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지난 1997년 대학로에서 공연기획 일을 맡으면서 이벤트 사업을 시작한 박 대표. 그녀는 2002년 (주)플러스미디어 커뮤니케이션그룹 대표로 독립해 같은 해 (주)본백화점 사외 홍보이사, (주)마린텍 사외 홍보이사를 거쳤다. 지난해 6월부터 (주)에이트리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현재 올림픽 메달리스트 클럽 부회장, 한국 실업태권도 연맹 홍보이사, (사)한국 청소년축구센터 사업 본부장 등도 겸직하고 있다.

“이벤트는 간단히 보면 기획해서 실행하는 일이다. 다만 이런 행사가 단순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 하나의 ‘작품’이어야 한다. ‘작품’이기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고 클라이언트와 고객이 제대로 소통하도록 스토리를 전달하는 매개체라야 한다.”

“2년 안에 사옥 짓고 행복하게 이사해야지요. 올해 진행할 신규 사업들만 무리 없이 진행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해요.”(웃음)

아직 한국에는 생소한 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IMC) 기업을 선도하는 (주)에이트리커뮤니케이션즈 박주희(34) 대표의 목소리가 당차다.

아직 앳돼 보이는 여성 CEO이지만 짧은 쇼트커트는 천상 여장부다. 게다가 4계절 동안 변함없이 청바지에 재킷으로만 코디를 하는 탓에 주변에서 남자로 오해받기 일쑤.

허례허식 없이 뛰어다니기에 청바지만 한 게 없다는 것이다. 그녀의 옷장에 치마나 드레스는 이제 장식품이 된 지 오래다.

이를 박 대표는 ‘머슴병’이라고 표현했다. 게다가 그녀에게 ‘금녀의 벽’이란 없다. 친한 지인들을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스스럼없이 대한다.

그녀는 지인들과 격이 없는 사이를 만들기 위해 야한 농담은 물론 사우나와 유흥주점 가는 길도 앞장선다.

오죽하면 친한 룸살롱 마담이 그녀를 위해 죽을 사들고 나를 정도. 술이라면 시간을 정해놓고 마시지 않고 낮술도 마다하지 않는다.

혼자가는 지방출장도 일주일 이상 너끈히 소화해 낸다. 이 정도라면 여성의 탈(?)을 쓴 남자인 셈.

안 해 본 일도 없다. 지난 1997년 대학로에서 공연기획 일로 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그녀는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녀의 ‘여장부’ 끼는 학창시절부터 싹을 보였다. 충남 서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당시 남성용 사각팬티를 입고 학교에 갔었던 것이다.

물론 오빠의 팬티를 반바지로 착각하고 입고 간 해프닝이지만 그녀의 털털한 성격은 학창시절에도 이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렇게 해야 성공” 들이대는 CEO
그런 그녀가 진두지휘 하고 있는 (주)에이트리커뮤니케이션즈는 국내 IMC마케팅을 선도하는 회사로 업계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전문 업체.

기존 이벤트회사가 단순히 공연 기획이나 세일즈 프로모션 등 업무에 치중했다면 (주)에이트리는 이러한 한계를 두지 않고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담아 광고까지 컨트롤 하는 회사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이벤트 회사가 고객과 접점에 있다 보니 그들의 니즈를 바로 접목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는 것. 특히 도전을 즐기는 그녀에게는 딱 맞는 아이템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일 욕심이 많다보니 일감을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지 못한다. 클라이언트를 찾아 이벤트를 이렇게 진행해야 성공한다고 설득시킨 다는 것.

그래서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르는 기획안을 올려야 하는 직원들은 힘들지만 그렇게 두들겨서 도전해 성공한 사례가 계속 늘어가고 있다.

지난해 4월 경북 영천에서 열린 제3회 한국실업연맹회장기 전국태권도대회가 바로 그런 케이스다.

