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업계, 소비자 배려는 어디에|아줌마들의 뼈 있는 수다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매달 최대 50% 세일, 고가 화장품 브랜드와 다를 게 없는 기능과 디자인을 갖췄다는 로드숍 제품들이 다양한 마케팅과 광고로 소비자 유혹에 나서고 있다. 불황기에 저렴한 가격에 ‘혹’한 소비자, 로드숍 매장에 들러 지갑을 여는 데 익숙해졌다. 그러는 사이, 부작용이 생겨도 기업이 이에 대해 확실한 대처 매뉴얼과 인력을 갖추고 있는지 모르겠고 중저가 제품이라고 하기엔 가격도 많이 상승했다.

# 회사원 A씨(28세)는 지난 6월 여름 시즌을 맞아 최대 50% 세일 중이라는 E사에서 새롭게 출시된 모공 케어 제품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샀다. 평소 로드숍에서는 색조 화장품 위주로 구입해왔지만, 새롭게 출시된 제품이라는 선전에 ‘저렴하니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구입 완료. 그런데 며칠 써보니 모공 속 피지를 빼주기는커녕 붉게 달아오른 피부에는 뾰루지가 3~4개씩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사용을 중단하고 피부과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회사 소비자상담실로 전화를 해봤다. 트러블의 원인을 파악해야 하니 객관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진단서가 필요하다는 등 과정이 참 복잡해 보인다. ‘1만원대 저렴하게 산 제품이니까’라는 생각에 골치를 썩느니 관두기로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불쾌하다. 제품을 살 때는 카드 결제만 하면 1초 만에 끝나는 일인데, 문제를 제기하게 되니 과정이 참 길다 길어.

예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모델들이 반짝이는 피부를 과시하는 광고를 볼 때면 ‘이 제품 꼭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름답게 혹은 멋지게 보이고 싶은 소비자의 심리다. 그러나 화장품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제품을 사용하고 나서 뾰루지와 같은 부작용이 일어나 곤란했던 적이 있다는 소비자의 불만사항도 종종 들려온다. 소비자들은 화장품을 구매할 때 어떤 점을 우려할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녹색소비자연대와 함께 전국 15세 이상 1498명(여성: 1000명, 남성: 49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화장품 구매 시 가장 많이 우려하는 사항으로 여성, 남성 모두 이상반응 발생(여성 71%, 남성 78%), 성분의 안전성(여성 67%, 남성 64%)을 꼽았다. 그 밖에 기능성에 대한 허위·과대광고(여성 66%, 남성 54%), 반품 등 거래와 관련된 소비자 문제(여성 57%, 남성 59%)가 뒤를 이었다.

실제 이상반응으로는 여성, 남성 모두 가려움(여성 25%, 남성 27%), 따가움·화끈거림(여성 25%, 남성 28%)이 많이 발생했으며, 특히 여성의 경우 여드름과 붉은 반점(각각 14%), 남성은 붉은 반점(16%)의 피부 트러블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관련 식약처 관계자는 “소비자는 안전한 화장품 사용을 위해 스스로 표시사항 등의 제품정보를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근에는 로드숍 브랜드가 합리적인 가격대와 접근성으로 소비자들이 화장품을 구매하는 유통 채널의 변화를 가져왔다. 모바일 리서치 오픈서베이가 전국의 20·30대 여성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여성의 95.2%가 화장품 구매 시 로드숍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장품 구매 채널로 로드숍을 주로 이용한다는 응답도 41.6%에 달했다. 해당 로드숍 브랜드 매장을 이용하는 이유로 ‘합리적인 가격’(41.9%), ‘브랜드에 대한 좋은 인식’(33.5%), ‘접근성’(12.8%)을 차례로 꼽았다.

