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경영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정지용, <향수>

퓨전은 1+1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함이다. 보통 퓨전은 유사한 것이나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을 합쳐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전통과 첨단이 만나고, 동양과 서양의 가치가 만날 뿐 아니라, 혁신적인 변화와 점진적인 변화가 합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들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사물과 사물을 서로 합친 것이다. 시인들은 이러한 보이는 사물만을 섞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추억마저도 현재와 묶는다. 그 대표적인 시가 바로 〈향수〉다. 시인은 아름다웠던 고향 풍경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고향은 지금 없어졌거나 돌아갈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연이 끝날 때마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라며 현재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 있다.
아름다웠던 고향의 추억을 시인은 고향 전체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자신과 농가의 주변 사람들의 모습으로 공간이동한다. 이를 다시 과거에서 현재로 시간이동하는 방식으로 시를 전개했다.
이 시를 기업 상품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정지용 시인은 자신의 추억을 판 것이 된다. 이러한 방식이 미국의 경영학자 앤드류 라제기가 말한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린 것을 되돌려 생각해내는 기법’인 인지기술이다. 누구나 아는 사실임에도 이를 활용하고 있지 않거나, 이미 상실되어 버린 것을 되살려내 상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앤드류 라제기 교수가 설파한 인지기술을 정지용 시인은 이미 1940년대에 시 창작 기법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사업을 일으키고 있는 기업이 있다. 델리스의 김형섭 대표다. 그는 과거 우리 주변에서 늘상 볼 수 있었던 뻥튀기를 회상해냈다. 그후 작은 뻥튀기 기계를 만들어 미국의 마트 등에서 직접 소비자에게 뻥튀기 생산 모습을 공개하며 웰빙 상품으로 홍보하고 판매를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델리스의 사업이 미국시장으로 공간이동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우리의 추억을 미국으로 공간이동해 팔고 있다는 얘기다.
과거의 추억에서 시적 아이디어를 얻고, 공간이동으로 전체의 아름다움을 그린 <향수>의 시 창작 방법과 델리스의 사업 성공사례가 너무도 같지 않은가. 시에서 배울 수 있는 상상 아이디어의 하나다.
황인원 시인·문학경영연구소 대표

이재훈 기자 huny@er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