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구를)막 치고 패다 보면 예전에 아버지가 환갑잔치 때 흥겹게 어깨춤을 추시던 기억이 나요. 사물놀이 하는 게 바로 그런 '흥'이에요.

'재미있다'고 생각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눈 감고 고개도 흔들어 지더라고요. 악보조차도 없으니 집중해서 두들기다 보면 2시간이 후딱 갑니다.(웃음)"

지난 2월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학동역 인근 바스타워 빌딩 지하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김밥과 한과를 들며 정담을 주고받는 모습이 오랜만에 열린 초등학교 동창회 분위기다. 하지만 나이 차이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도 꽤나 섞여 있었다.

잠시 고개를 옆으로 돌렸더니 하얀 칠판 앞에 줄지어 서 있는 장구가 눈에 들어왔다. 이들이 모인 이유를 확실히 알게 해줬다.

'장구'명상으로 인격수양
그렇다. 이들은 '사물놀이패'다. 그런데 10여명 멤버들이 전부다 CEO들이다. 국악과 출신 강사를 모시고 매주 월요일 저녁 7시면 어김없이 이 자리에 모여 열심히 두들긴다. 이들 가운데 박칠구 지비스타일 대표도 있었다.

기자를 대하는 온화한 미소가 인상적이다. "어서 오이소. (장구 모임)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오셨소"라며 구수한 사투리까지 곁들여서 영락없이 인심 좋은 시골 삼촌이다.

첫 마디부터 풍물패 자랑이다. 10여명 되는 중소기업 CEO멤버들을 일일이 소개시켜주며 하루하루 생존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는 CEO들이지만 장구 명상으로 인격수양을 하고 있다며 치켜세운다.

이날 비즈니스 일정으로 모임에 결석한 한 CEO의 문자메시지를 보여주며 "출석하려는 열성이 이 정도"라며 멤버들 간의 돈독한 '정'을 은근히 자랑 삼는다. 일단 이름부터가 재밌다. 치고 패고 한다고 해서 '칠구패'란다.

이 역시 박 대표가 칠구라는 자신의 이름을 본 떠 제안한 것이란다. 기발하다고 여긴 멤버들이 단장자리까지 맞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시무식서 장구실력 뽐내기도
하지만 담소 나누던 것도 잠시. CEO 멤버들이 모두 풍물패 단복으로 갈아입고 장구채를 손에 잡아 쥐더니 강사의 '시작' 멘트와 함께 신나게 들고 패기 시작한다.

덩덩쿵 따다궁, 덩덩쿵 따다쿵. 장구 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하지만 장단 속도가 잦아지면서 “얼씨구, 절씨구, 허이” 하며 섞이는 추임새가 흥을 돋우며 분위기가 고조된다. 하지만 이들은 본격적인 사물놀이를 배우기에 앞서 아직 기초를 닦고 있는 단계란다.

아직 초보 장단을 익히고 있지만 눈빛만큼은 매섭고 진지하다. 그 가운데 가장 앞자리에서 진지하면서도 흥겹게 몸짓과 장단을 익히고 있는 사람이 바로 박 대표다.

재미도 재미지만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쇠자리를 꿰차려면 실력을 갈고 닦아야 한단다. 그래서 요즘에는 장구를 집에까지 들고 가서 짬짬이 연습하고 있다.

최근에는 직원들 앞에서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올해 초 전 직원들과 함께 간 제주도 시무식에서 장구 솜씨를 선보인 것이다.

사물놀이라는 게 멤버들 간 호흡이 가장 중요하듯 '협업'이라는 의미를 강조해 주고 싶었다. "사물놀이 기본적으로 장단이 맞아야 하거든요.

악단에서 어느 한명이 '삑'하고 튀어버리면 망쳐버리 듯 기업에서도 어느 한명이 잘 났다고 나서면 갈등만 빚어지게 되거든요. 또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CEO가 솔선수범해야 따라들 오지 않겠어요."

목표 달성을 위해 직원들이 최고경영자(CEO)에게 힘을 집중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CEO비전에 동참해 줘야한다는 것 이지요.

특히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켜줘야 합니다. 몸 따로 마음 따로면 곤란하지요. 저도 마음을 비우고 상대방을 칭찬해 주니 인격수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순수 국내 브랜드·디자인 고집
그가 사물놀이를 사랑해서 일까. 사업에서도 그는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첫 시작은 아이들 속옷에 미키마우스 캐릭터를 프린트해 팔기 시작한 것이 돈이 됐다.

지난 1992년 당시 그의 딸들이 디즈니 만화에 심취하는 것을 보고 "이거다" 싶어 만든 것이 '미키패밀리' 브랜드였다. 미국 디즈니 본사에 로열티까지 주며 시작한 사업이 성공가도를 달렸지만 국내 대기업에 라이선스 권을 빼앗기며 그는 최대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역시 위기는 기회였다.

자체 브랜드가 없으면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고 깨달은 박 대표가 순수 우리 브랜드 '무냐무냐'로 재기의 발판을 삼는다. 게다가 마침 터진 외환위기는 그를 지옥에서 천당으로 인도해 주었다.

당시 국산품을 쓰자는 운동이 전개되며 매출이 급증하는 데다 웬만한 외국 브랜드들도 고환율을 견디지 못하고 퇴출됐다. 그는 비어가는 백화점 점포자리를 꿰차고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 매출이 30%이상씩 신장, 올해 400억 원 매출 목표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박 대표는 내다보고 있다. 이런 성공 비결에 대해 그는 제품력과 디자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먹어도 될 정도로 천연 목화를 원단으로 제작을 하는 데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독창적인 디자인은 지비스타일만의 강점이다.

이는 아버지 대부터 물려받은 속옷 사업이라는 가업이 장인정신으로 이어진 결과이기도하다. 지난 1990년대 어려웠던 시절에도 디자인연구실을 운영하며 노하우를 축적한 것도 지금에서 천군만마가 되고 있다.

그는 친환경 먹을거리 사업에 관심이 많다. 지금까지는 옷에 집중 했다면 먹는 사업은 새로운 엔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바른 먹거리 문화를 만들어 출산율도 높이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워보다는 의도다.

이를 위해 지난해 5월 농사법인을 만들어 계열사로 편입했다. 박 대표는 "브라질에서 유기농 목화를 재배하기 위해 사업을 준비 중"이라며 "먹어도 전혀 해가 없는 원단을 만들어 패션업계 친환경 바람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배 기자 sbki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