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산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마구잡이식 의혹 제기가 ‘빼빼로데이’에도 어김없이 재연됐다. 지난 11월 11일 하루 동안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뜨겁게 달군 실시간 검색어 1위는 ‘방사능 빼빼로’였다. 소비자들은 물론 이날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온 제과업체들로서도 충격이었다. 일 년 중 11월 11일 하루에 팔린 빼빼로가 나머지 364일간 팔린 빼빼로보다 더 많을 정도로 압도적 매출을 기록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서울환경연합여성위원회 등 시민단체들이 처음 이러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 단체는 롯데제과의 ‘빼빼로’와 해태제과 ‘포키’ 등 일부 초코 막대과자 제품이 방사능 오염 우려가 큰 일본 후쿠시마를 포함한 동북부 8개현에서 수입한 원료를 사용했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특히 해태제과 ‘포키’의 경우 제품 표면에 ‘일본산 코코아매스’를 사용했다고 적혀 있는 점을 꼬집었다. 코코아매스는 초콜릿을 만들 때 사용되는 주재료다. 또한 롯데제과의 ‘아몬드 빼빼로’와 ‘화이트쿠키 빼빼로’는 원산지 표기가 아예 없고, 가나초콜릿은 ‘수입산’이라고만 표시돼 있다. 이를 두고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빼빼로데이 관련 제품 제조회사들은 초코과자 원료의 원산지를 공개하고 일본 수입원료 사용을 중단하며 회수 및 폐기하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제과업체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빼빼로는 최대 1년 전에 만든 제품”이라며 “지난해 5월 이후에는 일본산 원료를 전혀 수입하지 않았으므로 이 제품들과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 또한 해태제과 ‘포키’도 후쿠시마와 거리가 먼 일본 고베 지방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원산지를 ‘수입산’이라고만 간단하게 적시해도 농산물품질관리법에 전혀 위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농산물품질관리법에 따르면 수입국이 3개국 이상일 경우 원산지를 명시하지 않아도 되는데 가나초콜릿의 원료는 가나, 에콰도르, 콜롬비아 등 3개국에서 수입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의혹제기 탓인지 빼빼로데이 직전부터 방사능 측정기의 판매가 급증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그래도 제과업체들과 판매점들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방사능 원료 논란에도 올해 빼빼로데이는 대박이었다. 세븐일레븐, CU 등 주요 편의점들은 빼빼로 매출이 지난해보다 증가했다고 밝혔다. 세븐일레븐의 경우 올해 11월 들어 빼빼로데이 당일까지의 매출이 전년 대비 18% 증가했다. CU와 GS25도 각각 10.4%, 49.3% 판매가 늘었다. 각종 의혹제기에도 편의점 주요 3사 모두 선방한 셈이다.

물론 이번 파동을 돌이켜봤을 때 원산지 표기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제과업체들이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 3개국 이상으로부터 수입할 경우 원산지를 명시하지 않도록 한 농산물품질관리법도 이번 기회에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특히 제과업체들은 ‘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말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을 좀 더 안심시켜주기 위한 ‘배려’의 마케팅이 필요했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마구잡이식 의혹 제기다. 당장은 언론이나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업체들이 입은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까지 미칠 수 있다. 얼마 전 방사능 생선이 해류를 타고 우리 바다에도 흘러들었을 우려가 제기됐을 때 수산업계와 어시장의 타격이 컸다. 공식 조사 결과보다 인터넷에 떠도는 근거 없는 소문이 더 위력을 발휘하는 현실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비판은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팩트’에 근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