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가속 ‘경계경보’...수출시장 먹구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이하 연준)가 글로벌 시장에 양적완화(QE) 축소(Tapering)라는 선물을 전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선물일까. 양적완화 축소를 받아들이는 각국의 경제 전망은 제각각이다.

연준은 지난 18일(현지시각) 현행 월 850억달러인 3차 양적완화 규모를 내년 1월부터 750억달러로 줄이기로 결정했다. 찬성 9 대 반대 1의 표결로 QE 축소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것을 시작으로 달러를 인위적으로 찍어내 경기를 부양하는 통화정책은 폐막을 위한 출발선상에 섰다.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약 5년 만에 연준이 통화완화 정책을 정상화하는 이른바 ‘출구전략’에 나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5년 동안 연준은 사그라든 글로벌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달러의 유입량을 지속적으로 늘렸었다. 달러 과포화 상태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지난 5월부터 시기를 조율하던 연준이 축소를 결정한 것이라 의미가 크다.

연준은 국채와 모기지채권을 매입해 장기금리를 낮게 유지함으로써, 소비와 투자를 자극하려는 양적완화 정책을 점진적으로 축소해 내년 말까지 종료할 방침이다.

QE 축소를 결정할 수 있었던 주요 배경은 ‘미국 주요 경제지표의 호전세’이다. 연준은 이날 성명을 통해 “경제활동과 노동시장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며, 미국 경기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지난해 8월 8.1%이던 실업률이 지난달 7.0%까지 떨어졌다. 연장선상에서 연준은 내년 성장률을 2.8~3.2%로 지난 9월 예상보다 0.1%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또 다른 축소 배경으로 정치권이 예산안에 합의해 정치적 불확실성이 완화된 점도 부담을 덜어준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달 퇴임하는 벤 버냉키 의장이 논란이 되는 정책의 종료 단추를 자신이 떠나기 전에 눌러 후임자인 재닛 옐런 차기 의장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의도도 있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는 QE 축소를 둘러싸고 여전히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언제 다시 경기가 고꾸라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연준도 ‘양적완화 축소 규모가 앞으로 경기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사실상 시장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앞으로 최소 2년 동안 단기 기준금리는 제로(0~0.25%)에 가깝게 운용할 예정이다.

선진국 금융시장은 QE 축소 발표에 환호했다. 12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양적완화 축소 발표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시장이 크게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상원 국제금융센터 연구위원은 20일 보고서를 통해 “선진국 시장이 18일 이후 호전세를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미국은 2.7%, 선진국은 2.1% 등 크게 상승했다. 환율도 미달러화는 0.5% 강세(달러인덱스 기준)를 나타냈고, 호주 달러화는 26개월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 10년 국채금리는 14주 만에 2.9% 상회했고 독일 국채 금리도 0.4%포인트 올랐다.

하지만 QE 축소로 경제 부실도가 부각되는 나라도 있다. 출구전략이 선물이 아닌, 악재로 작용한 셈이다. 중국은 ‘단기 유동성 우려’, 일본은 ‘엔저 현상 심화’, 신흥시장에서는 ‘통화·자산 매각 가능성 상승’이 점쳐지고 있으며, 연장선상에서 한국 시장의 ‘수출 부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국 시장의 단기 유동성 우려가 높아지고 있어 경기회복 심리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국 7일물 환매 조건부 채권매매(리포) 금리는 19일 장중 9.8%까지 상승했다. 단기 유동성 우려가 재현되면서 19일 주가도 3.1%나 빠졌다.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과 반대의 행보를 걷고 있는 일본도 엔화 약세가 심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엔화 약세가 다시 악재로 나타나 내년에는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양적완화 축소는 신흥국 시장에도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의 출구전략으로 신흥시장에서의 통화·자산 매각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는 최근 신흥시장 가운데 터키·인도네시아·브라질·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미국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5대 취약국(Fragile Five)으로 분류했다. 또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터키·루마니아·폴란드·인도네시아·멕시코·콜롬비아·페루·아르헨티나·칠레 등 9개국을 고위험 국가로, 브라질·인도·러시아·베트남·남아공 등 12개국을 중위험 국가로 꼽았다.

국내시장에서는 QE 축소를 둘러싸고, 눈치게임이 한창이다. QE 축소 발표 당일, 외국인 주식매도세는 지속됐고, 채권은 순투자로 전환됐다. 지난 13일부터 19일까지 마이너스 3000억원을 기록했지만 연간으로 보면 4조7000억원이 늘어났다. 13일부터 18일까지 채권은 6000억원이 시장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출구전략이 ‘수출 전선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일본·신흥국에 대한 수출이 6월 이후 둔화하는 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QE 축소라는 ‘외생 변수’까지 추가돼 내년도 우리 수출전선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지난달 현재 9대 고(高)위험국에 대한 수출 비중은 6.6%(약 337억달러)지만 중위험 국가까지 포함하면 20%(약 986억달러)에 육박한다.

하지만 한국은행 측은 “국내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시장을 다독이고 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송년기자간담회에서 “QE 축소에 대한 위험도는 선반영돼 있었다. 다만 언제 오느냐의 이슈만 있었을 뿐이라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