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 미 달라스에 있는 사모펀드 론스타는 믿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인 투자 대상을 한국에서 포착했다. 바로 외환은행이다.

론스타 인수 후 외환은행은 다시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외환 위기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한국 정부는 이 사모펀드 말고 다른 후보들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좋아지자 이 사모펀드를 바라보는 한국 내 여론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론스타가 한·벨기에 투자 협정을 빌미로 세금을 단 한 푼도 내지 않은 것이 그 빌미였다.

“론스타 건은 외국 기업이 해외에서 직면할 수 있는 위험을 잘 보여줍니다. 이러한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론스타가 이런 결정을 한 것은 합리적인 행동이었지만 정부와 규제 당국은 전방위적으로 이 거래를 조사했고, 결국 매각은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 김(Abraham Kim) 유라시아 그룹(Eurasia Group) 애널리스트의 전언이다.
그는 “거리에 피가 흥건할 때 (주식을) 사라는 게 투자 대가들의 지론이며 론스타는 이러한 투자 원칙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론스타의 무고함을 주장해온 이러한 시각을 수용하지 않았다. 국내의 전반적인 여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양자 간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급기야 법정 분쟁으로 확전된 가운데 지난 3월10일 론스타가 다시 외환은행 매각을 재천명하면서 수면 아래 잠겨 있던 과세 논란이 재점화 될 전망이다.

래리 클레인 외환은행장은 이날 “대주주인 론스타가 이사회를 개최해 외환은행 지분 매각 절차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며 “우선협상 대상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외에서 자격을 갖춘 투자자를 대상으로 대상자를 선정해 협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모펀드는 크레디트 스위스(CS)를 매각 주간사로 선정하고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전략적, 재무적 투자자들과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 2008년 HSBC에 외환은행 매각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지 1년 6개월여 만이다.

론스타의 존 그레이켄 파트너도 “향후 6개월 내 외환은행 지분 매각을 기대한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재 론스타가 보유하고 있는 외환은행 지분은 51.02%. 지난 3월19일 종가 기준 주당 1만3500원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매각할 경우 매각 대금만 5조원을 훌쩍 넘을 전망이다.

매각 대금을 감안할 때 차익에 대한 세금 액수는 적게는 수 천억, 많게는 조 단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재매각 추진으로 불거진 이번 논란은 지난 2007년 일부 지분을 블록세일하며 불거진 뿌리 깊은 갈등의 ‘데자뷔(경험한 듯한 느낌)’이다.

론스타는 지난 2007년 6월 외환은행 지분 13.6%(8770만주)를 주당 1만3600원에 ‘블록세일’ 방식으로(총 매각대금 1조1900억원) 매각했고, 한국 정부는 매각 차익에 1190억원의 세금을 부여했다.

론스타는 이 결정에 반발해 조세심판원에 심판 청구를 제기하며 과세 논란을 재점화했다.

론스타 과세 논란의 핵심은 이 사모펀드의 페이퍼 컴퍼니인 벨기에 법인의 성격을 둘러싼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론스타측은 한국과 벨기에 정부 양국이 체결한 투자 협약을 근거로 과세의 부당함을 강조해 왔다.

론스타 과세 논란의 핵심은 론스타의 페이퍼 컴퍼니인 벨기에 법인의 성격을 둘러싼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론스타측은 한국과 벨기에 정부 양국이 체결한 투자 협약을 근거로 과세의 부당함을 강조해 왔다.

양국 조세 조약상 근거를 앞세워 벨기에 현지 법인의 한국 내 투자에 대해서는 과세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론스타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국세청은 론스타가 ‘고정 사업장’을 매개 삼아 외환은행 매입 및 매각을 주도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한국 내 전진기지에서 매각 작업을 주도하면서도 사실을 호도해왔다는 것.
국세청은 고정사업장(론스타 코리아)의 소득에 대한 과세는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은 2007년 론스타의 블록세일에 과세가 이뤄진 만큼 외환은행 지분을 매각하고 얻을 매각 차익에 과세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론스타는 주간사를 지정하면서 공식적으로 매각 절차를 재개했지만, 가까운 시일 안에 외환은행 매각 작업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제 코가 석 자’인 해외 은행들이 은행 규제 강화를 골자로 하는 ‘볼커룰 추진’으로 투자가 어려워진 점이 악재다.

매각 단가가 상승한 점도 부담거리다. 외환은행 주가가 최근 수년간 큰 폭으로 상승한 결과다. 오크트리 캐피탈, 텍사스 퍼시픽 그룹을 비롯한 해외 투자자들의 입질도 현재로서는 거의 끊긴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 전문가들은 KB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 등 주요 은행을 외환은행 인수 가능성이 높은 잠재적인 후보로 꼽는다.

KB금융지주는 자금 사정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데다, 외환은행 인수 협상에 한 차례 나선 바 있어 이 은행의 속사정을 비교적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이 강점이다.

반면 우리은행 민영화를 골자로 한 금융권 재편 시나리오는 매각 전선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요인이다.

유력 후보군들의 복잡한 내부 사정도 부담거리이다. KB금융지주는 인수 협상 전반을 주도할 회장이 공석이어서 인선 절차를 완료한 뒤에야 매각 관련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하나금융지주 또한 외환은행을 인수하기에는 자금 사정이 녹록치 않다는 분석도 꼬리를 문다.

매각 전선에 돌발 변수 산재
따라서 우리은행 민영화 방안을 비롯한 금융권 재편 시나리오의 윤곽이 드러난 후에야 매각 작업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론스타 건은 외국 기업이 (아시아, 아프리카 시장을 비롯한) 해외에서 직면할 수 있는 위험을 잘 보여줍니다. 이러한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판단할 문제이긴 합니다만, 법적 절차(judicial process)를 하루라도 빨리 끝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라시아 그룹의 아브라함 김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기업들이 론스타를 반면교사의 사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놓았더니 보따리 달라고 떼를 쓰는 격’이라는 것이 이들의 정서다.

론스타도 지금까지 과세의 부당함을 강조하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과세 논란을 정면으로 돌파하기에 앞서 은행 매각을 성사시키는 것이 당장 ‘발등의 불’로 떨어진 셈이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