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의 기둥인 중산층이 빚더미에 깔릴 위기에 놓였다.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가 코앞인데도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는 말을 덥썩 믿은 탓일까. 최근 한국은행이 처음으로 중산층의 가계부채 문제가 우려할 수준이라고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은행(이하 한은)은 10월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부동산 시장의 악순환으로 인한 전세가격 상승과 경기부진 지속에 따른 자영업자의 영업환경 악화 등으로 인해 중소득과 중신용 계층에 채무부담이 집중되고 있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다.

소비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득층이 빚이 늘어나 지갑을 닫으면 이는 곧 내수경기의 부진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대출 상환 부담이 높아지면서 은행의 자산건전성이 위협을 받는 등 금융권에 피바람이 몰아칠 수도 있다. 가계부채가 결국 핵폭탄이 돼 돌아온 것이다.

우선 금융권별로 신규대출과 대출상환을 비교해보면 올해 상반기 은행권의 가계 신규대출은 77조7000억원으로 대출상환(71조원)을 뛰어넘었다. 비은행권 역시 신규대출이 80조원으로 72조8000억원의 대출상환 금액을 웃돌았다. 즉, 갚는 돈보다 새로 빌려간 돈이 더 많아졌다는 의미다.

게다가 여기서 주의할 점은 비은행권의 대출이 계속 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1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금융기관의 리스크 관리가 한층 강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신용이 낮은 중신용 가계가 대부업체로 몰려들면서 채무 부담을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산층이 빚잔치의 중심으로 떠오른 가장 큰 이유는 자영업자가 대거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올해 3월 말 기준 전체 금융권에 대한 자영업자의 부채 규모는 45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권별로 보면 은행 대출이 285조원, 비은행금융기관 대출은 166조원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비은행금융기관 대출은 2011년 12월 말 34.3%에서 올해 3월 말 36.9%로 2.6%포인트 상승했다.

부채 구조에 있어서도 자영업자 대출은 일시상환대출이 많은 데다 만기도래가 특정시기에 집중돼 있어 원리금 상환 부담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경기부진 지속 등으로 자영업자 소득이 감소할 경우 대출을 갚기 위해 또 다른 대출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또한 미국이 내년 상반기 양적완화 축소를 진행하게 되면 시중금리가 올라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출이자 역시 오른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해를 맞기도 전에 한숨부터 쉬게 생겼다.

자영업자들 중에서도 특히 시작한 지 2년 미만인 신설 업체의 대출이 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이 1~4인으로 구성된 영세 사업체이며 생산성이 낮은 일부 업종에 편중돼 있다. 지난 몇 년간 자영업자 업종별 대출 증가율을 보면 부동산임대업, 교육서비스업, 음식숙박업 등의 순으로 건설업과 함께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는 대표 업종들로 나타났다.

경기 상황의 악화로 자영업 전망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앞으로 자영업자들이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부흥을 이끈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자영업자 수는 올해 들어 감소세를 보이긴 했으나 50세 이상의 자영업자 수가 월평균 3만 명씩 늘고 있어 고연령층 자영업자의 대출 부실 위험이 가중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자영업자 대출의 부실화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을 경우 은행의 BIS자기자본비율이 12%를 하회할 가능성이 높다”며 “은행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데 애로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부동산 시장이 좀처럼 진정되지 못하고 있다. 가계부채의 주범이 부동산대출인 만큼 가장 심각한 문제다. 매매, 전세, 월세 등 거주형태별 주택시장의 수급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우선 매매시장의 경우 특히 수도권에 위치한 고가 대형주택이 거래되지 않아 보유자의 채무 부담이 늘고 있다. 이어 매매시장 부진으로 전세가격이 매매 가격과 맞먹을 정도로 올라 전세 임차인들은 채무 부담으로 숨이 턱턱 막힌다. 경기 부진에 따른 수익 악화만으로도 앞날이 캄캄한 자영업자들에게 부동산 문제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이에 한은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자영업자 대출의 만기연장 배려, 자영업자의 부동산 담보대출 관련 규제 정비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장기적으로는 자영업자 관련 통계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로서는 자영업자의 소득 상황이나 부채 수준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통계 시스템이 정비돼 있지 않아 이들의 실태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실효성 있는 정책 마련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국이다.

자영업자의 수익 안정을 위해서 대기업과의 상생관계를 강화하는 방안도 모색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또한 베이비부머 은퇴자들은 그 어떤 세대보다도 상대적으로 전문화된 인력이 많이 포진돼 있는 만큼 이들이 창업을 하더라도 경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맞춤형 창업 지원이 시급하다. 한은 관계자는 “연금시장 활성화 등을 통해 은퇴자들이 생산 계층으로 전환하지 않고 소비 계층으로 남을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