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자원· 전자소재 미래수종 빅3 찾았다 

 

전기자동차, 자원확보, 전자소재는 2013년 글로벌 경제의 화두였다. 산업구조 변화와 소비자 패러다임 변화, 신에너지 보급 확산 등으로 산업계와 증권업계는 이들 사업에 주목했다. 전기자동차는 테슬라의 열풍으로 잠재성을 확인했고, 구글글라스나 스마트워치와 같은 웨어러블(Wearable) 기기가 등장하면서 디스플레이 기술의 중심에 서 있는 전자소재의 필요성을 느꼈다. 또한 약 300억 톤의 원유가 매장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동남아 난사군도(南沙群島)를 두고 대립하는 아시아, 희토류의 수출을 제한하고 있는 중국 등 주요 자원 비축을 서두르고 있는 국가들을 지켜보며 자원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신기하게도 이들 사업에 모두 진출한 기업이 있다. 바로 SK이노베이션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미 멀게는 30년 전부터 이들 사업에 관심을 갖고 투자를 지속해왔다. 기업이 기존의 사업만 순순히 따르다 보면 쇠퇴와 몰락의 길을 갈 수 있는 게 요즘 현실이다. 이럴 때 SK이노베이션은 자신의 사명(Innovation)처럼 역발상을 통해 과감히 성장동력을 찾았다. 역발상을 통해 기존에는 없다고 생각한 분야에 기술을 더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미래에 대비해온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원개발, 2차전지, 그린폴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물음(ASK)이 있는 곳에 이노베이션(Innovation)이 있다’라는 문구는 SK이노베이션을 잘 대변하는 핵심 메시지다.

‘왜 그렇게 할 수 없을까?’에서 시작한 이노베이션의 혁신

“우리는 묻고 또 물을 겁니다. 물음이 곧 창조고 미래니까”

SK이노베이션의 광고 문구다. 이 광고의 첫 시리즈는 “석유 안 나면 석유수출 못 해?”로 시작된다. 이 질문에서 SK이노베이션은 ‘매출의 73% 53조 수출’이라고 답한다. 실제 기름 한 방울 나지 않은 우리나라는 원유를 들여와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을 생산했다. 석유제품은 2011년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5분기 연속 국내 수출상품 1위를 차지했다. 비록 D램 호황으로 반도체에 수출 1위 타이틀을 내줬지만, 석유제품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무역 강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1등 공신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SK이노베이션이 있었다. 경질유 제품을 중심으로 고(高)부가가치 제품을 수출해 올해는 9월 말까지 27조원을 해외에서 벌어들였다.

SK이노베이션은 여기에 멈추지 않았다. “자원 없으면 자원강국 안 돼?”, “이산화탄소가 자원이 될 수 없어?”라는 역발상적인 질문을 통해 새로운 먹거리를 하나씩 만들어갔다. 그 결과 정제마진 감소와 석유제품 수요의 부진으로 정유∙화학업종이 깊은 수렁에 빠졌지만, SK이노베이션은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로 위기를 정면 돌파해나가고 있다.

신의 한 수 자원개발’ 향후 10년은 SK를 먹여 살린다

올해 SK이노베이션의 실적을 이끈 주역은 다름 아닌 자원개발 사업이다. 지난 3분기 석유 수요 부진에 따른 정제마진 하락과 정기보수로 인한 판매량 감소로 정유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지만 SK이노베이션은 자원개발이라는 든든한 뒷심으로 선방한 실적을 보였다. 실제 자원개발 사업의 영업이익은 SK이노베이션 전체 영업이익의 40%까지 도달했다. 전체 매출의 1.5%에 불과하지만, 영업이익률이 60%를 돌파하며 알짜 사업으로서 면모를 톡톡히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는 단순히 원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자원개발 사업을 진행했지만, 적극적인 투자와 성공 노하우를 습득해 해외기업에 생산∙탐사 광구를 매각하는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했다. 자원개발 사업은 수익성이 높은 반면 탐사성공률이 매우 낮고, 매장량을 잘못 판단했거나 뒤늦게 사업성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할 때 발생하는 위험 부담이 크다. 더욱이 정부 지원을 받는 중국과 일본 기업들이 자원개발 광구나 기업 몸값을 잔뜩 올려놓은 데다 경쟁 입찰 시 자금력에서 밀려 이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이유로 자원개발 거래를 주도했던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광물자원공사는 호주와 페루 등에서 자원개발에서 손을 떼기로 했고, 삼성물산, LG상사, 대우인터내셔널 등 국내 대표 상사들도 자원사업 구조조정에 나섰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은 1983년 이후 성공과 실패를 거듭해 원유 정제를 통해 석유제품을 공급하는 리파이너리(Refinery) 업체에서 자원개발을 통해 원유를 수출하는 E&P(Exploration& Production) 회사로 성장했다. 특히 2010년 유전개발부터 가스생산, 수송, 수출까지 성공한 페루 LNG프로젝트와 2011년 브라질 생산∙탐사 광구를 덴마크 머스크오일에 매각한 사례는 국내 자원개발 사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다.

