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 바꾼 114년의 장수기업
새로운 100년은 기업모델 창출 위한 준비기간

국내 최장수 기업은 누구나 알고 있듯 두산이다. 두산의 창업주는 박승직 선생이다. 1864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박승직 선생은 보부상으로 활동하다 1896년 서울 배오개 시장(지금의 종로 4가)에서 ‘박승직 상점’을 열었다.

이 박승직 상점이 바로 두산의 모태이자 한국 근대기업의 출발이다.
두산은 박두병 회장을 초대 회장으로 꼽는다. 두산그룹은 현재 ‘3세대’인 박용현 회장이 이끌고 있다.

박 회장은 박두병 초대 회장의 4남이다. 맏형인 박용곤 명예회장을 시작으로 아우들로 회장직을 ‘내림’하는 두산그룹의 독특한 ‘형제경영’ 전통은 3세대에 시작됐다.

두산그룹은 이후 동양맥주, 두산산업, 동산토건(현 두산건설), 한양식품 등을 설립하며 소비재, 건설 기업으로 자리를 확고히 했다. 한동안 ‘오비맥주’는 두산그룹의 상징이기도 했다.

창업 100주년 즈음이 되는 1990년대 중반, 두산그룹의 소리 없는 변신이 시작됐다.
소비재 산업만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경영진은 그룹의 체질을 소비재에서 중공업으로 바꾸기로 했다.

두산그룹의 행동은 신속했다. 소비재 위주의 사업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기로 한 두산그룹은 우선 현금 확보에 주력했다.

그룹이 보유하고 있던 한국 네슬레, 한국3M, 한국코닥 지분을 처분하고 오비맥주 영등포 공장을 매각해 현금 흐름개선에 주력했다.

1997년에는 음료사업 부문을 매각했다. 이처럼 다른 기업보다 한발 앞선 구조조정으로 두산그룹은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벗어날 수 있었다.

오히려 넉넉한 현금으로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수 있었다.
1998년 출범한 ㈜두산이 체질개선을 지휘했다. 비교적 자금 흐름이 좋았던 ㈜두산은 2000년 말부터 사업 포트폴리오 변화를 위한 본격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섰다.

두산이 국내 최장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이었다. 1996년은 창업 100주년이었지만 외환위기를 앞둔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박용곤 회장(현 명예회장)은 새로운 100년을 열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과감한 변신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과감한 구조조정 결정을 했다. 소비재 위주의 사업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기로 했다.

한국네슬레, 한국3M, 한국코닥 지분과 OB맥주 영등포 공장을 매각해 현금흐름을 개선했다.

두산은 이어 1997년에 음료사업을, 1998년에는 주력사업인 OB맥주와 서울 을지로 본사 사옥도 매각했다. 이러한 선제적 구조조정으로 상당한 현금흐름을 개선함과 동시에 넉넉한 현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외환위기로 국내 유수의 기업들이 쓰러졌지만 두산은 이를 통해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을 찾아 나설 수 있었다.

스코다파워 인수 : 두산중공업 목진원 상무(왼쪽 세번째)가 2009년 9월14일 체코 프라하에서 체코 스코다 홀딩의 Tomas Krsek 대표이사(왼쪽 두번째)와 스코다 파워 인수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중공업 전문그룹으로의 도약
두산이 새롭게 눈을 돌린 분야는 인프라 지원사업(ISB, Infrastructure Support Business)이었다.

ISB 사업은 도로, 철도, 항만, 공항 등 기존의 사회 간접시설 뿐만 아니라 에너지, 국방, 생산설비, 물류와 운송설비까지 망라하는 세계시장 규모가 연간 수천조원에 달하는 거대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첫 출발은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인수였다. 인수 당시만 해도 소비재 사업을 하던 두산이 중공업을 맡을 수 있겠냐는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두산중공업은 저수익 사업이던 제철, 화공 사업을 정리하고 발전, 담수 등 핵심 사업에 역량을 집중했다.
그 결과 2000년 매출 2조4000억원에 순손실 248억원으로 적자였던 두산중공업은 2009년 매출 8조1230억원 영업이익 6145억원(연결 기준)을 기록하며 우량기업으로 탈바꿈했다. 100년 동안 축적해 온 경영능력은 다른 사업에서도 통했던 것이다.

