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황금은 권력과 부를 상징했다. 고대 왕들이 자신의 우월함을 뽐내고 싶을 때, 금자수를 둔 용포를 입거나, 금 장신구를 몸에 둘렀다. 하지만 저성장, 저물가 시대에서는 황금빛도 그 찬란함을 잃은 듯하다. ‘금을 장기 보유하면 필연적으로 가격은 올라갈 것’이라는 재테크의 불문율이 깨지고, 최근에는 제 2인자의 자리에 머물던 은이 부상하고 있다. 형을 앞지른 동생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신성인 신한금융투자 이코노미스트에게 물었다.

 

 

대표적인 안전자산, 금과 은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저성장 기조, 미국의 양적완화(QE) 축소(Tapering) 우려, 중국 등 신흥국 시장(EM)의 경기 둔화 등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미국 경제지표 호조와 중동의 생산 차질 소식에 원유와 가스 등 에너지 부문은 강세를 보였으나, 안전자산인 귀금속은 글로벌 주식시장 강세와 미국의 QE 축소 우려에 하락세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주요 원자재 중 원유와 가스를 제외한 모든 품목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은 가격은 지난 5일 기준 19.57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6.3% 떨어져 주요 원자재 중 하락 폭이 가장 컸다. 금 가격도 1233.20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6.4%나 하락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최근 내년에도 금 가격 하락 추세가 이어져 현재보다 15%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비철금속도 줄줄이 하락세를 보였다. 니켈 가격이 전년 동기 대비 20.8% 떨어져 가장 많이 하락했으며, 알루미늄(-15.6%)·구리(-12.0%)·납(-11.5%)·아연(-8.9%)·주석(-3.3%) 등도 하락했다.

하지만 원유 가격은 상승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연말 대비 1배럴 당 97.38달러로 6.1% 올랐으며, 두바이유도 배럴 당 108.34달러를 기록해 지난해 동기 대비 0.5% 상승했다. 대표적인 국제 원자재 가격 지수인 로이터-제프리 CRB지수는 지난해 연말 대비 6.1%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 몰아내기 공신: 저물가·저성장+투자 수요 하락+달러 강세

이처럼 금과 은이 뒷방 신세가 된 것은 채 5년 밖에 되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채 축소 과정에서 경제 성장 둔화가 현실화 됐다. 부채 축소가 진행되며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 삼종 세트로 지칭되는 ‘뉴 노멀(New Normal)’의 시대가 열렸다. 저성장과 저물가는 전반적인 상품 수요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특히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성장 둔화는 상품의 실수요를 억눌렀다.

2010년 이후 주요 투자자산별 가격 흐름을 살펴보면, 상품 가격은 2011년 이후 하향 안정화 양상이 두드러진다. 심지어 올해 들어서는 채권에 비해서도 저조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저성장 및 저물가 기조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상품 가격이 과거와 같은 오름세로 복귀하기 어려울 것이다.

금에 대한 투자 수요의 부진과 달러화 강세도 금 가격 몰락에 일조했다. 2011년, 온스 당 2000달러에 육박하며 전성기를 맞이했던 금 가격은 1200달러 선까지 급락했다. 금은 장신구나 투자 수단 비중이 가장 큰 만큼, 다른 산업용 금속처럼 사용해서 없어지는 비중은 매우 적다. 전 세계 금 재고에서 연간 금 생산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단 2.4%에 불과하다.

금은 장신구용 수요가 54%를 차지하지만, 장신구용 수요 역시 투자 및 가치 저장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투자 수요가 거의 90%에 달한다. 금 투자 수요는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와 인플레이션 헤지용 수요의 두 가지로 나뉜다.

하지만 금융위기 위기 이후 5년 차에 접어들며 위기에 대한 우려가 잦아든 가운데 안전자산 수요는 약화된 상태다. 자금 흐름은 채권, 금·은 등 실물 수요에서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흐르는 추세이다. 선진국은 디플레이션 위험을 우려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헤지용 수요 역시 억눌리며 투자 수요가 눈에 띄게 위축됐다.