또한 베트남 15-1, 예멘 LNG 프로젝트, 페루 56광구와 88광구 등의 연이은 성공으로 SK이노베이션이 하루에 생산할 수 있는 원유량은 7만 배럴을 돌파했다. 이는 2008년 2만6000배럴 수준에서 5년 만에 세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로 우리나라 전체가 약 10개월가량 쓸 수 있는 원유량이다. 생산된 원유 전체는 해외로 수출하는데 이에 따른 매출액이 약 1조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자원개발 사업의 성과는 SK이노베이션의 실적으로 고스란히 반영돼 정유사업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었다.

SK이노베이션의 또 다른 물음, 2차 전지와 전자소재

SK이노베이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정유와 화학이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이 새로운 먹거리로 지목한 사업은 2차전지와 전자소재다. 이노베이션(Innovation)이라는 사명처럼 2차전지와 전자소재에서 새로운 혁신을 꿈꾸고 있다. 특히 2차전지 사업은 어찌 보면 SK의 주수입원인 정유업과는 대척점에 있다. 휘발유로 달리는 자동차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전기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은 달랐다. 전기차라는 새로운 운송수단의 등장과 각국의 환경규제로 정유업은 이제 미래의 에너지 영토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에 눈을 돌린 곳이 2차전지다. SK이노베이션은 1996년 2차 전지 연구를 시작해 지난 2005년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배터리 팩 개발로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거침없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2012년 5월 일본 미쯔비시 후소(Mitsubishi Fuso)사와 약 2년 반 동안 공동개발을 통해 나온 하이브리드 트럭 ‘칸터 에코 하이브리드’가 일본에서 판매를 시작했고, 9월에는 전기차 1만 대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서산 공장을 가동하면서 글로벌 메이저 플레이어로서 도약하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결과 SK이노베이션은 현대∙기아자동차, 다임러(Daimler)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의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성과를 보였다. 특히 올해 1월 콘티넨탈과 합작한 ‘SK-콘티넨탈 이모션’을 설립하면서 세계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이미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은 SK의 배터리 셀 기술과 BMW, 다임러 등에 배터리 팩을 공급해온 콘티넨탈의 배터리 팩 시스템, BMS 및 자동차 부품 기술 노하우가 접목되면서 전기차용 배터리 기술 분야에서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2차전지 매출액이 SK이노베이션 전체 매출액에서 차치하는 비중이 미비하지만, 향후 기대치는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실제 올해 자동차업계 돌풍을 몰고 온 테슬라 사례에서 알 수 있듯 2차전지 시장은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 솔라앤에너지에 따르면 2차전지 배터리의 세계 시장 규모는 2010년 10억달러에서 2015년 80억달러로 8배 늘어나고 2020년에는 560억달러로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전자소재 사업도 전기차 배터리 사업과 함께 SK이노베이션의 기술 영토 확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자소재 분야에서는 리튬이온분리막(LiBS)과 연성동박적층판(FCCL), 트리아세틸셀룰로스(TAC)필름 사업 등을 축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세계 세 번째로 개발에 성공한 리튬이온분리막은 저수축성ㆍ내열성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으면서 시장점유율 3위에 올라 있다. 현재 누적매출 약 6000억원을 넘어서면서 전 세계 노트북과 휴대폰 5대 중 1대에 SK의 분리막이 사용되고 있다. 리튬이온분리막 시장은 2010년 말 현재 6억6000만달러에서 오는 2020년 37억달러로 폭발적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기술력을 갖춘 SK이노베이션은 오는 2014년까지 8~9호 라인을 확장해 글로벌 메이저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할 계획이다.