두산은 이후 고려산업개발(2003년. 현 두산건설), 대우종합기계(2005년. 현 두산인프라코어)등을 인수하며 대표적인 중공업 그룹으로 도약했다.

국내 굴지의 중공업 그룹으로 자리를 잡은 두산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담수설비(두산하이드로테크놀러지),발전소 보일러(두산밥콕),친환경 엔진(미국 CTI사), 소형 건설장비(밥캣) 등 원천기술을 확보한 외국 회사들도 차례로 인수했다.

이들 기업은 모두 인프라지원사업(ISB) 분야에서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담수설비, 보일러에서 원천기술을 확보한 두산중공업은 2008년 이산화탄소 포집 저장(CCS) 원천기술 보유 업체인 캐나다 HTC사 지분 15%를 확보했다.

또한 2009년에는 터빈 제조 분야에서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체코 스코다 파워 인수를 통해 보일러-터빈-발전기로 이어지는 ‘풀 라인업’을 구축했다.

두산의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구조조정을 진행하던 1998년 3조3000억원이던 매출이 2009년에는 20조원을 넘겼고, 영업이익도 700억원에서 8100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빠른 성장을 이뤄냈다.

한국중공업 인수:박용만 ㈜두산 회장이 2000년 12월 19일 산업은행 본점에서 한국중공업 인수를 위한 주식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악수를 하고 있다.


114년의 청년기업 두산
두산은 올해로 창립 114주년을 맞는다. 두산은 이제 겨우 114살이라며 스스로를 ‘청년 두산’이라고 말한다.

가장 오래된 기업이긴 하지만 동시에 가장 빠르게 변화하며 성장하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변화와 원칙 있는 환경 적응력이 바로 국내 최장수 기업 두산의 성장 동력이자 핵심 DNA이다.

두산은 변화와 혁신을 통해 10년 후에는 글로벌 200대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박용현 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 “2010년은 새로운 10년의 시작으로 두산은 지난 10년 동안 괄목할 만한 변화와 성장을 일궈냈다”며 “이제 우리는 두산의 새로운 도약의 역사를 써나가 이 10년이 끝나는 2020년에는 글로벌 200대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산은 앞으로도 ISB 사업에 집중할 방침이다. 이는 단순히 해외에 진출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고 회사의 가치 창출과 수익을 전제로 지역과 제품에서 선택과 집중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밥캣, 밥콕, 스코다파워 등 해외 계열사들과의 시너지 효과도 극대화하고 친환경설비, 신재생에너지 등 미래사업 기술개발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두산비나 준공식:2009년 5월15일 베트남 중에서 열린 두산비나 생산공장 준공식에서 박용현 두산 회장(오른쪽 두번째), 호앙 쭝 하이 베트남 부수상(오른쪽 세번째), 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오른쪽 첫번째) 등 관련인사들이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일례로 두산중공업은 올해 2월 유럽, 미주 발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이 지역 발전사업을 총괄할 두산파워시스템(DPS, Doosan Power Systems)을 설립했다.

DPS는 보일러 원천기술을 보유한 두산밥콕과 터빈 원천기술을 갖춘 스코다파워를 자회사로 편입해 BTG(보일러-터빈-발전기) 패키지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예정이다.

두산중공업과 두산메카텍은 지난해 5월 베트남에 두산비나라는 생산공장을 준공했다.

총 3000억원이 투자된 두산비나는 자체 부두와 항만설비까지 갖췄다.
이와 함께 두산은 M&A와 같이 새로운 엔진 발굴을 통한 스피드 성장을 의미하는 비유기적(Inorganic) 성장과, 운영 효율 향상과 수익구조 개선 등 자체 역량 강화를 의미하는 유기적(Organic) 성장을 병행해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전략이다.

두산 한 관계자는 “지난 100여년 간은 기업의 생존과 성장에 주력했지만 앞으로의 100년은 새로운 기업모델을 창출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며 “국내는 물론, 해외 현지에서의 사회공헌활동을 강화해 지역주민들로부터 사랑 받는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조윤성 기자 cool@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