투자용 수요와 관련해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달러화 강세이다. 달러화는 글로벌 긴축통화인 만큼 통화 가치를 대변한다. 달러 공급 과잉으로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실물자산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금 가격은 상대적으로 강세 압력을 받는다. 금과 달러화는 둘 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역의 상관관계를 갖는다.

예를 들어 달러를 대량 보유하고 있던 A씨는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달러를 팔고 금을 사게 되는 식이다. 미국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임에 따라 연준의 자산 매입 규모 축소 논의가 부상하고 있다. ‘유럽이나 일본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통화정책 정상화가 선제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고조되며 달러화는 여타 통화 대비 강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달러화 강세는 금 가격 약세에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금 투자, 단기적으로 가격 횡보 예상··· 멀리 보고 투자해야

단기적으로 보면 금 투자에 대한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저물가 기조는 한 동안 금에 대한 투자 수요를 억누를 가능성이 높다.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리는 등 추가적인 통화완화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연준은 조심스럽게 자산 매입 규모를 줄이는 통화정책 정상화를 꾀하고 있다.

내년 전 세계 유동성 환경은 중립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여 금 가격 상승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연준의 자산 매입 규모 축소와 함께 달러화가 완만하게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은 점은 금 가격에는 부담 요인이다.

하지만 금 가격의 추가적인 하락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금 가격이 온스 당 1200달러 선까지 하락하며 금 매도 압력이 높아졌다. 그러나 금에 대한 실물 수요는 유지되는 모습이다. 전 세계 금 ETF의 금 보유량은 아직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으나, 감소 속도는 눈에 띄게 둔화된 모습이다.

각국의 중앙은행도 금을 지속적으로 매입하고 있다. 선진국 중앙은행의 금 보유량은 정체됐지만, 금융위기 이후 신흥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미국 달러화에 집중된 외환보유액을 다변화하기 위해 금 매입을 늘리는 것이다.

신성인 이코노믹스트는 “중앙은행들의 금 매수세가 금 가격의 추가적인 하락을 막고 있다. 단기적으로 금 가격이 오를 가능성은 없지만, 추후 인플레이션 압력이 되살아나는 시기에는 금의 매력이 부각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걸린다. 그 전까지 금 가격은 온스 당 1100~1500달러 선에서 횡보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은, 낮은 가격+산업 수요 회복 매력↑··· 가격 변동성 주의해야

동생 ‘은’은 그동안 형 ‘금’의 영광에 밀려 그늘에 머물러야 했다. 1975년 이후 금·은 가격 비율이 장기 평균은 58배 수준인데 최근에는 62배를 기록 중이다. 장기 평균 비율에 비춰볼 때 금 가격에 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평가 됐음을 의미한다.

올해 4월, 은 가격은 금 가격과 동반 급락했다. 낮은 가격은 투자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더군다나 투자용 수요가 전체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금과 달리, 은은 산업용 수요가 절반을 차지해 투자 수요가 꾸준히 유지될 것이다.

은은 열과 전기가 잘 전달되고 연성이 좋아 가공하기 좋은데다 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해 산업용으로 많이 쓰인다. 여기에 IT업종의 상승세도 은 가치 상승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2014년 세계경제가 완만한 회복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산업용 은 수요는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ETF의 금 보유량이 꾸준히 줄어든 것과 대조적으로 은 ETF의 은 보유량은 현재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투자 시 은은 가격 변동성이 높다는 점을 염두해 둬야 한다. 은 시장 규모는 금 시장의 1/18 수준으로 대규모 투자자에게 쉽게 휘둘리기 쉽다. 실제로 은은 귀금속군 중 가격 변동성이 가장 높다. 향후 은 가격은 산업 수요 회복과 저평가 매력에 힘입어 온스 당 18~27달러 사이에서 움직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