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사람치고 비좁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녹초가 안 돼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숨쉬기조차 버겁고 엉거주춤 서있는 자세마저도 바꾸기 힘든 그 상황에서 한 두 시간도 견디기 힘들다. 이런 고생을 하루나 이틀 꼬박 해야 한다면 정신이 아찔할 것이다.

중국에선 이런 일이 고향 길을 찾는 구정 춘절(春節)에 어김없이 벌어진다.
대륙을 횡단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보니 서울에서 부산 거리의 열 곱절을 가야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기차로 꼬박 이틀을 간 뒤 다시 버스를 이용해 고향 산골을 찾아들어가려면 총 사나흘은 넉넉히 걸린다. 귀향민과 보따리짐으로 가득 찬 기차와 버스에서 볼일도 꾹 참으면서 사나흘을 견뎌야 한다고 상상해보라.

구정을 앞두고 중국에는 쿵구이주(恐歸族)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쿵구이주란 명절 때 귀향이 두려운 사람들을 말한다.

한국에선 온갖 잔소리가 귀찮은 노총각·노처녀나 청년실업자가 이에 해당되겠지만 중국의 쿵구이주는 고향길이 너무 멀고 험해 귀향을 거부하는 부류를 일컫는다.

고향 사람들을 만나서도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은 더더욱 쿵구이주가 되기 쉽다.

농민공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면서 신세대 사이에선 고향에 대한 애착도 줄어들어 이같은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에서 회사를 다니는 장(張)씨는 고향이 북쪽의 헤이룽장(黑龍江)성이다.

구정 때만 되면 그는 고향가는 악몽을 꾸며 잠을 설칠 정도란다. 이번에 ‘차표 구하기 전쟁’에서 탈락한 그는 하얼빈(哈爾濱) 직행열차표를 구하지 못했다.

중간지점인 랴오닝(遼寧)성 선양(沈陽)에서 차를 갈아타야 하는 그는 귀향길 인파에 휩쓸릴 생각에 몸서리가 쳐진다. 콩나물시루 열차에 몸을 실어 지난에서 선양을 거쳐 하얼빈에서 내린 뒤 고향 시골 행 버스를 타야 한다.

그는 주위에서 먹는 컵라면 냄새와 옆 사람에게서 쉴 새 없이 풍기는 발 냄새에 차멀미까지 감수해야 한다.

고향 사람한테 해야 할 인사가 부담스러워 쿵구이주를 선택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도시에서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다 고향에 내려가 전통의식에 따라 하루 종일 주변 어른과 친지한테 인사하러 돌아다니는 것이 고역일 게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뒤 주차직원으로 취직한 후(胡)씨는 박봉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리기 싫어 고향에 가지 않기로 했다.

그는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 실망하실 것이 뻔한데 대학까지 보내기 위해 고생한 부모님을 실망시키기 싫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귀향길이 힘들고 쿵구이주가 생겨나도 올해도 춘절은 찾아온다. 이미 인구의 대이동은 지난 1월 말부터 시작됐다.

구정 휴일이 사흘인 우리와 달리 중국에선 공식휴일만 7일에 달한다. 구정을 사이에 끼고 앞뒤 보름간은 회사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중국에선 상식으로 통한다.

올해 이동 인구는 25억 명으로 지난해보다 10% 가량 더 늘어날 전망이다. 농민공 등 외지인들이 집중된 베이징·상하이·광저우(廣州) 등 대형도시 기차역 직원들은 지난달 말부터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사재기가 판을 치면서 차표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 수준에 이르자 철도 당국은 개인 주민등록번호로 차표를 구입하는 제도를 도입했지만 역부족이다.

암표상은 줄었지만 대신 주민등록번호를 파는 편법이 활개를 치고 있다고 한다.

아시아경제신문 김동환 베이징 특파원 (donki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