연성동박적층판도 스마트폰과 디지털카메라 등에 들어가는 얇은 전자기판으로, 2011년부터 연산 350만㎡급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TAC필름 또한 국내 LCD 제조사의 제품 인증을 받아 상업 생산을 시작한 상태. 현재 42인치 TV 1억여 대에 공급할 수 있는 연산 5400만㎡급 생산 능력을 갖췄다.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ㆍ정보전자소재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두 사업을 묶어 새로운 ‘회사 내 회사(CICㆍCompany In Company)’를 출범시켰다. 배터리와 전자소재 시장은 아직 사업 초기 단계로 업계가 예상하는 것보다 시장 팽창 속도가 빨라 글로벌 시장에서 초기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도 관건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SK이노베이션은 두 사업의 시장이 아직 완전히 성장세에 접어들지 못한 만큼 시장을 선점하고 경쟁우위를 점하겠다는 포석으로 CIC를 출범시켰다”고 평가했다.

또 하나의 역발상 “이산화탄소도 자원이 되다”

방출된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친환경 플라스틱 재료를 생산하는 것은 SK이노베이션이 추구하는 또 하나의 혁신으로 평가받는다. 지금까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방법은 에너지 소비를 줄여 CO2를 덜 뿜는 것이었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발생한 CO2를 잡아내 대기 중에 퍼지지 않도록 포집해 폴리머 제품으로 전환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가치가 없었던 이산화탄소를 활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조한 셈이다.

일명 그린폴(Green-Pol)로 불리는 이산화탄소 플라스틱은 세 가지 이점이 있다. 우선 CO2 배출량이 줄어든다. 둘째는 플라스틱의 원료인 석유를 대체함으로써 자원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여기에 덤으로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탄소 배출권’이라는 것까지 얻을 수 있다. 그야말로 1석 3조다. SK이노베이션은 이런 그린폴의 기반 기술 개발에 이미 성공했다. 시제품 생산용 소형 설비(파일럿 플랜트)도 완공했다. 현재 양산 기술을 완성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린폴 사업과 함께 SK이노베이션은 청정 석탄에너지 기술을 저탄소 녹색성장 추진의 전략 분야로 선정하고 2008년부터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개발 중인 기술은 기존 기술 대비 이산화탄소와 공해물질의 배출을 혁신적으로 낮추는 기술로,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고 확보하기 쉬운 저급 석탄을 ‘석탄 가스화’공정을 통해 합성가스로 전환하고 전환된 합성가스를 활용해 합성석유, 합성천연가스,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 기술 개발을 위해 국내 최고의 연구기관과 기업, 대학을 연계한 연구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기술 개발의 효율성과 속도를 높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009년 7월 지식경제부, 포스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고등기술연구원 등과 MOU를 체결하고 청정 석탄에너지 공동 개발을 위한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각 참여기관은 각 분야에서의 강점에 집중하고 협력해 비용 절감은 물론 연구기간을 최대한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역발상으로 시작한 이러한 SK이노베이션의 사업전략에 일각에선 중구난방으로 투자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미 글로벌 기업은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수익성 제고를 위해 신성장동력 발굴에 총력을 기울이거나 새로운 사업에 서슴없이 도전하고 있다. 일본 스미토모화학은 반도체 컴파운드 사업을 확대하고 있고, 독일계 화학기업 바커(WACKER)는 첨단 전자재료 중심의 기술연구소를 설립해 소재사업에 나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산화탄소, 2차전지, 전자소재 등 핵심 기술로 떠오르고 있는 사업에 SK이노베이션이 모두 발을 담갔다”며 “아직 이들 시장이 성장기 단계에 있는 만큼 향후 SK이노베이션은 적극적인 투자로 시장을 선점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할 것이다”라고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