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선점한 상품 중에는 상품명 자체가 해당 제품군의 대명사로 굳어지는 경우가 있다. 아스피린이나 대일밴드, 워크맨, 포스트 잇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추가할 수 있는 것이 즉석카메라의 대명사 폴라로이드다.

아직도 사람들은 폴라로이드와 즉석카메라라는 용어를 구분 없이 쓰고 있지만 정작 폴라로이드가 즉석카메라 생산을 이미 4년 전에 중단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폴라로이드사는 디지털카메라가 급속도로 보급되자 더 이상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 지난 2006년에 개인용 즉석카메라 생산을 중단했다. 폴라로이드사는 이어 멕시코와 네덜란드 등에 있던 즉석 사진용 필름 공장도 폐쇄했다.

대신 폴라로이드사는 휴대전화와 디지털카메라용 프린터, TV, DVD 플레이어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디지털기기의 대중화라는 메가트렌드의 급물살을 정면으로 떠안은 셈이다. 이로써 폴라로이드의 즉석카메라 사업은 60여년 만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사업 중단은 어디까지나 폴라로이드의 얘기다. 폴라로이드사가 즉석카메라 사업을 정리하기 몇 해 전에 시장에 뛰어든 기업도 있다.

후발주자였던 후지필름은 즉석카메라의 대명사도 포기한 사업영역에서 트렌드를 거스르는 ‘역트렌드’ 전략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후지필름은 경쟁사가 떠난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을 뿐 아니라 시장의 규모도 꾸준히 늘려나가고 있다.

실제 후지필름의 인스탁스는 폴라로이드가 즉석카메라 사업을 중단한 2006년 45%, 이듬해인 2007년에는 30%라는 파격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

올 1월에는 론칭 10년 여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대를 돌파하는 등 후지필름 성장의 한 축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즉석카메라 시장 접수한 후지필름
《퓨처싱크》의 저자 에디 와이너는 “트렌드는 역트렌드를 낳고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트렌드 뿐 아니라 역 트렌드까지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지필름의 성공 사례는 에디 와이너의 주장에 그대로 들어맞는다.

LG경제연구원의 김영건 연구원은 아무리 강한 트렌드라도 그것이 시장을 모두 지배하는 것은 아니라며, 후지필름 성공 사례에 주목하기도 했다.

김 연구원은 “시장은 다양하고 고객의 바람은 무한하다”며 “디지털화는 거부할 수 없는 광풍이지만, 후지필름은 그에 좌절하기 보다는 아날로그의 향수를 그리워하고 디지털이 제공하지 않는 편리함을 주기 위해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을 성공의 이유로 들었다.

후지필름의 역트렌드 전략은 메가트렌드와 무조건 반대로만 가는 것은 아니다. 같은 즉석카메라이긴 하지만 폴라로이드와 인스탁스는 디자인에서부터 확연히 차이가 난다.

대부분 크고, 각지고, 무겁고, 어두운 색상의 폴라로이드와는 반대로 인스탁스는 작고, 가벼우며 컬러풀한 색상으로 디자인됐다.

인스탁스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는 ‘인스탁스 미니’ 시리즈의 경우 핑크, 블루, 오렌지 등 화려한 컬러를 자랑한다. 최근에는 주문이 늘어나면서 초코와 화이트 색상도 출시됐다.

이러한 톡톡 튀는 디자인과 색감을 바탕으로 온라인에서는 인스탁스 사용자들의 ‘튜닝’ 열풍이 불기도 했다.

젊은 여성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블로그 등에 튜닝한 인스탁스 사진을 올리면서 개성 있는 패션 아이템의 하나로 떠오른 것.

이러한 디자인의 차별화는 오히려 후지필름이 여성 소비자 공략이라는 트렌드를 잘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스탁스는 외형적으로는 아날로그 시절의 감성을 자극하면서도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렌즈 옆에 부착된 작은 거울. 바로 ‘셀프사진족’을 위한 배려였다.”

외형은 아날로그 기술은 첨단
인스탁스는 외형적으로는 아날로그 시절의 감성을 자극하면서도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렌즈 옆에 부착된 작은 거울. 바로 ‘셀프사진족’들을 위한 배려였다. 피사체와의 거리에 따라 광량을 자동으로 조절해주는 i플래시와 접사기능 역시 디지털세대 소비자들이 보다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결과물이 주는 아날로그적 만족감은 그대로 유지했다. 흰색 프레임에 빛바랜 듯 한 사진의 매력은 여전하다.

최근에 출시된 인스탁스 미니 ‘헬로키티 7S’의 인기도 대단하다. 인스탁스 100만대 돌파 기념으로 선보인 이 모델은 예약판매 이틀 만에 초도물량이 매진됐을 정도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 모델은 기존 인스탁스 미니 7S 모델에 헬로키티 디자인을 입힌 것으로 ‘헬로키티 스트랩’과 ‘헬로키티 풀박스 세트’로 구성됐다.

캐릭터 사업과의 협업이 성공을 거두자 후지플름 측은 향후 지속적으로 캐릭터 디자인을 활용한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기능은 최첨단이면서도 아날로그적 감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은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여름 출시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올림푸스의 ‘펜 시리즈’의 성공 비결도 여기에 있다.

기능을 중시해 크고 무겁게 디자인된 기존 DSLR카메라에 반해 올림푸스 펜은 작고 가벼우면서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디자인 자체는 50년 전통의 펜 시리즈를 약간 변형해 아날로그적 감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렌즈를 교환할 수 있는 첨단 시스템으로 큰 인기를 끌며 하이브리드 디지털카메라 시장의 인기를 주도했다.

이재훈 기자 huny@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