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규기자의 트랜스포머기업]마스크를 뛰어넘는 글로벌 선서로 재탄생

 해운업계에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전통의 강자인 한진해운∙현대상선은 업황 부진으로 유동성 위기에 처해 있고 STX팬오션은 법정관리로 무너졌다. 반면 현대글로비스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실적도 개선되고 공격적인 투자까지 예고했다.

지난해 11월 덴마크 해운사인 머스크 라인(Maersk Line)은 극심한 해운업 불황 속에 6분기 연속 흑자행진을 지속하며 ‘깜짝 실적’을 발표했다. 머스크의 실적 개선은 전반적인 업황 회복 때문이 아니다는 평가다. 금융위기 이후 운임이 떨어지면서 해운업은 깊은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머스크는 친환경 선박에 투자해 운송 물량을 늘리고 원가를 절감해나갔다. 덕분에 순익이 전년대비 28% 증가했다. 이에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안정적인 재무구조로 일찍감치 친환경선에 투자한 결과 운임이 하락하더라도 이익을 내는 구조를 만들었다”며 “원가경쟁력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고 평가했다.

해운업황 불황으로 싱가포르 NOL, 중국의 CDCL 등 주요 글로벌 선사들이 여전히 적자에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제2의 ‘머스크’를 꿈꾸며 해상물류사업에 뛰어든 회사가 있다. 바로 현대글로비스다. 글로비스는 부진한 업황 속에서 해운시장의 성장성이 제한된 상황이지만, 낮은 부채비율과 안정적인 재무구조로 글로벌 선사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벌크선 앞세워 ‘종합 물류’ 강자로

지난해 3월 글로비스가 회사 설립 이후 처음으로 그룹 외부에서 장기운송계약을 따냈다. 한국남동발전의 유연탄 수송 입찰에서 글로비스-대보인터내셔널쉬핑 컨소시엄이 사업을 따낸 것. 그동안 현대글로비스는 현대∙기아차의 자동차, 현대제철의 철광석만을 실어 나르며, ‘2자 물류업체(2PL)’에만 머물러 있었다. 글로비스는 몇 차례 3자물류(3PL)에 도전했지만, ‘외부 물량 100만t 이상 수송 실적’ 또는 ‘1년 이상 장기 운송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자격 조건에 걸려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한국남동발전 건으로 3자물류의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다.

글로비스는 이미 지난해 10월 3자 물류사업을 키워 해상운송 매출을 지금보다 4배 늘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특히 곡물이나 석탄 운송 등의 벌크사업 비중을 현재 35%에서 65%로 확대키로 했다. 최근 호주 광물업체인 BHP빌리턴, 곡물회사인 카길과 LDC와 장기운송계약 체결한 것도 벌크선 사업 확대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풀이된다. 강동진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컨테이너 운임과 달리 벌크 운임인 발틱운임지수(BDI)는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회복하기 시작해 1865pt까지 상승했다”며 “이는 벌크선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한 글로비스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도 글로비스의 3분기 누적 벌크선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한 2725억원을 기록했다.

현대글로비스의 벌크사업 확대는 기존의 벌크선 강자였던 STX팬오션의 법정관리로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더욱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도 유동성 확보를 위해 벌크선 사업을 정리하고 있어 글로비스가 국내 벌크사업을 접수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강 연구원은 “벌크를 대표하는 기업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라며 “현대글로비스가 기존에도 벌크사업을 해왔던 데다 진입장벽이 낮고 특별한 업력이나 노하우가 필요치 않아 글로비스의 영업력이 빠른 시일 내에 부각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글로비스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수주경쟁력을 이미 갖췄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강 연구원은 “현금 동원 능력이 있는 글로비스는 화주에게 낮은 운임을 제시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자본력을 바탕으로 고효율 선박을 확보해 원가경쟁력을 갖춘다면 금상첨화다”고 말했다.

 

해운불황 속 잇따른 선박투자, 현대글로비스 독주 구도?

글로비스는 선단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08년 말 보유한 선박이 고작 3척(자선). 하지만 해마다 투자를 늘려나가 지난해 상반기 선단규모가 52척(자선 10척, 용선 42척)으로 불어났다. 결코 적은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글로비스는 공격적인 투자를 지속해나갔다. 2013년에만 총 11척의 선박을 추가로 확충했다. 7척의 자동차운반선(PCTC 자선 3척, 용선 4척)을 추가로 사들였을 뿐만 아니라 4척의 초대형 유조선(VLCC)을 선박펀드로부터 2014년에 용선한다.

