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에서 곡소리가 들리고 있다. 연말이 다가오지만 체감경기가 좋지 않아 기업이나 가계에서 ‘죽을 맛’이라면 한숨뿐이다. 뉴스를 보면 경제지표는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미국과 유럽 경제가 개선되면서 수출이 호조라고 한다. 가계소비심리도 나아져 내수가 살아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21일부터 전기료를 평균 5.4%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1월에 이어 10개월 만의 요금 인상이다. 정부는 “값싼 전기료 때문에 전력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요금을 올려 전력 수요와 공급을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논리는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전력 수요도 정부의 엉터리 수요 예측이 빚어낸 결과이며 시험성적서 위조와 불량 케이블 문제로 원전 가동이 줄줄이 중단돼 대정전(블랙아웃) 공포에 시달린 게 불과 몇 달 전 일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급해진 전력수급 문제를 국민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이번 인상으로 일반 가정에서는 매달 1300원의 요금을 더 내게 생겼다. 지난 분기 물가를 반영한 가계 실질소비지출이 마이너스 0.4%로 4분기 연속 감소하는 상황에서 전기요금 인상은 살림살이를 더 팍팍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번 겨울에는 급심한 한파가 예상된다. 밖에서 고생하는 직장인과 공부하기 바쁜 학생들이 그마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 집인데, 전기료 인상으로 마음 놓고 전열기구도 사용하지 못할 것 같아 올겨울은 유난히 추울 것이라는 볼멘소리가 높다.

기업들도 걱정이다. 이번 전기요금 조정은 산업·상업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들 2개 업종은 각각 6.4%와 5.8%씩 대폭 올랐다. 특히 산업용 전기요금은 2011년 8월 이후 2년 3개월 동안 모두 5차례 인상됐다. 누적 인상률은 33%에 달한다. 그간 정부는 산업지원정책 탓에 생산원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요금을 기업들이 냈다고 주장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제조업 육성을 위해 전기료 등을 정부지원하에 보조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에너지 효율성도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전력 공급의 불안은 당국과 한전 책임이 크다는 것은 지난여름에 다 밝혀졌다.  하지만 정부는 딴소리만 하고 있다.

이번 요금 인상으로 철강과 석유화학 등 전기사용 비중이 높은 기간산업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들 업종과 연관된 자동차와 조선산업, 전자업종 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국내기업 한 관계자는 “시간대별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 개편으로 체감 인상율은 8%에 육박한다”며 “환율과 불확실성 등 글로벌 경제 탓에 영업이익 등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연간 10%에 가까운 전기료 인상은 죽으란 소리”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환율도 걱정이다. 지난 6월 말 대비 10월 말 원화 절상 폭은 8.3%로, 올 하반기 세계 주요 통화 중 두 번째로 높았다. 특히 실질실효환율은 5.2%로 국제결제은행(BIS) 추계 대상 61개 통화 중 절상 폭이 가장 컸다. 명목실효환율도 5.4%로 올라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이처럼 원화가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경상수지 흑자가 수출입이 모두 감소하면서 나타나는 ‘불황형 흑자’라는 점이다. LG경제연구소에 따르면 10월 무역수지가 수입보다 수출이 많은 ‘불황형 흑자’라는 점에서 1980년대 후반 일본과 유사하다. 실제 올해 들어 9개월간의 경상수지 흑자는 487억9000만달러로, 전년 동기의 1.7배에 달한다. 하지만 수출이 463억10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7% 줄어든 데 비해 수입은 406억1000만달러로 3.5% 감소한 데 따른 것이다. 즉 기업들의 수출이 줄었지만 수입이 더 감소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에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설비투자 등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으면서 수출은 사실상 제자리인데 수입은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의 원화절상 추세는 한국의 실물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과거보다 더 클 것으로 전망했다. 신 연구원은 “과거 ‘3저 호황’ 시기와 2003~2007년의 ‘골디락스’  시기 등 원화가 급속히 절상됐던 시기는 세계적으로도 호황이 이어져 큰 문제가 없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저성장으로 한국 상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있어 문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계속되는 1%대의 소비자물가상승률도 문제다. 기본적으로 수출과 수입이 모두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낮은 물가상승률은 디플레이션이나 경기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 실제 통화정책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물가가 2.5% 수준으로 상승해야 하는데, 최근 물가 흐름은 경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