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을 사고팔거나 부동산을 이용해 건물을 짓고, 임차인과 계약하거나 대출을 받는 등 다양한 부동산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부동산의 적정 시장가격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가격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역시 해당 부동산의 가치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부동산을 평가하는 일의 대부분은 그 부동산의 시장 가치를 추계하는 데서 시작한다.

경제학에서는 가격이란 가치를 화폐액으로 표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가치와 가격은 관념상의 차이일 뿐 사실상 일치하는 것으로 본다. 물론 화폐는 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하지만 Irving Fisher는 ‘가치란 장래 기대되는 편익을 현재 가치로 환원한 값’이라고 정의했고, 이때 장래 기대되는 편익에는 단순히 금전적인 것만이 아니라 비금전적인 것도 포함되므로 장기간에 걸쳐 효용을 제공하는 부동산에서는 경제학적 의미보다는 가격과 가치의 뚜렷한 차이를 인식하면서 접근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고 부동산학에서도 그런 관점에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부동산 가치에 영향을 주는 것들은 무수히 많다. 큰 틀에서 보면 부동산 가치를 발생시키는 요인들과 부동산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로 나누어 검토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부동산 가치를 발생시키는 요인에는 효용, 희소성, 유효수요, 이전성 등이 있으며 부동산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는 사회적 요인, 경제적 요인, 행정적 요인, 환경적 요인이 있다. 최근에는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와 같은 비교적 단순한 가치 측정 카테고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또 한 가지 부동산 가치 측정 기준이 있다. 부동산의 가치가 시장에서 어떻게 결정되는가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부동산 평가 원리(appraisal principle)’가 그것이다. 미국의 Appraisal Institute가 채택한 이 평가 원리에는 현재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많은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들이 간과하거나 놓치고 있는 중요한 시사점들이 들어 있다. 열 가지로 나눠보자.

첫째, 예상의 원리란 부동산의 가치는 과거나 현재의 이용 상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이용될 것인가에 대한 예상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현재 일정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토지보다 아무런 수익도 창출하지 못하는 토지의 가격이 오히려 더 높은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그 토지가 현재는 소득을 발생시키지 못하지만 미래의 어느 시기에는 훨씬 많은 소득을 창출할 것이라는 예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낡고 좁은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의 인기나, 교통망과 기반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신도시의 택지 등에 투자자가 몰리는 것은 바로 이런 예상의 원리 때문이다. 주택 시장 위축과 집값 하락 예상으로 수도권 아파트 미분양이 쌓이고 있는 것은 반대 측면에서 바라본 예상의 원리이다.

둘째, 부동산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경제적, 행정적, 환경적 요인은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이를 변동의 원리라 한다. 우리는 부동산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현재나 가까운 미래에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그 변화 과정이 비교적 점진적인 것이라면 과거의 통계나 사례에 근거해 판단할 수 있겠지만 매일매일을 기준으로 바뀔 정도로 급격하다면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정보 중 상당수가 부동산의 시세 변화, 정부 정책, 개발 계획 등을 다루고 있는 것은 그만큼 시장의 변화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최근 취득세ㆍ양도세 인하 논란, 부동산 상한제 폐지 논란, 행복주택 논란 등 갖가지 시장 이슈가 터져 나온 것도 주택 시장이 매우 불투명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시장의 수요와 공급은 부동산의 가치 결정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부동산은 평가의 대상과 유형, 지역에 따라 각각의 수요와 공급 원리가 표출되는 시장 양상을 나타낸다. 2011년과 2012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수도권 오피스텔 시장이 최근 급격하게 얼어붙은 것도 수익형 부동산 열기에 힘입어 공급 물량이 일시에 늘어나면서 수요가 소진돼 가격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세종시나 위례신도시처럼 인기 신도시의 아파트 청약 열기는 뜨겁다.

이처럼 주거용 부동산 시장, 수익형 부동산 시장, 업무용 부동산 시장 등 개별 부동산 유형에 따라 어떤 것은 수요 초과 상태에 있는데 어떤 것은 공급 초과로 하강 국면에 접어들기도 한다. 같은 주거용 부동산도 지역이나 유형에 따라 다른 수요/공급 양상을 보일 수 있다. 이를테면 최근 중대형 아파트는 시들하지만 소형 아파트나 펜트하우스가 인기를 끄는 것과 같다. 따라서 어떤 전문가가 부동산 시장을 전망할 때에도 전체 시장을 놓고 수요와 공급 원칙을 대입시켜야 하며 국지적이거나 한두 가지 사례만 놓고 확대 해석해 견해를 피력하는 것은 위험하다.

넷째, 수익형 부동산의 가치를 평가할 때는 특히 경쟁의 원리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정해진 기간 동안 일정한 임대 수익을 발생시키는 수익형 부동산이 어떤 지역에 최초로 들어서게 되면 독점 이윤이 발생한다. 이것은 초기에 매우 높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부동산이든 장기적으로는 경쟁이 생기기 마련이다. 따라서 현재 발생하고 있는 이윤, 즉 임대 수익이 일시적일 것인지 아니면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될 것인지를 검토해야 한다. 올해 수익률 하락으로 참패를 맛본 도시형 생활주택의 경우에도 일시적인 초과 이윤을 장래에도 지속될 것으로 잘못 판단해 그것의 가치를 실제 이상으로 과대평가한 결과였다.

