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 사회적 문제 대두
뚜렷한 해법 없어 심각성 가중 연이은 실패 자포자기
청년 백수 증가 연령층도 다양


서울 노량진 일부지역. 구직자와 백수, 취업자가 모이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20대 청춘, 그것도 취업난의 애환을 몸소 체험한 이들이 모여 시끌벅적 할 만도 한 데 조용하기만 하다. 모두 취업 준비의 어려움을 껴안고 있어 서로에게 말이 없다. 혼자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은 사람과 사회에 대한 경계심으로 이어지고,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취업난은 한국 경제 앞날의 또 다른 모습이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책임질 청춘을 위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할 때다.

“꿈, 목표 나 같은 사람한테 뭐가 있겠어요. (인터뷰)안 해요, 싫어요.” 봄기운이 완연했던 지난 2월 23일 저녁 무렵. 서울 노량진에서 만난 나백수(32·가명)씨는 취업 얘기를 꺼내자 손사래부터 쳤다.

아무것도 모른다며 자꾸만 자리를 피했다. 그는 마지막 이력서를 언제 넣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취업 실패에 자신감은 갈수록 떨어졌고, 취업이 남의 일이었다. 나씨는 아르바이트를 위해 자리를 뜨며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노량진 일대에느 나 같은 사람이 많아요. 한국에 살지만 한국인이 아니지요. 둘러보세요. 세상 돌아가는 것에는 관심 없어요. 취업준비, 그것도 처음에나 조금 할까? 나도 선생님을 꿈꾸며 임용고시를 준비했어요. 한번 실패하면 끝입니다, 끝. 말만 공시생, 구직자지 다 백수.”

노량진역 일대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고시촌이다. 대학 입시학원부터 행정고시학원 등 수십여 개의 학원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나씨처럼 부푼 꿈을 안고 노량진에 상경하는 인원은 매년 적게는 7000명에서 많게는 1만3000명에 이른다.

일반 공무원, 소방공무원, 경찰공무원, 임용고시 합격이 목표다. 그러나 합격자는 1% 수준에 불과하다. 나머지 99%는 또 한 번의 도전을 준비한다.

도전을 통해 합격을 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매년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기를 여러 번. 취업 자체를 포기했다고 해도 쉽사리 노량진을 떠날 수는 없다.

집으로 들어가기도, 그렇다고 취업준비를 계속 할 수도 없는 ‘청년 백수’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30대 이상 알바 병행 공시족 증가
“대인기피증이라고 알아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요. 다 똑같을 거예요. 노량진 사람 누구나. 사람이야 안 만나면 되지요.

합격해서 노량진을 떠난 사람이 술 산다고 해도 안 나가요. 혼자 사는 게 속 편해요. 왜 사람을 귀찮게 해요.”

24일 점심 무렵. 노량진 수산시장 앞 삼거리에서 어렵게 다시 만난 나씨는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휙 던졌다. 그리곤 두 번 만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혹여 봐도 아는 척도 하지 말라고 딱 잘라 말한다. 사회를 향한 불만은 가득했다. 아침부터 기다렸다고 말하는 말에 조금은 경계심이 풀어진 눈치다.

“운 좋은 줄 알아요. 다른 사람 같으면 말대꾸도 안했을 걸요. 노량진에서 취업에 대한 얘기를 하면 안 돼요. 잘돼서 떠나서 없을 테고, 남은 사람은 누군지 뻔하잖아요.

서로 조심하려고 하지요.” 곁에 있던 친구(?)가 거들었다. “그냥 말해줘. 백수생활이 어디 하루 이틀이냐.” 결론은 노량진 일대는 청년 백수가 많아 취업 얘기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매년 늘어가는 백수의 수에 자신들도 놀란다고 한다. 일부는 처음부터 취업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고, 대부분 취업에 실패하며 자포자기 한 백수들이다.

그들이 모여 있는 노량진 일대에 고시촌은 백수촌으로 변질됐고, 사회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가장 많은 곳이다.

“취업난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진짜 문제는 취업 실패로 인해 반사회자가 되거나 자포자기식 삶을 사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시회에서 취업 실패자라는 낙인 대신 따뜻한 관심이 필요한 때다.”

사회로부터 소외된 청년 백수, 이들은 ‘얼굴 없는 구직자’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회에서 이들이 설 곳은 어디에도 없다. 아들도 사회에 대한 기대를 걸지 않는다.

취업난이 심각해지면 심각 해 질수록 이 같은 ‘청년 백수’의 수는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고민을 털어 놓을 것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누군가에게 툭 터놓고 뭐라고 말하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되냐고요.

아예 다른 일을 하라고 한마디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막노동을 하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어요. 그런데 막상 말을 듣고 나면 그게 안 돼요.

고시원 방바닥을 닦다가 한참을 울었어요. 내가 꼭 실패자가 된 것 같아서. 그냥 사람도 싫고, 사회도 싫고 다 싫어요.”

취업문제가 반사회주의 의식과 대인기피증과 같은 문제의 씨앗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인력난을 호소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소개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취업난 뒷면의 문제 해결 시급
한국 경제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역군들이 쓰러지고 있다. 취업대란은 한국 경제 앞날의 또 다른 모습일지 모른다. 대책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에 대한 소개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취업을 어떻게 하라는 식의 ‘스펙을 쌓아라’는 식의 얘기는 누가 못해요. 정작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없어요.

하나 더 추가 하면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과 연결해 주는 정도가 필요 할 것 같아요. 20대부터 40때까지 청년 백수가 많아요.

40대 백수 중에는 삶을 포기한 것처럼 행동 하는 사람도 있어요. 취업난의 진짜 문제는 일자리가 없다는 것 보다 자포자기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진짜 문제일 겁니다. 저 처럼 말이지요.”

이재훈 기자 huny@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