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

이코노믹 리뷰 회장

(president@asiae.co.kr)

<서기 2018년. 만인이 모두 평등해진다. 신이나 법 앞에서 모두가 같은 입장이 된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평등을 누리게 된다.

그러니 잘 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도 없어지는 세상이 된다. 이처럼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평등세상이 이루어진다. 미국은 이를 위해 헌법을 바꾼다. 평등유지 관리국 요원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이 원칙이 잘 지켜지는지를 감시한다.>

정말 재미있는 가정입니다. 소설가의 상상력은 이렇게 끝이 없나봅니다. 커트 보네거트. 그는 1961년에 쓴 단편소설 ‘해리슨 버거론’에서 이런 식으로 모두가 평등한 사회의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해서는 안 된다.”
“누구도 다른 사람들보다 멋져 보여서도 안 된다. 힘이 세거나 민첩해서도 안 된다.”
커트 보네거트가 소설 속에 그렸던 모습. 이런 세상이 과연 올 수 있을까요? 분명히 오지 않을 것입니다.

평등보다는 불평등,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개인의 경쟁력이 좌우되는 시대가 확산될 것입니다. 기업의 생존현장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갤럽에 몸을 담고 있는 로드 와그너와 제임스 하터는 ‘해리슨 버거론’같은 생각을 비판하고 있습니다.(위대한 경영의 요소-김광수 옮김) 개인의 능력이나 실적에 대한 관심과 보상을 자제하는 기업들이 의외로 많지만 이런 기업들이 진화할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닐까요?

주말에 손에 쥐어진 책 한 권이 있었습니다. ‘수도원 뜨락에서 자란 성마오로의 꿈과 소망’이었습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변변치 않았던 1960년대. 성마오로 기숙사(왜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5명의 소년들이 당시의 기억이 묻혀 지기 전에 집필한 글들이었습니다.

소중한 글 모음 속에서 시선이 멈춘 대목이 있었습니다. KT에서 새로운 둥지를 튼 석호익 부회장의 고백이었습니다.

<나는 엘리트 코스를 밟을 기회가 없었다. 가난한 농촌집안 출신에 소위 말하는 백그라운드도 없었다. 시골 중·고등학교에 지방대학졸업생이므로 흔히들 꼽는 학연, 지연, 혈연 등 어느 것 하나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심지어 체격조건조차 유리한 편은 아니다. 남들보다 더 노력했음에도 더 힘들고, 때로는 억울하다싶은 일도 겪어야 한다.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나 또한 숱한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지금 나는 정보통신회사에 승선해 새로운 항해를 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한 선택에 대해 어느 쪽이든 수월하거나 평탄한 길은 없었다. 그러나 딛고 일어서지 못할 좌절은 없었다.

지나고 보면 그 담금질은 그만큼 나를 성숙하고 깊어지게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지혜란 성공보다 실패를 극복하면서 얻을 수 있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석호익 부회장이야말로 남과 차별화되는 열등DNA를 가진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평등속에서 자신의 경쟁력DNA를 찾아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바탕으로 어떻게 꿈을 실현해 나가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지게 돼 있습니다. 도전과 열정의 꼬리표를 스스로 붙여 성공DNA를 만들어나가는 한 주되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