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건물 틈세에서 2시간의 사투끝에 희생자를 발굴해 나오는 119국제구조대원들.


아이티가 지진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초토화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인력과 설비를 총동원해 사상 최대의 구호작전을 펼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아이티 주민 문제는 예외였다.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수백만의 아이티 주민들에게 미국이 전하는 메시지는 한결같았다. ‘미국에 넘어오지 마시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에어포스 화물 수송기는 매일 대여섯 시간씩 아이티 창공을 날아다니며 라디오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방송은 레이몬드 조세프 주미 아이티 대사가 녹음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아이티를 떠나지 마시오. 아이티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가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미국 마이애미까지의 거리는 700마일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미국의 우려처럼 아이티 주민들이 보트를 타고 미국으로 망명을 시도하거나 이웃국가인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건너가는 시도는 지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이티의 상황이 악화되면 주민들의 대규모 ‘엑소더스’가 펼쳐질까 떨고 있다.

현재 미국은 아이티 주민들을 상대로 고국에 계속 머물도록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일부 불법 망명객들은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로 강제 이송할 것이라 엄포를 놓고 있다.

미국 국무부의 노엘 클레이 대변인은 아이티 주민들의 미국 망명을 막기 위해 비자 연장도 중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아이티의 일부 고아들만 일시적으로 미국 입국이 허용된 상태며, 아이티의 응급환자가 마이애미로 이송해 치료를 받는 것도 금지돼있다.

아이티의 참사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총력을 기울여 아이티를 지원하겠다는 애초의 약속과는 거리가 먼 조치이다.

이번 아이티 사태에 적극적으로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미국의 피해가 우려되는 부분에는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아이티 구호활동으로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을 재건하고, 정치적 앞마당인 중남미 국가들과의 관계도 개선시키겠다는 속셈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현재까지 1억 달러의 자금지원과 1만 명 규모의 군부대 파견을 약속한 상태.

국내적으로는 오바마 정부가 올해 있을 중간 선거를 앞두고 이전 정부와의 차별화 구축의 일환으로 아이티 원조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부시 정부가 뉴올리언스에서 발생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해 정치적 위기를 불러온 것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이겠다는 것이다.

한편 아이티의 이웃국가인 도미니카공화국도 아이티 주민들의 대량 이주를 우려하고 있다. 현재 도미니카공화국은 응급조치가 필요한 환자들의 경우만 입국을 허용하고 있으며, 국경검문소마다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도미니카의 산드라 세베리노 대통령 대변인은 “아직 국경지대에 불법 이주세력이 보이진 않는다”며 “오히려 도미니카에 있던 많은 아이티 주민들이 본국의 가족들을 돕기 위해 아이티로 향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시아경제신문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