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태 대표이사 발행인(sungt57@ermedia.net)

학구적이고 냉철한 선비 스타일의 조선의 성군(聖君). 카리스마와 인간미를 겸비한 개혁군주. 조선의 22대왕 정조(재위 1776~1800년)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정적(政敵)인 노론 벽파의 우두머리 심환지에게 보낸 개인서찰 299통이 최근 발견되면서 정조는 은밀하게 신하들과 소통하며 막후정치를 폈던, 노회한 마키아벨리스트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조는 1796년 8월20일부터 1800년 6월15일까지 3년10개월간 심환지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용도 신하들을 “호로자식… 젖비린내 나는…” 등 거침없는 표현으로 비난한 데서부터 “그댄 어디 갔기에 날 까맣게 잊었는가”며 인간적으로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정조는 신하들과의 비밀서찰을 통해 여론과 정보를 수집, 국정을 장악했다. 그는 적대세력인 심환지를 예조판서에서 우의정으로 임명하기 위해 내용과 날짜, 횟수까지 서로 짜고 상소를 올리게 했다.

어떤 때는 심환지를 주책없는 늙은이라고 꾸짖다가도 그의 아들을 과거에 급제시키려고 노력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결국 정조는 치열했던 현실 정치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적과 동지를 가리지 않고 설득하고 포용했다. 정조는 서찰을 통해 정치적인 현안뿐 아니라 솔직담백하고 격정적인 문체로 신변잡기(身邊雜記)를 표현하면서 인간적인 소통에 노력을 기울였다.

정조의 서찰이 발견된 후 청와대를 비롯해 정치권에 진정한 소통과 포용정치에 대한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어느 누구도 정조의 서찰 얘기를 공식적으로 꺼내지도 않았고 이 대통령도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최근 동아일보가 현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아 정치·경제·교육 분야 전문가 81명을 대상으로 총 25개 항목에 설문조사한 결과, 청와대와 야당 및 시민단체와의 소통이 어느 정도 이뤄지느냐는 문항에 대해 2.06점(5점 만점)으로 조사 항목 중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당정협조체제도 2.43점이었고 국민통합 능력도 2.21점에 불과했다. 청와대 참모진에 대한 평가도 잘한다고 답한 사람은 응답자 31명 중 3명에 불과했다. 이는 바로 집권세력이 야당은 물론 여권 내 계파세력들, 국민들과도 소통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대통령과 직접 소통을 시도해 보지 않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부부처의 고위관료나 청와대 참모진과의 소통 시도는 실망 그 자체다. 너무 바빠 만날 수도 없고, 전화와 이메일도 잘 안 된다. 뭘 하는지 몰라도 자기들만 바쁘고 분주하다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용산 참사와 강호순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 행정관은 이메일 지침이나 내리고 청와대 대변인은 일주일째 공식브리핑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언론이든, 야당이든, 국민이든 상대방과 소통이 되어야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건지, 왜 그렇게 바쁜지를 알 것 아닌가?

지난 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기 위해 39만명에 달하는 국민들이 3~5시간이나 떨며 기다려 조문행렬에 참여했다. 김 추기경이 살아생전 사형수들, 철거민들, 민주운동 투사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들과 소통했고 그들을 이해하며 사랑 나누기를 실천했기에 정파·이념·지역·종교를 떠나 국민들은 한마음으로 김 추기경을 애도했다. 김 추기경의 선종이 새로운 국민통합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2월25일이 집권 1주년이다. 지난 1년간 국정수행 예행연습 기간이 너무 길었다. 정조의 서찰과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에서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여권 집권층은 포용의 정치, 설득의 정치, 소통의 정치를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