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911, 222, 112, 1110….

긴급구조 전화번호나 행운의 숫자가 아니다. 기업들의 송년 캠페인을 뜻하는 숫자들이다.

119는 ‘한 가지 술로, 한 장소에서(1차만), 저녁 9시 이전에 (송년회를) 끝내자’는 의미이며, 911은 순서만 바꾼 숫자 배열이다.

222는 ‘반 잔(1/2)만 채우고, 두 잔 이상 권하지 않고, 2시간 이내 술자리 마무리하자’이며, 112 역시 ‘한 종류의 술로 1차만 2시간 이내로 하자’는 뜻이다. 1110은 ‘1가지 술로 1차만 10시까지 마시자’로 송년회를 접는 시간이 한 시간 더 늘어났을 뿐이다.

내용에서 알 수 있듯 기업들의 숫자 송년회 캠페인의 공통점은 술을 적게 먹자는 ‘절주(節酒)’를 표방하고 있다.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부어라, 마셔라’식의 흥청망청 송년회가 아닌 ‘적당히 마시자’는 건전하게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문화를 즐기자는 취지다.

일부 기업은 절주의 취지에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술 대신에 문화공연 관람, 불우이웃에 봉사활동, 가족과 함께 보내기 등 송년회 하면 으레 떠올리는 ‘술’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사랑과 나눔’의 의미를 고취시키는 캠페인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회장 허창수)가 9일 발표한 산하 윤리경영임원협의회 기업 78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3년 송년회 트렌드’ 설문조사 결과에서 응답기업의 60.0%(60개사)가 송년회 관련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전경련이 송년회 캠페인 진행 36개사를 분석한 캠페인 내용에서는 절주 및 행사 간소화가 80.6%로 가장 많았고, 봉사활동(8.3%), 문화·스포츠(5.6%), 가족과 함께(5.6%)로 나타났다.

절주 및 간소화 캠페인으로는 삼성증권, SK증권, 효성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119회식 캠페인’이 가장 많았고, ‘222 캠페인’은 포스코에서, ‘112 캠페인’은 SK하이닉스가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술자리 송년회 대신 봉사활동이나 기부활동을 권장하고 있는 기업은 아시아나에어포트, 삼성SDI, 두산중공업 등으로, 이들 기업은 전사적 차원이 아닌 개별 부서에서 자율적, 능동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치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한 LG생활건강은 ‘일등품격 캠페인’을 통해 송년모임을 문화활동이나, 가벼운 점심 회식으로 대체하고, 현대글로비스·삼부토건은 음주보다는 뮤지컬 등 문화공연을 관람하는 ‘문화 회식 캠페인’을 진행한다.

아예 송년회 자체를 없애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회사도 있다. 현대해상은 매주 수요일을 ‘패밀리 데이’로 지정해 회식 대신에 일찍 귀가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건전한 사내 음주문화 캠페인을 시작해 온 삼성그룹도 이같은 재계 분위기를 호응해 올해에도 이달 2~27일 4주일 동안 ‘다음날 아침도 상쾌한 송년회’라는 사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은 송년회 과음 폐해를 줄이기 위해 벌주-원샷-사발주 등 이른바 ‘3대 음주 악습’을 금지하고, 지나친 건배사 제의를 하지 않도록 하는 세부 지침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