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 고려대 사회학과, 한림대 사회학과 대학원을 다녔으며, 동부증권에서 근무했다. 벤처사업에 투신했다가 실패를 맛본 후 메가스터디에서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을 가르치는 명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최진기 경제연구소 대표이며, JK Commerce대표로 재직 중이다.

최진기 경제연구소장은 콘텐츠 요리사 이다. 평범한 콘텐트도 그의 손을 거치며 명품이 된다.

최 소장이 출연한 공중파 방송의 인터넷 동영상은 매회 20만 건 이상의 클릭수를 기록한다. 그는 경제 콘텐트는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세간의 통념을 뒤집었다. 재미와 정보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블루오션 창출의 방정식이다.

다음 아고라에 올라와 있는 그의 동영상 강의는 클릭수 100만건을 기록했다. 고등학생, 주부들을 요절복통하게 하는 그의 경제학 강의는 오랜 경험의 산물이다.

그의 첫 직장은 동부증권이었다. 증권사 직원들이 일등 신랑감들이었고, 대학 졸업자들은 으레 증권사 입사를 희망하던 때였다.

증권가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격전지였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던 세월이었다. 격무에 지친 그에게 벤처붐은 ‘강장제’ 격이었다.

자고나면 백만장자들이 속출하던 시기였다. 무용담이 꼬리를 물었다. 미혼의 유명 여배우에 고급 승용차를 쾌척하는 청년 사업가도 등장했다.

하루 밤에 수 천만원 짜리 술판을 벌이는 졸부들도 입방아에 올랐다. 최소장은 증권 회사를 그만두고 ‘벤처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당시만 해도 세상 무서운 줄 몰랐다”는 것이 그의 회고이다. 백만장자의 꿈은 ‘백일몽(白日夢)’에 불과했다. 신기술은 늘 등장하고, 버블은 터졌으며 그 때마다 증시는 춤을 추었다. 그는 이러한 원리를 깨닫지 못했다.

값비싼 수업료를 낸 시절이었다. 메가 스터디는 인생 역전의 발판이었다. 그의 제자들이 이 사이트에 올린 학원 강의 동영상이 입소문을 타고 꾸준한 인기를 끌었다.
그는 경제 콘텐트는 가독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통념을 뒤흔들었다.

최진기 경제연구소 성공의 비밀은 포지셔닝에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최 소장은 “경제 현상을 알기 쉽게 풀어주는 역할에 충실할 뿐”이라고 강조한다.

한국경제의 구조적 한계를 통찰하고, 비판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제도권 연구소들의 책임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선택과 집중이다.

그의 경제 연구소는 ‘포지셔닝(positioning)’이 명확하다. 최 소장은 삼성경제연구소, 산은연구소 등과 원·달러 환율의 추이. 경제성장률 예측의 정확성을 다툴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최 소장은 경제콘텐트 경쟁의 구도를 살짝 틀었다. 경제 콘텐트에 전통적으로 무관심한 매스마켓을 파고들며 수익의 기반을 넓혔다.

학생, 주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공략대상이었다. 주로 직장생활을 하는 남성들을 타깃으로 하던 경제 콘텐트시장 경쟁의 구도를 바꾼 것이 주효했다. 최 소장의 수익모델은 강연과, 도서 출판 등이다.

그가 지난해 발표한 두 권의 책은 지금까지 10만권 정도가 팔려나갔다. 이 경제연구소에 근무하는 인력은 4명. 강의 내용을 밑천삼아 도서출판, 방송 등으로 활동영역을 넓혀 나가는 ‘원소스 멀티 유즈’가 성장 전략이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