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선물 거래가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신종플루에 감염된 돼지가 발견된 직후였다.
돈육(豚肉)선물상품 거래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작년 12월 돈육선물 거래 건수는 170계약. 거래량은 사상 최대 규모로 폭증했다. 돼지고기를 미리 확보하기 위한 ‘쟁탈전’이 꼬리를 물었다.

선물시장은 불확실성을 먹고 산다. 신종플루 파동은 돈육 선물 급등의 묘약이다.
지난 2008년 7월, 한국증권선물거래소에 상장된 돈육선물은 당시만 해도 국내 투자자들의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한국시장에서도 짐 로저스 같은 상품 투자가가 국내시장에서 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고개를 들었다.

돈육선물 상품 출시는 그 신호탄이었다. 금을 비롯한 인접 상품시장으로 거래 대상을 확대해 간다는 것이 거래소 측의 비전이었다. 성공의 요건도 골고루 갖추고 있었다.

시장은 흥행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국내 양돈업의 생산액은 3조 6093억원, 축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9% 정도다.
돼지고기는 쌀과 더불어 우리나라사람의 주식일 정도로 비중이 높다.

돈육이 선물 거래의 대상이 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거래 방식도 비교적 간단하다.

계좌를 계설한 뒤 개시 증거금이 있으면 거래 할 수 있다. 이익이 나면 차액을 출금할 수 있고, 손실이 나면 차액을 추가 입금해야 한다.

선물중개회사에서 선물거래 계좌를 만드는 것도 손쉽다. 주식 또는 주가 지수 선물거래를 위해 증권회사에서 계좌를 개설하는 과정을 떠올리면 된다.

시장규모, 거래의 편의성 등 흥행의 삼박자를 골고루 갖추고 있는 돈육선물 상품 거래가는 3월 현재 극히 부진하다. 돈육선물 상품 거래는 하루 평균 50계약 정도에 불과하다.

지루한 횡보 장세다.
전문가들은 돈육 선물 시장 활성화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지나친 증거금을 꼽는다.
돈육선물 거래 증거금은 건당 1500만원. 김영일 NH선물 돈육선물 팀장은 “선물 거래를 하려면 1500만원을 예탁금으로 불입해야 하는데, 이정도 돈을 맡기고 거래를 할 만한 이들이 있겠냐”라고 반문한다.

시장이 출렁거리는 일도 별로 없다. 변동성이 극히 작은 시장이다. 선물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헤지, 투자 양쪽 분야에서 모두 재미를 느끼기가 어려운 시장인 셈이다.

김 팀장은 “수 천 마리를 살 수 있는 돈을 선물 거래 증거금으로 불입할 투자자들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요즘 거래가 왜 이렇게 한산하냐는 항의전화가 자주 걸려 온다”고 귀띔했다.

증거금을 가파르게 올린 배경은 농촌 사회의 투기 열풍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농한기 때 돈육 선물 투기에 뛰어들어 빚더미에 오를지 모르는 농민들을 감안한 조치다.

거래 증거금을 대폭 올리고 레버리지 비율을 낮춘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하지만 규제당국이 성급한 면이 있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시장을 일정 수준 조성한 뒤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 골자이다.

아직까지 거래 한산…갈길 멀어
정부가 돈육 선물 시장에 유독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격’이라는 비판이다. 거래 부진의 직격탄을 고스란히 맞는 것은 선물업계이다.

거래가 한산하다 보니 민간 선물 업자들이 돈육 상품을 사들이는 진풍경도 펼쳐진다.
여기에 투입하는 자금이 매년 3억원 정도. 선물업계 관계자는 “작은 선물 회사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지 걱정이 된다”고 덧붙였다.

돈육 선물 시장에 뛰어든 업체들이 대부분 비슷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마나 초창기에는 하루 ‘100계약’ 정도를 유지해왔으나 투자 여력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고민이다.

금융투자협회 등을 상대로 꾸준히 민원을 하고 있으나, 뚜렷한 진전은 없다. 돈육선물 부진하다 보니 농산물이나 귀금속을 비롯한 여타 상품 선물 출시는 언감생심 시도를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거래가 뜸하다고 해서 돈육선물 재테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선물시장은 불안감을 먹고 성장한다. 선물 업계 관계자는 “작년 말 신종 플루 파동 때 거래가 급증하면서 대박을 터뜨린 투자자들이 꽤 있는 편”이라고 강조했다. 신종플루가 가격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거래가 활발해지고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는 때는 항상 신종플루 파동때였다.
돈육 선물업계는 요즘 지방자치단체들의 유치운동이 활발한 ‘금 거래소’에 주목하고 있다.

현물·선물 양쪽으로 거래 대상을 넓혀가고, 추후에 금은 물론 다른 선물 상품도 다룰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는 것이 업계의 요청이다.

선물 업계는 오는 7월 돈육선물 거래 2주년을 맞아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선물거래 활성화를 가로막는 문제점들을 대대적으로 알려 나간다는 계획이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