기도
“하루는 생산을 담당하는 한 직원이 유니폼 앞에 붙어있는 주머니에 대해 불편을 호소해 왔습니다. 주머니가 앞에 붙어 있어 업무에 방해가 된다는 겁니다.

같이 고민해 보고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현장에서 애로 해결이 건강한 기업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습니다.”

실제로 생산직 직원 유니폼의 주머니는 대부분 가슴쪽에 달려 있었다. 업무의 특성상 일을 하다 보면 엎드렸다 누웠다 하는 경우가 많아 볼펜 등 중요한 것들이 떨어지기 쉽다.

사무직 직원 위주로 디자인 됐던 것이다. 회사 전체 입장에서 봤을 때 그냥 지나치기 쉬운 볼멘소리였다.

그런데 김 사장은 달랐다. 생산직 직원이 편해야 제품의 품질이 좋아진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겨드랑이 밑에 주머니가 달린 유니폼을 만들어 제공했다. 그것도 최고급 원단으로 만들었다.

“작은 것 하나 놓칠 수 있나요. 직원들의 말 한 마디는 회사 입장에서 살이 되고 뼈가 되는 얘기입니다. 직원의 사기가 올라야 품질이 덩달아 높아집니다.”

회사 경영에 있어 직원의 사기는 매우 중요하다. 리더가 갖춰야 할 기본 덕목으로 리더십이 꼽히는 이유다. 하지만 이게 쉽지가 않다. 취임 초기 물불 안 가리고 직원을 돌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리더가 많다.

김 사장은 “회사가 이윤을 목적으로 설립됐으면 힘들었겠지만 국민 건강을 위한다는 목표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며 “직원의 사기가 애사심으로 이어져 경영 위기를 넘긴 적도 있다”고 말했다. CEO로 재직하며 직원들을 돌보는데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1980년대 후반 정·식품에 큰 위기가 닥쳤다. 건강식 붐을 타고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이 두유시장에 진출한 것. 덩달아 두유와 음용층이 겹치는 분유업체의 견제도 심했다. 우유가 몸에 좋고 두유는 몸에 나쁘다는 식이었다.

대기업의 이런 견제에 중소기업이 버텨내기란 쉽지가 않을 터. 그러나 정·식품은 품질 하나로 승부했고, 성장을 이끌어냈다.

글로벌 시장 개척 활발
정재원 명예회장은 소아과 의사로 재직 중 빈사 상태의 아기를 데려와 살려달라는 부모들을 가까이서 접하며 그 원인을 밝혀내고자 하는 의사로서의 사명감에 외국유학을 결심했다.

오랜 유학생활 끝에 그 원인이 모유나 우유에 들어있는 유당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유당불내증(유당소화장애) 때문임을 알아내고 귀국해 유당이 없는 대용식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어릴 적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콩국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착안해 베지밀을 만들었다.

김 사장은 “(정재원 명예회장은) 고령의 나이에도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중앙연구소(R&D센터)를 찾아 제품의 질을 꼼꼼히 챙기고 있다”며 “현재 중앙연구소에는 박사급만 5명을 비롯해 30~40명의 우수인력이 두유 기술력만큼은 국내에서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정·식품은 현재 품질을 바탕으로 베지밀이 세계인의 식탁에 오를 수 있는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 미국, 일본에 이어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도 거의 끝났다.

37년간 한국인의 건강을 지켜온 베지밀. 건강식품으로 두유를 널리 알리는 정·식품의 도전은 계속 되고 있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