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가 지난 1월 14일 개최한 제1628회 세미나에서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이 ‘한국 역사속의 창조적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를 발췌해 싣는다.

Profile /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사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대학원에서 한국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에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취임했으며, 한국여성학회 이사, 한국사상사학회 회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거쳐 2006년부터 제13대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다. 지난 해 11월에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으로 추대됐다.

18세기 실학자 중에 우하영이라는 인물이 있다. 수원에 살았던 농촌 지식인이다. 정조 임금 시절, 생활이 피폐해지고 생산력을 늘려야 하는 절박함이 있어서 현장의 경험을 담아서 앞으로 발전계획을 내라는 지시가 지방에 시달되었다.

그때 우하영이 자신의 농촌에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보고서를 냈는데 그 보고서의 이름이 ‘천일록(千一錄)’이었다.

농촌의 발전을 위해서 전국을 돌아봤더니 비옥한 땅에서도 소출이 줄어드는 것을 보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소출이 늘어나는 것을 보았다.

이유를 보았더니 인간이 땅에 기울이는 정성이 비옥한 땅도 피폐하게 만들고 척박한 땅 도 비옥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마음과 정성이 이 바로 역사를 만들어가고 발전시키는 중심가치라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선하고 근면하게, 성실하고 진실 되게 만드는 것이 역사의 방향이라는 말이다.

인간의 욕망은 한도 끝도 없지만 역사는 자제하고 절제해야 한다는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궁예가 고려에 길을 제일 먼저 닦았지만 무참하게 무너지고 왕건이 고려의 건국에 길을 완성한 데는 이유가 있다.

궁예의 인간을 믿지 못하는 불신과 의심과 무리한 욕망이 신뢰를 잃게 했고 그러면서 왕건의 포용의 리더십이 역사의 열매를 딸 수 있게 했다.

포용의 리더십이 열매를 맺게 한다
태조 이성계 임금이 400여 년 이상 된 고려를 타도하고 천신만고 끝에 조선왕조를 건설했는데 6년밖에 못하고 아들들이 일으킨 쿠데타 속에서 권좌에서 물러나게 된 것은 후계자 책봉에 무리함 있었기 때문이다.

건국에 공을 세운 아들들을 제치고 11살짜리 막내아들 방석을 시키면서 무리와 화를 자초하게 된 것이다.

역사 속에서 인간이 여러 가지 욕망을 자제하지 못하는 것에서 무참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된다. 아이티의 재해를 보라. 인간이 오만하면 안 된다.

자연의 순리를 어기면 안 된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친화적이면서 자연의 순리를 함께하는 길을 걸었기 때문에 이만큼 우리가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좋은 능력도 좋은 인연과 얽혔을 때 자기의 인생도 바르게 나갈 수 있고 역사도 제대로 발전할 수 있다.

세종대왕은 많은 훌륭한 인재들을 좋은 인연의 틀 속에서 키워주었다. 그것이 결국 우리의 민족문화를 꽃피게 하고 우리민족을 1000년간 잘 살게 하는 기반을 닦은 것이다.

그런데 연산군 시대에는 절대로 훌륭한 신하가 나설 수 없었다. 뭘 좀 하려면 견제하고 의심해서 죽이니까 피바람 부는데 나가지 않기 위해서 좋은 사람들이 다 숨은 것이다. 좋은 능력도 좋은 인연으로 엮였을 때 빛을 발한다. 좋은 인연의 틀이 있어야 한다.

역사 속에서 보면 씨를 뿌리는 사람이 있고, 그 씨를 지키고 가꾸는 정성을 쏟는 사람이 있다.

깊이 새겨야 할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다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역사를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다리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그런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가까이 35년의 일제 압제 속에서 우리 조상들이 피나는 각고의 독립의 정신, 민족의 정신을 갖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찾아 준 것이다.