이처럼 로드숍 브랜드 제품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관련 기업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화장품을 구매한 소비자에게 부작용과 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대처 매뉴얼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기업별 부작용 대처 매뉴얼 ‘존재하나’

LG생활건강의 계열사인 더페이스샵은 고객 불만에 대한 대응체계 표준화, 내·외부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소비자 특성과 패턴을 효율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소비자 불만처리 업무를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5명으로 구성된 ‘소비자지원파트’에서는 매뉴얼 관리 및 고객 응대 과정을 내부적으로 공유하고 있지만, 관련 내용은 공개가 불가하다고 한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팀 내부적으로 응대 매뉴얼에 따라 제품, 서비스, 매장으로 나눠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고객에 따라 다양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원인을 규명해서 제품이나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니스프리는 ‘고객상담파트’라는 별도의 부서가 있지만, 상담 인원 및 규모에 대해서는 답변을 들을 수가 없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소비자 분쟁신고와 관련해서는 기본적으로 한국소비자원에 공시된 법령에 의거, 그 기준과 절차에 따르고자 하고 있으며 소비자원에 게시된 피해구제사례 등을 참고로 하고 있다. 부작용 사례가 발생하는 경우가 생기면 소비자와 직접 협의하거나 소비자원의 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하는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쳐 소비자의 불편사항을 최대한 보상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소비자에게 발생한 트러블 등의 문제가 접수될 경우, 응급조치 방법을 충분히 설명하거나 병원 내방을 안내하고 있으며, 진료비 및 약제비는 의료보험이 적용된 내에서 증빙 자료 제출 시 보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회사는 고객상담실과 페이스북을 통해 실시간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스킨푸드는 소비자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시, 한국소비자원의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의거해 내부 C/S 부서 ‘고객상담센터’에서 3명의 직원이 응대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기획, 제조, 출시 단계에서 사전 테스트를 운영해 부작용 문제를 최소화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는 ‘고객만족팀’이 있다는 것 외에 규모나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게시판이 세분화돼 있는 온라인 뷰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부적으로 집계된 부작용 상담 건수에 대해서는 더페이스샵, 이니스프리, 네이처리퍼블릭, 에뛰드하우스, 스킨푸드, 미샤 등 모든 브랜드가 대외비라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회사들이 대외비라는 명목하에 부작용 건수나 소비자 불만 사항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공개하기를 꺼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은 화장품 제조판매업자가 정부에 부작용을 보고하고 필요시 판매정지, 회수, 폐기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유럽도 올해부터 화장품 제조사가 부작용을 보고하도록 됐다”며 “우리나라에도 필요한 조치”라고 덧붙였다.

미투 마케팅에 가격 올리기까지 ‘과대광고에 씁쓸’

“SK-II 저렴이, 에스티로더 저렴이 구입했어요!”

온라인 포털 사이트에서 ‘저렴이’라는 키워드만 검색해도 볼 수 있는 문구다. 여기서 말하는 ‘저렴이’는 고가의 수입 화장품과 기능, 디자인 등이 비슷한 국내 로드숍 제품으로, 경쟁사의 주력 제품을 모방한 유사상품을 의미하는 ‘미투(me-too) 마케팅’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첫 시작은 ‘값비싼 수입화장품에 의존하지 않도록’이라는 카피를 내세운 미샤였다. SK-II의 ‘페이셜 트리트먼트 에센스(19만9000원)’와 내용물과 패키지가 유사한 ‘타임 레볼루션 더 퍼스트 트리트먼트 에센스(5만2800원)’를 내놨고, 에스티로더의 ‘어드밴스드 나이트 리페어(15만원)’는 미샤에서 ‘뉴 사이언스 액티베이터 앰플(4만2000원)’이라는 비슷한 모양의 제품으로 나왔다.

미샤가 출시한 유사상품이 히트를 치자, 이니스프리, 더페이스샵, 네이처리퍼블릭, 토니모리도 비슷한 제품을 내놓으며 후발주자로 나섰다. 네이처리퍼블릭은 미샤 제품보다 50%가량 저렴한 ‘더 퍼스트 넘버원 에센스(2만2000원)’를 출시했고, 토니모리는 SK-II와 동일한 원료와 콘셉트로 ‘인텐스케어 갈락토미세스 퍼스트 에센스(3만8000원)’를 내놨다. 최근에는 메이크업 기초제품으로 CC크림이 좋은 반응을 얻자, 모든 로드숍 브랜드에서 CC크림을 살 수 있게 됐다. 누가 원조인지는 알 길이 없다.