다섯째, 대체의 원리란 특정한 부동산 가치가 그것과 대체 관계에 있는 다른 많은 부동산의 영향을 받아 결정된다는 원리이다. 어떤 아파트의 가치가 5억원이라면 그것은 그보다 조금 못한 인근 아파트가 4억5000만원에, 조금 나은 아파트는 5억5000만원에 거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라고 해도 서울과 제주의 아파트는 전혀 대체성이 없다. 하지만 왕십리 뉴타운에 지어지는 모든 아파트는 동일한 부분 시장에 있기 때문에 서로의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주게 된다.

많은 부동산 전문가가 서울, 수도권 주택 시장만을 자료로 삼아 부동산 시장을 전망한다. 하지만 부분 시장을 놓고 전체 시장을 평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이를 극단적인 시장 낙관론을 펼치는 근거로 사용할 경우 왜곡된 시각을 불러올 수도 있어 경계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기회비용이란 어떤 대안을 선택함으로써 선택되지 않은 다른 기회를 희생한 대가다. 투자자는 주어진 조건 아래 최대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처에 자금을 투입한다. 투자자가 다른 곳에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수익률, 즉 기회 비용을 요구수익률이라 하는데 요구수익률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투자를 결정하지 않게 된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는 금융 이자를 기대할 수 있는 은행권에 자금을 전부 넣어두지 않을 것이다. 한편, 연 수익률 8%를 내세우는 제주도의 수익형 숙박시설 분양홍보관에는 투자자의 긴 줄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때 현명한 투자자라면 본인이 투자하려고 하는 부동산의 적정 지불 가격을 결정할 때 그것이 제공하는 효용 및 임대 수익과 차선의 기회가 제공하는 그것을 비교해 투자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일곱째, 어떤 부동산이 최고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투입되는 생산 요소의 비율이 적절한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 균형의 원리다. 서민 아파트 단지에 초호화 옥외 수영장을 설치한다면 그 아파트의 가격은 얼마나 상승할까? 일부분 오를 수는 있어도 아마 투자한 비용만큼의 상승이 이뤄질 수는 없을 것이다. 유지관리비 부담으로 오히려 하락해버릴지도 모른다. 이처럼 부동산의 규모, 시설, 공간, 면적 비율 등은 모두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충분한 주차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도시형 생활주택의 수익률이 비슷한 주거용 수익형 부동산인 오피스텔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현상, 모든 점포를 1층에 집중 배치해 고객의 집객성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설계된 ‘스트리트형 상가’가 높은 임대료와 주민 편의 업종의 입점 실패로 공실 상가로 전락하는 현상이 바로 균형의 원리를 충족하지 못한 데서 기인하고 있다.

여덟째, 부동산의 가치가 외부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논리를 외부성의 원리라고 한다. 부동산 이론에서는 외부적 요인이 특정한 부동산의 가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를 외부경제, 부정적 효과를 미칠 경우 외부불경제라고 한다. 외부성 문제는 국가적, 지역적, 지역사회적, 근린적 수준으로 세분화해 검토할 수 있다.

정부 정책은 대표적인 외부경제 혹은 불경제 유발 요인이다. 지역 혹은 지역사회적 수준에서 보면 인구 이동, 대기업 이전, 지역지구제 변화, 지하철 개통 등이 있다. 부동산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외부성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지난 4.1 종합대책 이후 발표된 수도권 주택 공급 조절 방안은 수도권 아파트 공급량을 줄임으로써 신규 아파트 분양을 촉진하고 집값 하락을 막아 외부불경제를 초래하는 요인을 최대한 제거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홉째, 부동산은 많은 구성 요소가 모여 만들어진 복합상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같은 자동차라도 옵션을 얼마나 장착했는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것처럼 부동산 가치에도 많은 구성 부분이 영향을 미친다. 이를 기여의 원리라고 한다. 주택의 경우 주거 환경, 교통 여건 등이 주로 영향을 미치며 상업용 부동산은 접근성, 배후 수요, 노출성 등이 가치를 높이거나 떨어뜨리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다.

업무용 빌딩의 경우 전체 면적과 도심 접근성 등이 중요하다. 15년 이상 된 아파트에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허용하면 세대수가 늘어나면서 가구당 부담금이 줄어들고 주택 가격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안전 문제 등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처럼 부동산 가치에 기여하는 요소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며 투자 가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끝으로 잉여생산성의 원리, 적합의 원리 등 부동산의 평가 원리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최근 주택 시장과 그 밖의 부동산 시장 흐름을 보면 모든 기준이 시세가 오르고 내리는 데 맞춰져 있는 듯하고 투자자들 역시 가격에 대한 평가 의존도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격을 정하기 이전에 그 가격에 영향을 주는 가치 평가 원리를 잘 이해한다면 여러 가지의 부동산 행위를 하는 데 훨씬 더 정확한 접근과 결정이 가능해질 것이다. 단지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 내렸다는 단순 통계 지표를 가지고 부동산 시장이 좋아진다, 나빠진다는 식의 단순한 논리를 펴는 일부 부동산 전문가의 장단에 업계와 시장 전체가 춤추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안민석 riomanjun@hanmail.net 전 한국경제신문 전국상권대해부 및 자영업컨설팅 자문위원, MBN ‘생방송부동산’ 및 MTN ‘부자들의 비밀노트’ 출연, 현 에프알인베스트먼트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