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3월19일 주주총회에서 이익잉여금처분계산서 승인 등의 안건을 상정해 통과시켰다.


대기업의 주주총회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막을 내리고 있다. 올해는 짧아진 주총 시간, 소액주주나 시민단체의 반대 의견이 가장 적었던 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총 안건으로는 중요한 내용이 다수 상정됐다.

좋은기업지배연구소(소장 김선웅)의 2010 대기업 주총 의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총수 일가의 경영권 강화를 위한 사안이 주를 이뤘다.

일각에선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며 기업 경쟁력 강화는 곧 총수 일가의 강화 구조로 비춰질 수 있는 점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기업의 주총 안건을 꼼꼼히 살펴보면 이 같은 분위기가 확연히 드러난다.

오너 체제 강화형
실제로 올 주총에서는 상당수 기업이 오너 체제 강화 안건을 주로 상정했다. 오너 중심의 경영구조를 형성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그룹 지주회사인 SK(주)와 SK에너지, SK C&C의 사내이사에 올랐다.

SK C&C는 삼성에버랜드와 같이 오너의 지분이 많이 포함된 곳으로 그룹 지배구조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 최 회장은 동시에 친정 체제도 강화에 나섰다.

조기행 전 SK그룹 구조조정본부 재무담당 상무(현 SKT GMS 사장)가 SK텔레콤 사내이사에 등재 된 것. 조 전 상무는 최 회장의 최측근으로 과거 SK C&C와의 부당 내부거래를 통한 주식거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2008년 사면을 받은 바 있다.

포스코의 정준양 회장은 오너가 아닌 CEO지만 친정 체제 구축에 나서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주총을 통해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를 각각 1명씩 줄였고, 지난 3월 임기가 만료된 사내이사를 대거 물갈이 했다.

포스코의 사내이사 임기 만료는 1년으로 지난해에 선임된 사내이사가 대거 교체됐다. 최근 사내이사에 오른 박한용 포스코ICT 대표이사 사장과 오창관 포스코 부사장(마케팅 부문장), 김진일 포스코 부사장(포항제철소장)은 내부 승진 인물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최은영 한진해운홀딩스 회장은 오너 체제 강화를 위해 과감한 베팅을 했다. 재단법인 양현재단의 김찬길 전 한진해운 사장을 사외이사에 올린 것.

양현재단은 한진해운과 특수 관계에 있는 곳으로 해당 출신 인사의 영입은 향후 논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최 회장은 조수호 회장 타계 당시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양현재단을 적극 활용했다. 지분 증여에 따른 세금 부담과 의결권 확보를 위해 조 회장 지분 5%를 양도한 곳이 양현재단이다.

최 회장이 남편인 조 회장의 사후 적대적 M&A에 시달린 점을 감안하면 양현재단 출신의 사외이사 선임은 오너 체제 강화인 동시에 친정 체제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구자용 LS네트웍스 회장은 본인을 포함해 오너 일가를 사내이사직에 올렸다. 구 회장은 LS네트웍스 지분 90%를 보유한 E1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형인 구자열 LS전선 대표도 LS네트웍스 사내이사로 연임됐다.

특히 구자열 대표는 LS네트웍스 외에 LS, LS니꼬동제련, LS전선, LS엠트론의 사내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주총을 통해 대한항공과 한진그룹 등 9개 회사의 이사직을 겸직하게 됐다. 또 이태희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를 대한항공 사내이사에 올리며 친정 체제도 강화했다. 이 대표는 대한항공 법률고문인 동시에 조 회장의 매부이기도 하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현대상선의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현대상선 CEO이자 지배주주인 동시에 회사 내부 지배력을 현재보다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현대건설 인수를 목표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상선의 자금력을 수월하게 활용하기 위한 움직임이란 분석이다.

경영 2세 체제 강화형
주총을 통해 경영 2세 체제의 기반을 다지는 곳도 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대표적인 케이스로 2009년 8월 현대자동차 부회장으로 승진한데 이어 주총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이로 인해 정 부회장은 기아차, 현대모비스에 이어 현대차까지 영향력을 넓혔다. 비상장사인 엔지비와 오토에버시스템즈까지 포함하면 5개 회사의 이사를 맡게 된 셈이다. 올해 현대차 주총을 통해 정 부회장이 그룹 핵심 계열사의 등기이사 자리를 모두 꿰차게 됨에 따라 경영 승계가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신세계그룹 경영 전면에 나선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입지도 단단해 졌다. 신세계 등기이사에 선임됐고, 광주신세계 등기이사로 전 임원인 하동수씨가 각각 사내이사와 사외이사에 올라 친정 체제 강화에 나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주총을 통해 조현준 사장, 조현문 부사장의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고 있다.

조현준 사장은 효성 외에도 10개 계열사, 조현문 부사장은 13개 계열사의 등기임원에 올라 있어 향후 과도한 겸직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몽진, 정몽익 KCC 공동대표도 눈길을 끈다. 정상영 명예회장의 2세인 이들은 공동대표로 재선임하며 본격적인 경영 2세 체제를 가동할 전망이다.

정권 눈치보기형
일부 기업은 정치권과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인사를 사외이사에 올려 눈길을 끈다. 현 정권의 최고 실세와 연관된 인물을 영입하는 등 정치적인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KT&G는 최근 주총을 통해 지승림 알티캐스트 사장을 사외이사에 올렸다. 지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 정보기술(IT) 담당 특보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냈다.

OCI(구 동양제철)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을 사외이사에 올렸다. 2009년 출석률이 62.5%에 그치는 등 독립적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에도 별 탈 없이 연임됐다.

천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으로 각별한 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 중 하나다. 현대모비스도 어윤대 국가브랜드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사외이사로 임명했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오너 일가 체제 강화는 얼핏 보기에 책임경영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주주가치를 우선하는 경영과는 동떨어져 있어 향후 주주에게 피해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