업계 관계자는 “시즌마다 수많은 제품이 쏟아지는 화장품 시장에서 완전히 새로운 콘셉트의 제품을 찾기는 어렵다”며 “그러나 대놓고 베끼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기업의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경기 불황 때문에 효과가 비슷하다면 더 저렴한 제품을 선택하려고 하는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화장품 연구개발에 막대한 투자비용을 쏟는 기업 입장에서 미투 마케팅 트렌드가 지속된다면, 결국 화장품 산업의 전체적인 퇴보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저렴이 화장품의 시작은 정말 저렴했다. 미샤는 2000년 당시 ‘전 제품 3300원’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출발했다. 고가의 제품이라도 만원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미샤가 출시한 에센스는 4만2000원. 토니모리, 더페이스샵, 스킨푸드, 에뛰드하우스 등도 기능성 라인을 출시하면서 2만~4만원대부터 고가는 6만원 이상의 제품도 내놔 소비자 입장에서는 더는 중저가 브랜드가 아니라는 인식이 든다.

최근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미백 기능성 화장품 제품의 가격이 일반형 대비 최대 4배 가까이 비싸지만 성분 함량은 동일하다. 미백 기능성 화장품 15개 브랜드 28종을 대상으로 미백 기능성과 살균보존제 함량 등을 시험하고 알레르기 유발 물질 사용 여부 등을 비교 평가한 결과, 미백 기능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프리미엄형 제품’과 ‘일반형 제품’ 의 미백 기능 성분 함유량은 동일한 반면 프리미엄 제품 가격이 최소 1.2배~3.8배 비싸게 책정된 것. 네이처리퍼블릭의 일반형 미백 기능성 화장품 ‘더 퍼스트 넘버원 에센스’와 프리미엄형 ‘더 퍼스트 앰플 에센스’의 미백 기능 성분인 나이아신아마미드 함량은 동일한 반면 가격은 4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스킨푸드는 프리미엄 제품을 일반 제품에 비해 2.5배, 토니모리는 1.8배 가량 비싸게 책정했다.

한국소비자원은 “프리미엄은 스팟, 고농축, 집중케어 등으로 광고·표시문구 등을 삽입해 일반형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가에 팔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드숍 세일 증후군 ‘너 도대체 얼마니?’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미샤, 더페이스샵, 이니스프리, 에뛰드, 네이처리퍼블릭 등 주요 로드숍 브랜드는 너 나 할 것 없이 가격 할인을 외치고 경쟁적으로 점포를 새로 내면서 덩치를 키우는 데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일 일수를 늘림에 따라 영업이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을 터. 아울러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로드숍 화장품 가격이 도대체 얼마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으로 신뢰마저 잃는 모양새다.

앞서 언급한 주요 5개 브랜드별 세일 절대일수를 다 더한 방식으로 합산해보면, 지난 2분기에 월평균 29일 동안 세일을 진행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같은 방식으로 집계할 경우 2010년 월평균 5일, 2011년 9일, 2012년 20일과 비교할 때 세일 일수가 급증한 셈이다. 할인율도 10~20%에서 40~50%까지 상승했다.

에뛰드하우스는 올해 1월에는 ‘뉴 이어스 파티’라는 이름을 내세워 할인 행사를 했으며, 6월에는 여름을 겨냥한 ‘서머 파티’, 가을에는 ‘핑크빛 가을 로맨스’ 등 다양한 명목을 앞세워 세일에 동참했다. 1월부터 11월까지 세일을 진행하지 않은 달이 없었다. 미샤, 토니모리, 이니스프리, 더페이스샵, 네이처리퍼블릭, 더샘, 홀리카 홀리카 등의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스킨푸드가 유일하게 ‘노세일’ 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투 마케팅에 이어 이번에도 미샤가 첫 주자였다. 2007년, 미샤데이로 로드숍 세일 전쟁을 시작한 것. 올 들어서부터는 전 품목 최대 50% 세일에서 1+1 묶음 판매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자가 지갑을 열게 하고 있다. 인터넷에는 각 로드숍의 세일 일자를 기록한 ‘로드숍 세일 달력’까지 등장했다.

로드숍 브랜드 제품을 자주 구매한다는 한 여대생은 “세일 기간에 구입하지 않는 소비자는 일명 ‘호갱(호구 고객)’”이라며 “신상이라도 제값을 주고 살 필요가 없는 게 로드숍 제품”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00데이 혹은 1+1 마케팅이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데 좋은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그러나 여기에 현혹돼 사재기를 하는 현상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