이 같은 글로비스의 행보는 업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업황 부진으로 글로벌 선사들이 자산을 매각해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동안 글로비스는 선박투자를 지속적으로 단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글로비스는 2020년까지 500척(자동차운반선 100척, 벌크선 400척)으로 늘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신정관 KB투자증권 연구원은 “해운업이 공급과잉 국면에 있는 만큼 선박을 저가에 구입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글로비스는 높은 신용도와 자본력을 토대로 저렴한 비용에 선박금융을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글로비스의 안정적인 재무구조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부채비율은 125%로 해운업계 기준으로 볼 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준이다. 현금성 자산도 1조원에 육박하며 상각전영업이익(EBITDA)도 7500억원에 달해 충분한 유동성과 현금흐름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연구원은 “현대차, 기아차, 현대제철 등 그룹 내부 일감을 바탕으로 연간 5000억 이상의 현금창출능력이 가능하다”며 “변동성이 큰 해운업 특성상 안정적인 현금창출능력은 글로비스의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금 여력이 충분한 글로비스는 머스크와 비슷한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즉, 기존 선대 구성을 연비가 좋은 고효율 자선은 늘리고 용선을 줄이는 것. 실제로 글로비스는 지난해 9월 세계 자동차 운반선사의 주력 운반선보다 800대의 자동차를 추가로 선적할 수 있는 ‘글로비스 스피릿(GLOVIS SPIRIT)’호를 현대삼호중공업으로부터 인도받아 단위당 운반 비용을 크게 낮췄다. 김민지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머스크는 90%의 낮은 부채비율과 155억달러에 달하는 유동성을 바탕으로 노후 선박을 교체하고 고효율 선박에 집중투자해 원가경쟁력을 확보했다”며 “글로비스도 고효율 선박을 확보해 적재율과 연비효율성을 높여 단위당 원가경쟁력을 제고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글로비스 수입원(Cash Cow)인 완성차 운송 사업

현재 글로비스의 가장 중요한 사업은 완성차 운송(PCC) 사업이다. 계열사인 현대∙기아차 해상운송 물량을 기반 삼아 완성차 운송사업의 노하우와 경쟁력을 확보했고, 이미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해상운송 물량을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성차 운송사업의 실적은 꾸준히 상승해 글로비스 전체 매출의 14%까지 넓혔다. 특히 유코카캐리어스로부터 단계적으로 현대∙기아차 수출물량을 이전받고 있어 완성차 운송사업이 글로비스의 확실한 Cash Cow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완성차 운송 사업은 3자물류 매출 비중이 가장 높아 글로비스가 3자물류 강화에 힘을 보탤 것으로 예상된다. 완성차 운송 사업의 비계열 매출 비중이 2010년 12%, 2011년 23%, 2012년 31%로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2013년에는 약 39%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해 3분기 현대∙기아차 수출대수는 5% 감소했지만, 완성차 운송 사업의 매출액이 4.9%로 증가한 이유도 포드, 닛산, 폭스바겐 등 3자물류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최 연구원은 “계열사 물량 대비 수익률이 높은 3자 물량이 늘어나면서 영업이익률이 최근 높아지고 있다”며 “최근들어 유럽 → 아프리카, 또는 유럽 → 중동 루트에 수요가 높고, 이에 따른 3자물류 물량도 확대되고 있어 앞으로 글로비스 수익률 향상에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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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그늘에서 벗어나야 산다

글로비스가 계열사 물량이 아닌 제3자 해상물류사업을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내놨지만, 주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최근 3개월간 글로비스의 주가 추이를 보면 지난해 10월 24일 24만4000원을 찍은 이후 하향 추세를 그리고 있다. 좀처럼 주가가 반등하지 못하는 이유는 현대자동차그룹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 때문이다. 글로비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비스의 매출액 중 현대차와 기아차가 각각 40.94%, 24.62%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제철 등 기타 계열사 물량을 포함할 경우 70%를 훌쩍 넘어선다. 물론 그룹 내부의 일감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지만, 현대∙기아차의 실적에 따라 널뛰는 주가와 실적 때문에 시장에선 글로비스의 밸류에이션과 성장성을 의심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현대차의 2013년 11월 판매실적은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과 환율변동으로 전년 대비 2.2% 감소하자 글로비스의 2013년 4분기 실적도 하향조정됐다. 더욱이 유코카캐리어스로부터 이전받은 현대∙기아차의 물량이 증가하면서 내부거래 비중이 증가해 현대자동차그룹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35%에 달하는 내부거래 비율은 이른바 ‘일감몰아주기방지법’의 규제 대상에 해당돼 규제의 후폭풍으로 글로비스 성장세가 꺾일 위험에 처해 있다.

이러한 이유로 글로비스가 3자물류와 벌크선 확대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그림이 그려진다. 즉, 3자물류를 활성화해야 글로벌 고객사를 다변화할 수 있고 일감 몰아주기 시비에서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계열사 물량으로는 성장할 만큼 해 새 성장동력을 찾지 않는다면, 글로벌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향후 500척의 선박을 운영하면서 수익을 내기 위해서도 3자물류 확대는 필수다. 내부 거래로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가는 물량은 확보돼 있지만, 되돌아오는 선박에 3자 화주의 물량이 없다면 자칫 빈 배로 돌아오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다행히도 올해부터는 현대차그룹이 아닌 3자 매출이 상당히 증가했다. 더불어 우량한 펀더멘털을 가진 기업으로 알려져 있어 ‘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식으로 성장한 회사라는 오명을 벗고 글로벌 선사로 발돋움할 것으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