좌절하지 않고 생각해야만 역사는 지켜지고 발전될 수 있는 것이다. 희망의 길을 향해 씨를 뿌리고 그 씨 뿌린 것을 다음 시대는 가꾸고, 지켜야 한다.

우리를 뒤따라오는 다음 시대를 생각해야만 역사는 부단이 이어지고 가꿔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21세기 지도자로서의 가장 큰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창조적 리더십과 창의성은 역지사지의 사고, 배려의 마음에서 나올 수 있다. 세종대왕이나 선덕여왕을 통해서 이루어진 문화 창조를 보면 역지사지의 배려로부터 창의적이고 찬란한 창조품이 나온다.”

창조적 리더십의 핵심은 역지사지
창조적 리더십과 창의성은 역지사지의 사고, 배려의 마음에서 나올 수 있다. 세종대왕이나 선덕여왕을 통해서 이루어진 문화 창조를 보면 역지사지의 배려로부터 창의적이고 찬란한 창조품이 나온다.

역지사지는 인간끼리만 배려하고 보듬는 것뿐만이 아니다. 잠자리에 대한 역지사지 풀 한 포기에 대한 역지사지는 환경운동보다 먼저 우리 조상들이 이미 했던 일이다.

그 시절에 훨씬 더 맑은 영혼과 따뜻한 가슴이 있었다. 역지사지의 배려는 따뜻한 긍정에서 나온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시대적 통찰력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사가 환자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올바른 처방을 내리듯이 정확하게 현실을 판단, 인식하고 미래의 방향을 열어가야 한다.

선덕여왕이 가진 방향의 가장 기본은 과거 역사 속에서 미래를 열어갈 키를 찾았다는 것이다. 선덕여왕의 핵심은 시대적 통찰력이다.

고구려나 백제보다 무기로나 문화로서 열세였는데도 불구하고 통일 주도권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은 통일의 주도권의 키를 가지기 위해 여러 가지 판단을 한 중에 역할 분담을 해서 통일의 역군을 키워낸 것이다. 왕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세종실록을 보며 가슴이 따뜻해지고 감동이 넘치는 희열의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바쁜 중에서도 실록을 매우 깊이 읽었을 때 거기서 사람을 따뜻하게 본 세종대왕의 가슴을 느꼈다. 가장 따뜻한 인간주의 정신이 내재해 있었다.

합리주의 정신도 보았다. 인간이 어떻게 하면 경우 바르게, 이치에 맞게 사는가 하는 것이다. 균형 잡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합리주의 정신이다. 세종대왕은 이런 기본 철학 속에서 많은 성정을 베풀었다.

세종실록을 보면서 깜짝 놀란 사건들이 많지만 세종 8년에 이런 기사가 나온다. 세종대왕이 논밭에서 일하는 노비를 보고서 생각한 것이다.

아무리 노비지만 인간이니 100일은 출산 휴가를 주라고 했다. 세종 12년에는 밭에 지나갈 때 만삭이 되어 일하는 여종을 보았는데 밭에서 아기를 낳으면 아기나 산모가 모두 위험하니 산전에도 30일간 휴가를 주라고 했다.

그래서 아기를 낳기 전후로 130일간 휴가를 주어라. 그로부터 4년 후에는 부부는 서로 도와주어야 한다.

남편은 아기를 낳은 부인을 도와주어야 하니 남편에게도 산후 30일의 휴가를 주어서 돕게 하라고 했다. 15세기 전반에 동서고금에도 없는 출산 복지정책, 부부합산 160일의 휴가 정책이 내려졌다.

인간이 번영하고 발전해야 하는 속에서 가장 지속가능한 가치는 인간의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무역에서 흑자를 내더라도 그것은 단기적인 것에 불과하다.

서로간의 진실성을 담아낸 마음의 공명들이 계속 일어나야만 우리가 염원하는 세계평화의 시대가 열릴 수 있다.

이재훈 기자 huny@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