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쾌속세대’의 이코노믹 파워

2월28일 밴쿠버 하얏트 호텔에 위치한 코리아 하우스에서 열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서 선수들이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쾌속(快速)세대’란 속도를 즐기며, 자신의 뜻대로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젊은 세대를 일컫는다. 밴쿠버 쾌속세대 특유의 자신감과 자유분방함, 즐기는 도전정신은 동계올림픽 사상 최고의 성과로 이어지며 ‘미라클 코리아’의 신화를 창조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됐다. 더불어 이들의 눈부신 금빛 쾌속 질주는 직간접적인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G세대식 이코노믹 파워를 보여줬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쾌속세대의 활약은 눈부셨다. 아시아 최초로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쇼트트랙 3종을 석권하는 ‘빙상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면서 종합 5위의 성적을 거뒀다.

특히 불모지나 다름없던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은 금메달을 거머쥐는 쾌거를 올렸다. 김연아 역시 피겨스케이팅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누구도 넘보지 못할 은반의 ‘여제’로 등극했다.

그렇다면 실제 이들이 빚어낸 성과에 대한 경제적 효과는 얼마나 될까. 최근 삼성경제연구소 이동훈 연구원은 ‘동계올림픽의 경제적 가치와 효과’ 보고서를 통해 밴쿠버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이 거둔 성과는 직간접적으로 20조2000억원 이상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20조2000억원은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2%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 연구원은 우선 이번 올림픽에서의 선수들의 선전은 주요 선진국으로부터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1조2천억 원의 ‘대한민국’ 브랜드 홍보 효과를 거둔 것으로 추산했다.

메달리스트의 방송에 노출되는 시간이 시상식 등을 포함해 30분 가량이라고 했을 때 올림픽 주요 방송사의 분당 광고비(약 240만 달러)에 환율(달러당 1200원)을 적용하면, 메달 1개당 864억원에 준하는 광고가치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국가 브랜드 이미지 제고로 기업이미지가 동반 상승과 함께 연쇄적으로 매출증대의 효과도 기대되고 있다.

그는 “이번 올림픽을 통해 500대 기업에 포함되는 국내 14개 기업은 1곳당 600억원씩 모두 8400억원의 광고를 투입한 효과를 거뒀다”며

“이로 인해 14조8천억 원의 기업매출이 증가할 것”이라 말했다. 여기에 올림픽기간 동안 국민이 느끼는 즐거움과 만족도를 TV 시청시간에 대한 기회비용으로 계산하면 국민 사기진작 등 간접적인 경제적 가치는 3조2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외에도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레저, 스포츠산업이 활성화되고 이는 산업 연관성이 높은 관광, 보건의료 산업 등으로 그 여파가 확대되어 일자리 창출 및 국내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것으로 이 연구관은 전망했다.


“도전도 즐겨요!” 쾌속세대의 잠재력이 원동력
겨울올림픽 경기들은 많은 투자와 시설, 첨단의 스포츠 과학이 뒷받침돼야 성적을 기대할 수 있기에 전형적인 선진국 스포츠로 분류된다.

때문에 밴쿠버의 기적은 그냥 기적이 아닌 기업의 경제적인 후원과 앨리트 선수 교육, 많은 시간 투자가 이뤄낸 준비된 기적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밴쿠버 성과는 두려움을 모르는 자신감과 운동에 대한 열정, 도전조차도 즐기는 쾌속세대만의 잠재력이 큰 몫을 했다는 평가다.

이번 밴쿠버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빙상 샛별들은 1988년 서울올림픽 전후에 태어난 글로벌 세대, 이른바 G세대다.

모태범, 이정수, 이상화 선수는 모두 1989년생이며 이승훈 선수는 1988년생이다. ‘피겨여왕‘ 김연아 역시 1990년생으로 이 세대에 속한다.

마치 게임을 하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며 패배해도 개의치 않는 성향을 보이는 G세대는 ‘챌린조이(challenge+enjoy) 세대’라 불리기도 한다.

챌린조이 세대는 국민소득의 증가와 전반적인 사회·문화적 환경 성숙의 영향으로 타인의 강요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고 모험과 도전 자체를 즐김으로써 기대이상의 성과를 창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최청락 건국대(스포츠과학부) 교수는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는 큰 부담없이 경기를 즐겼다고 말하는 젊은 선수들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나라 스포츠 선수들의 확연한 세대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며

“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자신의 성장발전을 위해 운동에만 열중하기 때문에 박지성 선수처럼 즐김의 미학을 높은 성적으로 연결시키는 저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세계적인 무대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은 쾌속세대의 ‘자신감’과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 또한 모태범, 이상화와 같은 깜짝 빙상스타를 탄생시켰다.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쾌거가 경영에 주는 시사점’에 따르면 개성이 강하고 자기표현이 명확한 신세대 선수는 큰 무대의 긴장감에 압박받지 않고 역으로 즐길 줄 아는 대담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남자 500m 결승을 앞두고 정빙기가 고장나 경기가 1시간 정도 지연되었음에도 모태범 선수가 평소 이상의 성적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침착하게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였기 때문이라는 것.

금메달 확정 후 쾌속 세대 선수들이 보여준 독특하고 코믹스러운 세리머니 또한 보는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모태범은 온몸에 태극기를 감고 막춤을 췄으며 빙속 1,000m에서 금메달을 딴 이승훈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양손의 검지를 펴 먼 곳을 가리키는 손가락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이처럼 카메라 앞에서도 자신을 드러내며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이들은 광고 모델로서도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특히 이상화와 모태범의 경우 톡톡 튀는 입담과 연예인 못지않은 끼, 호감가는 외모로 인기를 모으면서 CF 업계가 가장 눈독을 들이는 스포츠 스타 모델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 광고업계 관계자는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모태범, 이상화 선수의 학교인 한국체육대에 광고 에이전시 관계자들이 진을 칠 정도로 모델 섭외를 위한 물밑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실제 이규혁 선수를 포함한 우리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단을 후원했다가 뜻하지 않은 대박 효과를 거둔 기아자동차는 올림픽 이후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 등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의 경기모습을 편집한 광고를 후속타로 선보여 차세대 예비 CF스타의 ‘선점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기아차 광고대행사인 이노션의 이지숙 부장은 “젊고 패기가 넘치는 이미지와 잠재력, 그리고 이들의 드라마틱한 인간승리의 성공 스토리는 소비자들에게 크게 어필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견인차 역할 ‘톡톡’
광고업계의 잇다른 러브콜로 쾌속세대의 이코노믹 파워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가운데, 중장기적으로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이들의 저력은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동계 올림픽 개최는 스포츠산업 저변확대, 국가 경제의 신성장동력확보, 일자리 창출 등으로 이어져 20조원 이상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낳을 것이란 평가다.

우선 한국이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거둔 ‘종합 5위’의 성적만으로도 경기력에 대한 재론의 여지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하다.

또한 메달 획득종목의 다양화로 스포츠외교 인력풀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됨에 따라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노력은 한층 탄력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게 스포츠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청락 교수는 “동계올림픽 유치는 경기 시설 인프라 구축 뿐만 아니라 전 국민적인 관심도와 경기력이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며

“선수양성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체계적인 교육, 알파인 스키, 스키점프, 바이애슬론 등 설상종목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진다며 쾌속 세대의 열정과 능력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민정 기자 puri21@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