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유행했던 광고 카피. “엘라OO했어요.” 카피만큼 제품도 잘나갔다. 2001년부터 10년간 국내 샴푸 시장의 총아로 군림하며, 1300억원이 넘는 매출(누적액)을 기록했다. 광고를 차치하고 인기비결을 꼽으라면 ‘성분’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샴푸에는 모발을 구성하는 단백질의 일종인 ‘시스틴(cystine)’이 들어 있다. 모발과 제품의 시스틴이 합쳐지면 모발을 탄력 있고 단단하게 해준단다. 그런데 물리적으로는 상당히 견고한 합체라고 알려진 ‘시스틴 결합(disulfide bond)’이 화학적으론 취약하단다. 머리카락이 자외선에 푸석해지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지난 8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출범했다. 공단은 소상공인 육성 업무를 수행하던 ‘소상공인진흥원’과 전통시장 활성화 업무를 담당한 ‘시장경영진흥원’이 통합된 기관이다. 대형유통사, 프랜차이즈업체들 틈바구니 속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에 대한 지원을 제대로 한번 해보겠다는 취지다. 소상공인 10명 중 9명이 “올해도 어려움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실의에 빠져 있는 판국에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소상공인은 말 그대로 작고 약하다. 280만 소상공인과 1300개 전통시장이 주눅 들어 있는 상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 때문인지 괜한 걱정이 든다. 이들을 지원하는 두 기관의 ‘물리적 결합’만으론 힘에 부칠 수 있단 걱정 말이다. 지난 1998년 ‘꿈의 결합’이란 찬사 속에 합병했던 ‘다임러벤츠(Daimler-Benz·독일)’와 ‘크라이슬러(Chrysler·미국)’가 10년 만에 도로 분리되는 수모를 맛본 것도, ‘이랜드(Eland)’와 합친 ‘홈에버(Homever)’ 노조가 길고 지루한 파업을 겪었던 이유도 ‘합치(合致)’가 아닌 ‘합체(合體)’에 그쳤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진흥원과 시장경영진흥원의 결합 역시 마찬가지다. 시너지 효과를 위해선 국과 밥이 단순 배열된 ‘국밥’ 형태는 곤란하다. 기우는 아니다. 출범 물밑 작업 당시 소상공인진흥원 한 임원의 “공단 이름에 괜히 ‘시장’자가 들어가 ‘시장’만을 위한 기관으로 보이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는 푸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어쩌면 다들 비슷한 걱정을 하나 보다. 이일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초대 이사장은 “혁신을 위해서는 화학적 결합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숙제를 냈으며, 진병호 전국상인연합회장도 “용광로에서 융화되듯이 완전한 하나가 되길 바란다”고 기대를 밝혔다.

공단뿐만이 아니다. 오리무중인 ‘연합회’도 걱정이다. 공단이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 정책을 집행하는 공공기관이라면, 연합회는 소상공인을 대변하는 민간단체다. 한데 현재 연합회 회원들은 두 파로 갈려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형국이다. 출범식 당시 연합회 발족이 가시화될 만한 말이 오가긴 했지만, 다시금 수포로 돌아갔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마디로 정해진 게 아직 없다는 말이다. 올해 공단 예산은 1664억원(기관운영 261억원, 보조사업 1403억원)이다. 소상공인 경영 현대화를 위한 교육지원을 펼치고, 협업과 조직화를 위한 공동브랜드와 유통물류센터를 구축할 예정이다.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을 위한 각종 정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임무다. 내년부터는 연간 2조원의 소상공인시장진흥기금도 조성·운용한다는 계획이다.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번듯해 보인다. ‘단언컨대 가장 완벽한 물질’이라는 것이 메탈이지만 실생활에 쓰이기 위해서는 탄소와의 화학적 결합을 거쳐 ‘강(鋼)’이 먼저 돼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