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보수적이었던 퇴직연금 운용에 대한 기존의 입장에서 탈피했다. 위험자산에의 투자 제한 규정을 느슨하게 풀어줬다. 주식 투자 활성화 조짐과 더불어 퇴직연금 펀드 장기 수익률이 고공행진을 계속하자 뭉칫돈이 퇴직연금 펀드로 몰리고 있다. 퇴직연금 펀드의 인기몰이, 오래 갈까?

금융당국이 퇴직연금의 위험자산 투자 제한을 완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주식 거래 활성화와 수익률 상승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이런 가운데 퇴직연금 펀드의 장기 수익률이 은행 예·적금을 큰 폭으로 뛰어넘자 퇴직연금 펀드로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퇴직연금은 사측이 퇴직금을 적립하고 직접 운용해 확정된 수익을 되돌려주는 확정급여형(DB)과 퇴직금을 직원이 직접 운용해 수익·손실을 책임지는 확정기여형(DC)형으로 나뉜다.

금융위는 지난해 12월 말 ‘DC형 퇴직연금의 주식 투자 금지 규제를 풀고, DB형 퇴직연금도 주식과 채권에의 투자한도를 완화한다’는 내용의 ‘자본시장의 역동성 제고 방안’을 내놨다. 그동안 ‘안정성’에 치우친 운용으로 수익률 급감과 거래 침체 현상이 발생하자 긴급 수혈을 단행한 것이다.

현행 퇴직연금 감독 규정에 따르면 DB형에는 국내외 주식, 전환사채(CP) 등 위험자산에 대한 직접투자는 적립금의 30% 한도 내에서만 허용됐다. 또 펀드 등 간접투자 상품은 적립금의 50%가 최대 투자한도로 설정돼 있다.

DC형은 DB형보다 조금 더 보수적으로 운용된다. 직원의 직접 투자로 퇴직금 손실이 발생, 노후가 불안해질 위험도가 더 크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위험자산에 대한 직접투자는 아예 금지돼 있고 펀드와 같은 간접투자 상품은 적립금의 40%가 한도다.

인기 비법? 주식 투자 활성화 정책 + 높은 수익률

앞으로는 DC형 퇴직연금의 주식 투자 금지 규제를 풀고, DB형 퇴직연금도 주식과 채권의 투자한도가 완화될 전망이다.

금융위가 고수하던 보수적인 투자기준을 깨뜨린 이유는 수수료 수익의 급감으로 증권업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기저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규제 완화를 통해서 증시로의 자금 유입을 기대하고 있다.

정책 변화와 맞물려 퇴직연금 펀드의 수익률이 장기적으로 양호한 성과를 내자, 최근 연금저축 펀드의 설정액이 크게 늘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10억원 이상 퇴직연금 펀드 설정액은 6조8174억원으로 1년 동안 1조1000억원가량 늘어났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3조596억원, 장기주택 마련에서 4306억원의 뭉칫돈이 빠져나간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이다. 같은 유형에 속한 개인연금과 연금저축은 각각 2억원, 7600억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퇴직연금 펀드는 가입자들이 돈을 어느 펀드에 넣을지 직접 선택할 수 있고 선택 후에도 펀드를 갈아탈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의 기회비용이 늘어난다. 무엇보다 퇴직연금 펀드 수익률은 3년 평균 8.87%로 3년 은행 정기예금 금리인 2.45~3.20%를 웃돌고 있다.

퇴직연금 펀드, 리스크 감안하는 DC형 투자 니즈 확대 전망

최근 1~2년 동안 연금저축 펀드의 설정액이 매년 두 배씩 상승한 것을 고려할 때 펀드로의 유입량은 올해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위험자산 투자 비중이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노후생활 보장이라는 퇴직금의 원래 목적을 간과하면 안 된다. 장기적으로 꾸준한 성과를 내는 상품을 골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3년 수익률 기준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것은 ‘한국밸류10년투자퇴직연금증권투자신탁1(주식)(A)’이다. 이 상품은 7일 기준, 국내 주식 89.74%+유동성 10.88% 비중으로 투자한다. 1년 수익률은 12.20%, 3년 수익률 48.78%를 올렸다.

KB운용의 ‘KB퇴직연금배당40증권자투자신탁(채권혼합)C’가 3년 기준 수익률 26.42%로 뒤를 이었다. 5년 장기성과에서는 79.80%의 수익을 냈다. 이어 채권혼합형인 한국밸류운용의 ‘한국밸류10년투자퇴직연금증권투자신탁1’과 ‘KB퇴직연금배당 30증권 K-1자투자신탁’이 각각 3년 기준 22.13%, 22.04%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해외채권혼합에서는 삼성운용의  ‘퇴직연금N재팬40증권자투자신탁1’과 플랭클린운용의 템 ‘플턴퇴직연금글로벌40증권자투자신탁’이 각각 21.91%, 20.87%의 수익을 기록했다.

오원석 삼성자산운용 퇴직연금 담당 차장은 “국내 퇴직연금의 대부분이 1년 만기 확정금리상품(DB형)에 투자되고 있는 상황이다. 저금리 기조 속에서 기대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리스크를 감안하는 실적배당형상품(DC형) 투자에 대한 니즈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운용기간에 따라 펀드별 수익률 격차가 커지므로 펀드의 장기성과와 운용규모를 체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국밸류자산운용 관계자는 “퇴직연금 펀드의 주식 투자 비중이 높아지는 데다, 편입 종목도 상황에 따라 대형주, 가치주 등으로 달라져 변동성 있는 장세에 대응하고, 수익률도 올릴 수 있다. 따라서 추후 퇴직연금 펀드의 인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