기존의 태권도가 단순히 선수들이 게임만 하고 물러났다면 그녀는 소위 K-1스타일로 쇼맨십을 넣자고 한국실업태권도연맹 김태일 회장에게 직접 제안을 했던 것이 주효했다.

OK승인을 받고 나서 음악·조명에 특수효과까지 버무려 색다른 무대를 선보여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해 7월 세계클럽대항태권도대회가 경북 영천에서 다시 열리게 되는 것도 지난해 성공적 개최가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국내 최초 비보이 뮤지컬, 한일문화 프로젝트 ‘조선통신사재행렬’과 ‘궁중패션쇼’를 진두지휘한 박 대표의 삶은 도전 그 자체다. 아이디어가 기발해 업계에서 딱 보기만 해도 “이건 박 대표의 작품”이라고 알아 볼 정도다.

에이트리와 결혼…“다산할 터”
승승장구 한 듯 보이지만 (주)에이트리는 산고의 고통 끝에 빛을 본 우여곡절이 많은 회사다.

지난 1997년 대학로에서 공연기획 일 부터 시작한 그녀는 기자, 문화사업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 비즈니스를 하며 두 차례 실패를 맛본다. 한번은 카드대란에, 두 번째는 억울하게 당한 송사다. 그녀는 지난 2005년 법정다툼에 휘말려 살고 있던 집 등 적지 않은 재산을 잃기도 했다.

신용불량자로 사업은 물론 제대로 된 회사에 취직조차 힘들었다. 그런 그녀가 다시 제기한 회사가 바로 지난해 6월 선보인 (주)에이트리 회사다. 그녀의 각오도 비장하다.

지인 80명이 모인 지난해 8월 오프닝 세리모니 자리에서는 (주)에이트리와 결혼한다는 공언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새색시가 되어 아이를 많이 낳겠다는 말로 일에 전념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부케도 던지고 혼인 선언식도 있었다. 그래도 복장은 셔츠에 청바지 차림.

(주)에이트리도 바로 그런 뜻을 품고 있다. 그녀는 ‘A TREE’가 '하나의 나무'라는 뜻으로 이를 숲으로 만들어 보답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녀의 남편(?)과 올해 할 일이 가득하다. 상반기에는 IT(정보기술) 업체 전시회를 비롯해 녹십자 등 제약회사 세일즈 프로모션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변호사협회 등 협회 리셉션이나 워크숍에도 공을 들인다는 계획이다.

털털한 성격답게 스포츠 마케팅에도 관심이 많다. 올림픽메달리스트클럽 부회장과 한국실업태권도연맹 홍보이사를 맡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앞으로 이러한 단체들과도 (주)에이트리가 손잡고 행사나 이벤트에도 참여할 것이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더불어 신규 사업으로 쥬얼리 사업을 본격 가동할 방침이다. 국내 대기업들과의 물밑작업이 성사되면 매출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박 대표는 나눔경영에도 관심이 많다. 12년동안 이벤트 업계 뿐아니라 사업을 진행하면서 각계각층에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그만큼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형편이 어려운 운동선수들을 후원하는 것이다. 첫 시작은 소년소녀 가장으로 힘겨운 생활을 하며 운동하고 있는 손유경(20·가명)양이다.

전북의 한 대학교에서 펜싱선수로 있는 손 양을 박 대표는 딸처럼 키우고 있다. 국가대표가 될 때까지는 돌봐주겠다는 게 박 대표의 생각이다.

공사장 인부들이 임시로 쓰는 공간에서 살고 있는 손 양이 너무 밝고 건전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도우며 배운다는 박 대표는 앞으로도 이렇게 사정이 어려운 선수들의 뒷바라지를 계속할 생각이다.

박 대표는 “지금까지 지인들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앞으로는 내 자신의 역할을 더 키우겠다"면서 결혼에 대한 질문에는 “마흔살 전에는 하게 되지 않겠느냐”며 발그레 웃으며 말했다.

김성배 기자 sbki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