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반짝 빛난다. 혹여나 손자국이라도 찍힐까 조심조심 다루게 된다. 매일 정성들여 닦는 것은 기본.

흔히 고급 세단하면 쉽게 생각하게 되는 얼굴이 비칠 정도의 눈부신 ‘광택’이 사라지고 있다. 일명 ‘무광 페인팅’으로 불리는 밋밋한 페인팅 작업이 새로운 럭셔리자동차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이러한 무광 페인팅이 실용적인 일반 차량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다.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무광 페인팅을 적용한 럭셔리카가 아닌 일반형 콘셉트카도 앞 다퉈 내놓고 있다.

무광택 페인팅은 감촉은 부드럽지만 겉보기엔 거칠어 보이는 질감이 특징이다.
지난 3월4일 개막해 14일까지 진행된 제네바 모터쇼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이번 모터쇼에는 메르세데스의 고급 세단은 물론 주문 제작 된 람보르기니, 로터스까지 무광 처리돼 출품됐다. 색깔도 초기 검은색뿐 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흰색부터 회색까지 다양하다. 이번 제네바 모터쇼에 출품된 무광 페인트 모델은 최소 8개 모델에 달한다.

사실 그동안 무광택은 튜닝카, 혹은 람보르기니 레벤톤과 같은 고성능 차량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3년 전 람보르기니는 놀라운 제한 속도를 자랑하는 자사 레벤톤 차량에 마치 스텔스 폭탄의 외장 페인팅과 비슷한 느낌의 무광택 페인트를 처음 도입했다.

이미 그 놀라운 성능만으로도 주목 받는 차량이었던 레벤톤은 무광택 페인팅으로 인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이후 무광택 페인팅은 고급 차량들 사이에서 서서히 유행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고성능 차량이 무광택을 선택한 이유는 다소 가벼운 느낌의 광택 차량보다 묵직하고 차분한 느낌을 주기 때문. 이로 인해 외관 페인팅에서 풍겨지는 느낌만으로도 고성능 차량이라는 자동차 콘셉트를 쉽게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모터쇼 관람객들의 무광택 차량에 대한 폭발적 관심으로 인해 BMW는 오는 4월 중국에서 열리는 베이징 모터쇼에 ‘프로즌 블랙(frozen black)’이라는 이름의 검은색 무광택 차량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는 향후 고객 주문 제작 라인에서 선택 가능한 색상 옵션으로 자리 잡게 된다. 검은색 뿐 아니라 흰색도 구입이 가능하다.
반면 유럽에서의 인기와 다르게 미국에서는 아직까지 무광택 차량 인기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이에 대해 조첸 플래너 칼슨 영업 담당자는 “미국은 아직까지 겉보기에 번쩍번쩍하고 멋진 차량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묵직한 느낌보다는 밝은 색깔과 줄무늬와 같은 경쾌한 문양을 선호한다는 것. 그러나 미국에서도 역시 무광택 페인팅 차량에 대한 수요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2009년 서울 모터쇼에서 현대차동차가 프라다와 공동으로 단 3대만 생산한 무광택 외장컬러 제네시스 프라다를 전시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전시 직후 구입을 원하는 고객들의 문의가 빗발쳐 현대차는 이 차량에 대해 많게는 수 천대까지 양산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안혜신 아시아경제 기자 ahnhye84@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