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20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국도요타 신차발표회에서 후노 유키토시 일본 도요타자동차 부사장(좌)과 치기라 타이조 한국 도요타자동차 사장이 '캠리 하이브리드'를 선보이고 있다.


800만대라는 사상 초유의 대규모 리콜로 일본 기업 제품에 대한 신뢰를 땅에 떨어뜨린 도요타 사태.

이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눈길이 한 곳으로 집중되고 있다. 다름 아닌 차량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는 ‘블랙박스’다.

블랙박스의 공식명칭은 이벤트기록장치(Event Data Recorder), 즉 EDR이다. 주로 차량 앞좌석 하단에 장착돼 있는 EDR은 엔진과 스피드, 결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브레이크에 관한 기록까지 모두 담고 있어 자동차 사고 원인을 가려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2월1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도요타 차량에 탑재된 EDR을 확보하려는 측과 이를 저지하려는 업체 측의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도요타 리콜 소송 관련 변호사들은 도요타 자동차의 EDR에 대한 접근권한을 얻어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이를 통해 무엇이 자동차 급발진의 원인이 됐고, 무엇이 세계적으로 수백만 대의 자동차 리콜 사태를 불러일으킨 치명적인 사망 사고를 유발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다.

현재까지 미국에서 도요타 관련 소송은 60건에 육박한다. 차량사고 관련 소송이 최소 13건 제기됐고, 리콜사태로 인한 차량 가격 하락을 배상하라는 소송도 44건 제기돼 미국 내 도요타 관련 소송은 최소 57건에 이른다.

차량 사고와 관련해 도요타를 고소한 고소인 측 변호사들은 도요타와 블랙박스 공개 여부를 놓고 씨름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도요타 측은 “오직 도요타 자동차만이 블랙박스 정보를 읽을 수 있고, 법원의 명령이나 연방정부가 법률로 강제할 경우에만 이를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소인 측에 따르면 도요타는 사건현장에서 회수한 블랙박스에 에러가 있어 사고를 재구성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타의 마이크 마이클스 대변인은 “도요타 차량에 탑재된 EDR은 아직 견본품에 불과하고, 여전히 시험단계에 있다”며 “블랙박스를 통한 사고 재구성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고 강조했다.

도요타의 이같은 태도는 제너럴모터스(GM), 포드 자동차, 크라이슬러 등 미국 3대 자동차 기업들이 사고 경위 조사를 위해 블랙박스 자료 공개 요청에 응하고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도요타 뿐 아니라 혼다, 닛산 등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모두 같은 입장이다. 블랙박스가 일부 요소만을 반영하고, 사고 몇 초 전의 기록만을 담기 때문에 이를 신뢰할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블랙박스 공개에 우호적인 편이다. 자동차기업들이 블랙박스 데이터 포맷을 전문 부품업체에게 제공하면 이들 업체들은 충돌로그(crash log)를 다운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낸다.

이 장치를 경찰과 사고 피해자 측, 보험업체들이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 블랙박스 내용이 때로는 자동차 업체 측에 불리하게 작용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동차 기업이 혐의로부터 벗어나는데 도움이 된다는 지적이다.

미국 정부는 오는 2012년 9월부터 블랙박스 기록을 차량 소유주가 이용할 수 있도록 법제화 했다. 도요타 등 일부 자동차 업체들은 금융위기와 이에 따른 경기침체를 이유로 시행을 미뤄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시아경제신문 강미현 기자 (grob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